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일꾼> 최충언 칼럼

늦은 밤이다. 굴다리 밑에서 노숙을 하는 분들을 찾아가는 아웃리치다. 언제나 텁텁한 공기는 알레르기가 있는 코 점막을 자극한다. 한 주 걸러 금요일 밤에 한 번씩 찾아가는 길이지만 그날은 마음이 무거웠다. 허탕을 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곳은 노숙하는 형제가 고단한 몸을 누이는 곳이다. 이달 초에 이 굴다리에서 함께 기거하던 동생이 사망했다는 지역신문의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다.  

형은 술병으로 동생을 잃었다. 형은 동생과 의지하며 살았던 그 자리에서 다른 홈리스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낡은 매트리스에 앉아서 우리를 반겨주었다. 막걸리 한 통과 소주 한 병은 거의 비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형은 동생에 대한 그리움과 불면증을 호소했다. 우리는 그저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것 밖에 없었다. 덜커덩거리며 기차가 굉음을 내며 지나갔다.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는 밑바닥 인생이다. 그는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어머니, 우리 어머니

노숙을 하거나 벼랑 끝에 내몰리는 쪽방촌의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알코올 중독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늦은 밤에 부산역 광장에 가보면, 술판을 벌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말이 있다. ‘방 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 격이다. 명백한 문제임에도 무시하거나 언급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을 이를 때 쓰는 말이다. 자신에 대한 존중과 가치가 있어야 할 자리에 공백이 생기고 마치 진공상태의 공간에 공기가 빨려가듯 무서운 속도로 술이 그 자리를 채우곤 한다.

성모송을 세 번 읊조리면 닿는 거리의 다른 굴다리를 찾았다. 바람막이용으로 박스로 잘 공간을 만들어 놓았는데 사람이 없다. 대신 벽걸이 시계와 시집 한 권이 굴다리 벽에 정갈하게 세워져 있었다. 시집을 펼쳐 보았다. 김종해, 김종철 형제시집 <어머니, 우리 어머니>(문학수첩)였다. 순간, 감동이 몰려왔다. 햇살 한 줌의 희망을 보았다. 허탕을 치고 돌아 나오는 길에 시집의 주인을 만났다. 그는 빈 박스를 주워서 굴다리의 잠자리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엄마라 부른다
사십이 넘도록 엄마라고 불러
아내에게 핀잔을 들었지만
어머니는 싫지 않으신 듯 빙그레 웃으셨다
오늘은 어머니 영정을 들여다보며
엄마 엄마 엄마, 엄마 하고 불러 보았다
그래그래, 엄마 하면 밥 주고
엄마 하면 업어 주고 씻겨 주고
아아 엄마 하면
그 부름이 세상에서 가장 짧고
아름다운 기도인 것을!

(김종철, '엄마 엄마 엄마' 전문)
 

"하느님께서 모든 곳에 임할 수 없어 대신 어머니를 보내셨다"는 탈무드 구절이 떠올랐다. 아웃리치 활동을 위해 타고 다니는 봉고 안에서 다음 활동지까지 가는 동안 생각이 많아졌다. ‘어머니’라는 세 음절의 단어 때문이리라. 

나도 아직 어머니를 엄마로 부른다. 나의 기억은 19살 청년시절로 되돌아갔다. 한밤중에 집에서 체포되어 나올 때, ‘아저씨들 와 이러십니까?’ 하시던 엄마의 떨리던 목소리.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받고 부산구치소에서 첫 면회를 할 때였다. 우리 모자는 우느라고 귀한 면회시간을 모두 소비해 버렸다. 여든이 넘으신 엄마를 생각나게 하는 시였다.
 

독방에서 얻은 인문학

1평도 되지 않는 독방에 갇혔을 때 가장 힘든 것은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가족 면회도 한 달 가까이 되지도 않았다. 교도관에게 이야기했더니 파란 표지의 손바닥만 한 네 복음서와 시편이 실린 성경을 넣어주었다. 호텔· 병원· 교도소· 학교에 성경을 나누어주는 일을 하는 국제 기드온 협회에서 발간한 성경이었다. 깨알같이 작은 활자였지만,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나의 활자에 대한 갈증은 그렇게 해갈되었다.

