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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묘한 흥분 사이, 나는 설레었다

<청춘 &> 여행을 앞두고 / 구혜리 구혜리 기자lrz_tes@naver.coml승인2017.07.0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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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집착을 앓다

그 때 나는 어딘지 조금 미쳐있었던 것 같다. 눈을 뜨면 항공권을 알아보고, 여행자들이 올린 사진을 보며 온라인으로 관광을 다녔다. 쌈짓돈이라도 생기면 항공권을 샀다가, 24시간쯤 지나 수수료를 물고 마음을 다독이며 취소하기를 반복….

찾아보니 여행광증후군이란 것도 있다. 여행중독, 여행신드롬 등 키워드가 난무하는 걸 보니 돌연 나만 느끼는 증상은 아닌가보다. 19∼20세기 프랑스에서는 충동적으로 장기여행을 떠나 별다른 기억 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았고, 떠나지 않은 자들은 그들을 정신병자로 불렀다. 또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는 노예들의 잦은 탈주를 ‘편안한 환경에서 스스로 벗어나려는 정신병’으로 취급했다. 동양서도 한때 역마살이라 하여 정착하지 못하는 부류를 비정상적인 시각으로 탐구하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보부상이나 유학자들의 혼란스러운 내외적 갈등은 한국문학에서도 단골 소재였다.

오늘날에는 여행에 대한 비정상적인 시각은 많이 거둬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여행상품의 본격적인 대중화가 시작되면서 단기로, 손쉽게 여행을 누릴 수 있는 계층이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체 게바라로 여행철학의 문을 열고 제주항공, 에어서울 등 생성중인 저가항공으로 종지부를 찍었달까?

 

 

그렇다면 우린 왜 그렇게 탈주를 못해서 안달일까? 위에도 말했지만 항공비의 지속적인 하락과 숙박공유 플랫폼의 활성화 등 비용적 측면의 문턱이 낮아진 까닭으로 “라멘 먹고 싶어서 일본 갔다 왔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아진 오늘이다. 여행의 목적은 다양하고, 목적 없는 여행도 많다.

서론이 길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놓고도 취소하지 못한 두 티켓이 있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제주도와 일본. 가깝고 부담 없는 여행지였다. 남들도 생업에 종사하다가 주말 잠깐 다녀오기도 하는 곳이지 않느냐는 합리화도 있었다. 하지만 사실 글을 쓰면서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여행이 청춘의 특혜라지만 청춘의 본분을 잊고 놀아도 되는 걸까 하는 불안감. 그와 동시에 이탈해 있을 때의 묘한 흥분 사이에서 나는, 설레었다.

 

 

┃천 원짜리 사치 그리고 립스틱

20대 초반. 백화점을 돌아다니는 것이 ‘무섭지’는 않아졌지만, 또 하나 둘 브랜드 이름에 익숙해져 갔지만, 나는 여전히 또래 친구들이 의류나 가방, 파우치 속 화장품에 대한 대화를 꺼낼 때면 낯설었다. 평소에 관심이 많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런 소재와 분위기는 괜히 부끄러웠다. 하지만 대화를 피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들어주고 받아주는 처세술로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해외여행 시즌이 되면 면세점을 거를 수가 없었다. 내게 면세란 남자친구를 위해 담배 한 보루 정도를 사주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나 같으면 저런 거 절대 안 사줘” 라며 눈총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미리 온라인 면세점에서 주문한 화장품이 빨간 쇼핑백 속에 담겨 있었다. 그 뒤로 여행 전엔 필요한 물건이 없어도 괜히 온라인 면세점을 들락날락 하게 되었는데 추천상품, 인기상품으로 상위에 있는 건 늘 립스틱이었다.

 

 

판매량에서 압도적인 립스틱은 대게 3~5만원에 책정된다. 작은 화장품 하나 가격으로 저렴한 편이라 할 수 없지만, 커피 한 번 군것질 두 번 양보하면 소위 명품이란 것을 갖게 된다. 가방처럼 기본 몇 십, 몇 백만 원 하는 상품에 비해 지불의 부담을 줄이면서, 소액의 사치로써 물건 그 자체보다 명품을 샀다는 기분을 사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까닭에 ‘립스틱 지수(Lipstick indicator)’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즉 사람들이 명품 립스틱을 얼마나 사느냐는 경제와 사회불안의 척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모습은 2·30대 젊은 여성층에서 주로 발견할 수 있다. 유사하게는 남성의 술·담배 소비량의 증가, 또 ‘인형뽑기 기계’의 급격한 유행 역시 같은 현상으로 보인다. 인형뽑기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있던 놀이문화가 세대를 지나 유행을 타고 돌아온 것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다른 상점 앞 인형뽑기 기계였던 것이 최근에는 인형뽑기 가게가 되어 돌아왔다. 학교 앞이든 주택가든 우후죽순 불어난 인형뽑기 가게를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근래에는 기계 내 인형 도난과 게임 확률 조작이라는 이슈로 떠들썩했던 적도 있다. 인형뽑기 기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집게에 불균등한 확률로 상품을 들어 올리는 힘이 업주로부터 조작되었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20~30번을 해야 한 번 뽑게 돼있다고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이 그 30분의 1 확률을 기대하며 천 원짜리를 꺼내든다. 주말 오전이면 복권 가게 줄이 길어지고, 천 원짜리 한 장을 넣어 성취감을 기대하는 것이 결코 바람직한 모습으로 보이지만은 않는다. 불확실성 속에 적은 노력과 비용으로 작은 만족을 소비하는 오늘날 우리들 청년의 슬픈 자화상이다.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비행기에 오를 땐 책 한 권을 들고 있었다. 언젠가 ‘책 좋아한다는 애들치고 제대로 다독하는 애 못봤다’는 말에 꽤 자존심이 상했던가보다. 그래서 적어도 휴가 때만큼은 다 읽지 못하더라도 책 하나씩 챙기는 버릇이 생겼다. 일상에서 교과서가 아닌 책을 읽기란 의외로 쉽지 않다. 표지를 보고 반해 서점에서 집으로 데리고 나왔건만 책장에 고스란히 ‘장식’된 책이 한둘이 아니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그러나 그 때를 모르니 전전긍긍하지 말고 마음껏 즐겁게 살자.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中 이누야마 집안 가훈)❞


즐겁게 산다는 것이란 뭘까. 에쿠니 가오리 소설 속 세 자매는 주어진 문제에 대하여 연애와 가족 그리고 현실을 담아 각자의 해법을 제시한다. 나에게 적어도 그 문제에 있어서는 여행이 실패했던 적은 없다. 하지만 여행은 꿈만 같아서 잠깐 눈을 감았다 뜨면 손에 잡은 모래알처럼 사라져버린다. 손바닥에 남아있는 모래알만이 추억이 되어 반짝거릴 뿐이다.

그럼에도 순간뿐인 찬란함을 좇아 오늘이 가진 전부를 쏟아내기에 청춘이다. 순간의 반짝임은 별처럼 달려와 무한한 우주를 장식할 하나가 되리니. 오늘 또 하나의 별을 쏘아 올리기 위해 나를 위한 작은 사치를 부려볼까 한다.

-일본, 오사카 여행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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