끊임없는 자학과 위악, 난 그런 김수영을 사랑하고 싶다
끊임없는 자학과 위악, 난 그런 김수영을 사랑하고 싶다
  • 강진수 기자
  • 승인 2017.06.29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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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강진수의 ‘서울, 김수영을 읽다'- 8회

(엽서 하나)

예술가의 초상은 항상 무언가에 결핍되어 있는 모양새다. 그래서 예술을 하는 사람은 늘 반성의 시대에 산다. 스스로를 거울에 비추어보는 것, 그리고 그 거울을 자신의 생활공간으로 사용한다. 결국 예술은 그들에게 공간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예술이 바탕이 되지 않고, 자기반성이 바탕이 되어 예술은 탄생한다.

김수영에게 시의 정신이란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시의 정신은 숭고한 것. 김수영이 반드시 배반해야 할 것이고 반역해야 할 목표다. 그래서 시의 정신을 김수영은 결코 품어낼 수 없다. 생활은 반드시 그를 비추는 거울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현실에서도, 이상에서도 김수영을 이야기할 수 있는 흔적은 없다. 오직 거울, 김수영 자체가 아니라 자체가 복제되어 나타나는 표상만이 김수영으로 남는다.

그런 김수영의 길 위에서, 흔들리는 자아를 확인하면서 김수영은 오랜 정신병을 앓고 있던 애처로운 사람임에 확신이 든다. 반역을 한 김수영, 길을 잃어버린 김수영에게 우리는 뭐라 비난할 이유가 없다. 비난할 자격도 없다. 우리는 시와는 반역된 생활을 하는 사람들. 먼 산정에 서 있는 마음으로 눈앞에 놓인 온갖 잡스러운 물건들을 그저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 관찰자의 심정이다.

여기, 김수영과 우리가 하나가 되는 시가 있다. 흘러가는 구름을 파수하는 우리가 구름에 놓인 사상을 읽어나가는 시가 여기에 있다. 어디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디로든지 가야만 하는 우리와 김수영의 마음의 활로가 여기에 놓여 있다. 읽어본다면 이것은 정하여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한 나를, 나의 꿈을, 나의 그릇됨을 꾸짖는 소리로 변환될 수도 있다.

 

▲ 시인 김수영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시(詩)와는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먼 산정에 서 있는 마음으로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
그 주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본다

그리고
나는 이미 정하여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하고 있는데
만약에 또 어느 나의 친구가 와서 나의 꿈을 깨워주고
나의 그릇됨을 꾸짖어주어도 좋다

함부로 흘리는 피가 싫어서
이다지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리라
먼지 낀 잡초 위에
잠자는 구름이여
고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서는
철 늦은 거미같이 존재 없이 살기도 어려운 일

방 두 칸과 마루 한 칸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처를 거느리고
외양만이라도 남과 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이다지도 쑥스러울 수가 있을까

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이여
자기의 나체를 더듬어보고 살펴볼 수 없는 시인처럼 비참한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어리석음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나 보다
날아간 제비와 같이

날아간 제비와 같이 자국도 꿈도 없이
어디로인지 알 수 없으나
어디로이든 가야 할 반역의 정신

나는 지금 산정에 있다―
시를 반역한 죄로
이 메마른 산정에서 오랫동안 꿈도 없이 바라보아야 할 구름
그리고 그 구름의 파수병인 나.

- ‘구름의 파수병’, 김수영

 

 

(엽서 둘)

구름의 파수병인 나, 가 있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다. 오랫동안 꿈도 없이 바라보아야 할 구름, 구름에는 어엿한 사상이 있다. 이상이 있고 꿈이 있다. 나는 그런 것도 없이 구름을 바라본다. 구름을 바라볼 자격조차가 없는 사람이다.

우리는 지금 산정에 있다. 시를 반역한 죄로. 순수하지 못한 예술을 반역하고, 글을 배반하고. 수많은 영화와 책들, 음악들, 록앤롤 음반들, 재즈 블루스 가수들과 라틴 작곡가들, 시인들, 소설가들, 화가들, 팝 아티스트, 사진작가들, 또 누구를 배반하고 반역했을까. 늘 스스로의 딜레마에 빠져 사는 것이다. 애틋하고 따뜻한 마음씨만큼 더듬어볼 나체가 선연해지는 시인처럼 비참한 인간이 또 어디에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다시 반성의 시대로 돌아온다. 우리의 공간은 여전히 하나의 거울에 불과하다. 외양만이라도 남들과 똑같이 산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 그 수치스러움 위에 예술가의 거울은 놓여있다. 끊임없는 사랑,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고민, 끊임없는 자학과 위악 속에 시인은 존재한다. 나는 이런 김수영을 사랑하고 싶다. 자학적이고 위악적인 김수영을 오롯이 사랑하고 싶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런 거울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거울 속에서, 지나가는 구름을 바라보듯이, 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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