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묘량 농사문화재들의 봄맞이- ②

▲ “농사를 잘 지슬라문 젤로 중요한 것이 ‘적기’여. 적기를 보고 숭거야 수확을 많이 하제.” 강형원 할아버지.

“농사에 젤로 중요한 것이 ‘적기’여”

“내가 이 근방서는 농사를 최고로 잘 지어. 나락을 한 마지기에 다른 사람은 석 섬 반이나 넉 섬을 낸다 하문 나는 여섯 섬을 묵어.”

결론은 “내가 바로 묘량면의 수확왕”이라는 말씀. 그 대목에서 목소리 더욱 우렁우렁해지는 강형원(81․신천리 진천마을) 할배. 그 자부심이 할배한테는 농사짓는 힘의 근원이다.

“농사를 잘 지슬라문 젤로 중요한 것이 ‘적기’여. 적기를 보고 숭거야 수확을 많이 하제.”

땅을 향한, 농사를 향한 할배의 애착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 ‘난중’까지를 염려하고 도모하는 데서도 짚어진다.

 

▲ 재활용의 정신이 빛난다. 강형원 할아버지네 비닐하우스 문.

 

“저 건네가 내 논인디, 논 일곱 배미를 요참에 두 개로 맨들아 불었어. 다랑치가 일곱 갠디 두 개로 맨들았다 그 말이제. 근께 사람들이 날 보고 미친 놈이라고 해. 왜 그 고생을 하냐고. 난중에 내가 못 지문 다른 사람이 벌더라도 그것이 농사 짓기 더 숼하겄다 싶어서 그리 맨들았어. 요새는 다 기계로 농사진께 다랑치가 많으문 힘들어서 농사 안 질라고 해.”

‘놈 숼하라고’, 그 맘으로 고생을 사서 했다.

“인자 앞으로 누가 지슬란가 모르제. 새끼들이 나이묵으문 와서 질란다고 말은 헌디, 닥쳐봐야 알제. 나는 아흔 살 묵을 때까지 질란가 백 살 묵을 때까지 질란가 장담은 못해.”

 

 

“이녁 낯부닥 뀌미는 재미보다 내야 밭 뀌미는 재미”

저 아랫마을엔 봄볕 자울자울 따사로운 날에도 이 언덕엔 노상 바람이 분다.

하필 바람찬 언덕에 밭을 일구었을까. 그리 원망한 적은 없다. 바늘 꽂을 자리만 있어도 곡식을 심었던 세상에서 이 밭 한 뙈기도 금싸라기였음을 아는 까닭이다.

김이순(77․신천리 유성마을) 할매는 어렸을 때부터 다리 한쪽이 좀 불편했다.

남이 한 걸음 걸을 때 열 걸음은 버둥거리면서 살았다. 성한 사람하고 똑같이 일할란다는 오기인 듯 욕심인 듯 꼿꼿한 자존심을 품고 버텼다.

 

▲ “봄이 온께 헐 일이 꽉 찼어. 잘 헐라고 물리치료 받고 왔어. 시골 사람들은 다 그래. 어서 풀 매고 어서 씨 넣고 어서 키와서 자석들한테 택배 보내고 싶제.” 김이순 할매.

 

“우리 영감 간 제가 24년 되았어. 인자 논도 없고 밭 요것뿐이여.”

‘요것뿐’인 그것이니 정성을 쏟는다.

“봄이 온께 헐 일이 꽉 찼어. 잘 헐라고 물리치료 받고 왔어. 시골 사람들은 다 그래. 어서 풀 매고 어서 씨 넣고 어서 키와서 자석들한테 택배 보내고 싶제.”

꽃귀경보다 밭귀경이 설레는 할매.

“우리는 이녁 낯부닥 뀌미는 재미보다 내야 밭 뀌미는 재미가 더 좋아. 뀌미고 나문 매꼬롬허니 개안하제.”

후미지고 응달진 밭에도 봄볕은 내리고, 할매 밭 뀌미는 솜씨에 푸른 것들은 무장무장 면적을 넓혀갈 터.

 

 

▲ “나한테 앵긴 사람은 다 주고자와.” 그렇듯 널룬 인정의 마음으로 밭에 엎드린 안효님 할매.

“혼차 묵지 말고 갈라묵는 사람 되어라”

“재작년까지는 쌀농사 했어. 인자 밭만 쪼금이여. 우리 아그들 가져가라고 숭거.”

자식뿐일까. 낯선 손한테도 ‘뭣이라도 주고자운’ 그 마음이 한가지로 이어지는 안효님(84․월암리 사동마을) 할매.

“나한테 앵긴 사람은 다 주고자와. 밭에 시금추도 잔 가져가고 뒤안에 머굿대도 잔 뜯어가. 저어그 뒤안에 있어. 인자 막 한살 나고 있어. 머굿대너물 쌉씨름하니 묵어봐야 입안에 봄이 오제.”

‘나놔묵는 재미’가 제일이라 한다.

 

▲ 30년 전에 산 풍구를 아직껏 두고 벗하고 있다.

 

“나는 우리 아그들도 혼차 묵지 말고 ‘갈라묵는 사람’ 되라고 갈찼어.”

할매가 혼자 사는 집 토방에는 풍구가 문화재처럼 모셔져 있다.

“옛날은 요것으로 나락 부치고, 콩도 부치고. 인자 못 써. 인자 저나 나나 늙어서 몸뚱아리 여그저그 다 어긋났어.” 30년 전에 6만원을 주고 산 풍구, 지금은 ‘용도변경’ 되었다.

“저놈 손잡이 잡고 토방 딛고 올라가. 솔찬히 의지가 되야.”

그리하여 30년 세월 여전히 할매의 벗으로 자리하고 있는 게다.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최성욱 다큐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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