굴다리 아래서 잠드나 인신이 구속된 채 좁은 독방에서 잠드나 힘들다는 점에서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인문학이 주는 힘은 무얼까? 생각의 힘과 사건을 해석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아닐까? 영어의 기간 동안 대략 200여권의 책을 읽었다. 잡식성의 독서였다. 그 때 읽었던 인문학 서적들이 지금껏 살아오는데 알게 모르게 나의 자양분이 되었다.

우리의 인지는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사건에 대한 감각적 파악, 그에 대한 해석, 그리고 그 해석에 따른 감정의 순서다. 대체로 사건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다. 비가 내린다는 사건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비가 와서 정원의 화초에 물을 주지 않아도 되니 좋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정원에서 차를 마실 수 없게 됐다고 짜증을 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우리의 해석에서 나온다. 노숙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삐딱한 시선의 교정에도 인문학이 필요하다.
 

노숙인에게 필요한 자존감

최근의 통계를 보면, 부산 거리의 노숙인은 154명이다. 잠재적 노숙인들 중 PC방, 찜질방, 만화방, 기원 등에서 잠을 자는 경우도 많아 정확한 노숙인원을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부산의 경우, 자활·재활 요양시설에 있는 노숙인이 632명, 쪽방 등에서 생활하는 노숙인이 894명 있다. 노숙인 종합지원센터는 두 곳이 운영되고 있다. 

센터는 상담·시설연계, 응급잠자리와 위생서비스 제공,무료급식 지원, 의료서비스 제공, 주거·일자리 지원, 주민등록 복원, 신용회복을 위한 법률 서비스 지원 등 노숙인 자립 지원을 위한 종합적인 도움을 준다. 세 곳의 자활시설에서는 노숙인에 대한 숙식 제공, 직업교육, 자활프로그램 등 각종 복지서비스를 제공과 조속한 사회복귀 지원한다. 두 곳의 쪽방상담소는 노숙인이 거리 노숙이나 시설 생활을 마무리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임시주거 지원,매입임대주택 공급, 생활 지원 및 심리정서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주거와 일자리, 무료급식 같은 서비스만으로는 노숙인이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한다. 자존감 회복이 시급하다. 노숙인의 자립과 자활을 위한 사회, 경제, 제도적 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일시적인 일자리 제공과 주거지원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자립의지를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교육지원활동을 함께 진행하는 것이 요즘의 추세인 것 같다. 인문학과정이 노숙인에게 필요한 이유다. 문학, 철학,예술사, 한국사, 글쓰기 등 1년 2학기 과정의 인문교양교육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노숙인 지원센터도 있다. 스스로 성찰하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기에 희망의 인문학이다.
 

박종철의 똥색 오리털 파카

30년 전, 6월 항쟁의 불씨가 되었던 박종철 열사는 1987년 1월 14일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모진 고문 끝에 숨졌다. 최근에 신문을 읽다가 다시 그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를 기억하는 동창생이 전한 내용이다. 등교하던 중에 노숙인에게 당시 유행하던 ‘똥색 오리털 파카’를 벗어주었다고 한다.아름다운 사람이었다.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항상 먼저 세상을 떠나는 걸까?

가난을 게으름의 산물로 여기는 세상의 잣대가 시퍼렇게 살아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한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일까?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어렵다’거나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는 예수의 말씀도 세속화된 오늘날의 교회에서는 설 땅을 잃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한사람도 빠짐없이 “엄마”하고 세상에서 가장 짧고 아름다운 기도를 불렀던 우리들이 아닌가? 공감과 배려가 되살아나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는 공감의 시대가 복원되기를 희망한다. 굴다리 밑의 시집 한 권으로도 충분하다!

<외과의사. ‘달동네 병원에는 바다가 있다’ ‘단팥빵-어느 외과의사의 하루’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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