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하는 것보다 훨썩 낫제, 둘이 맞들문 워넌히 낫제”
“혼자 하는 것보다 훨썩 낫제, 둘이 맞들문 워넌히 낫제”
  • 전라도닷컴 남인희·남신희 기자
  • 승인 2017.07.06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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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닷컴> 묘량 농사문화재들의 봄맞이-③
▲ “혼자 하는 것보다 훨썩 낫제. 둘이 맞들문 워넌히 낫제.” 그 마음으로 함께 마늘밭에 납신 강대철, 김길님 부부.

“둘이 맞들문 워넌히 낫제”

“봄 오는 것이 반갑제. 몸이 활발해진께.”

활발(活潑). 그리하여 마늘밭에 납신 강대철(83․월암리 문례마을), 김길님(82) 부부.

“회관에서 겨울내 항꾼에 밥묵다가 인자 각자 밥 묵을 때가 됐어.각자 일할란께 다 바빠. 시간 맞촤서 항꾼에 차분히 밥 묵기가 힘들제.”

할배는 쪼그려앉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허리 굽혀 풀을 매는 중이다.

“나는 농사도 못져. 다리를 다쳐서 못 쓴 지 한 30년 되야. 긍께 각시가 고생했제. 나 다쳐불어서 혼자 그 일을 다해낼란께.”

쪼깨라도 손 보태주고자픈 그 마음으로, 할배는 밭에 동행한다.

“혼자 하는 것보다 훨썩 낫제. 둘이 맞들문 워넌히 낫제.”

할매가 말할 때마다 “아먼”이란 강력한 긍정과 동의의 추임새를 마침표처럼 찍어주는 할배.

“그거이 존 말이여, 그 말 한마디문 쌈이 없어, 아먼.”

 

 

▲ “나 한차는 못해. 우리 아들 있응께 하제.” 조요순 어매와 아들 이동재씨가 나란히 논바닥에 섰다.

“아들이랑 나란히 헌께 힘이 나”

식구란 저런 것인가. 누구의 구령에 맞추는 것도 아니건만 어매와 아들은 마치 싱크로나이즈 선수로라도 출전한 것마냥 동작이 일치한다. 저만치 서로 떨어져 선 채 말없이도 척척 맞아들어가는 몸짓.

들녘에 고적하게 혼자 엎드린 어매들 허다하건만, 오늘 조요순(70·덕흥리 막해마을) 어매는 아들(이동재·39)과 함께 논바닥에 섰다.

봄바람이 하필 매서운 날이건만, 어매 얼굴이 환한 이유일 것이다.

“나는 꽃귀경도 필요 없어.” ‘꽃보다 아들’이다.

“못자리 맨들고 있어. 나 한차는 못해. 우리 아들 있응께 하제. 오늘 끝내고 인자 내일 갈 참이여.”

2남3녀 중 막둥이, 제주에서 살고 있는 아들이다.

“얼마 안 걸려요. 마음이 중요한 거죠. 거리가 문제가 아니라.”

거리를 좁히는 것은 마음이라고 아들은 말한다.

“제주에 있어도, 눈에 보여요.”

“이맘때면 이런 일”, 떨어져 있어도 아들에겐 어매가 시방 하는 일이 훤히 떠오른다. 언제든 고향에 달려오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그래서다.

“즈그아부지가 작년에 돌아가셌어, 갑자기. 긍께 인자 농사도 안지슬라고 했는디…. 아들이랑 나란히 헌께 힘이 나. 혼자는 팍팍하제.”

“땅은 어머니의 전부죠. 평생 자식들 키우고 일궈내온. 어머니한테 땅이 어떤 의미인지 아니까, 그 땅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시리라는 걸 아니까, 무조건 일하시지 말라고는 못해요. 그냥 제 힘 닿는 데까진 틈날 때마다 와서 어머니랑 함께 일할라고요.”

 

 

▲ 김형님 할매는 오늘 분대밭을 매러 왔다. 호미 날로 우북한 덤불을 ‘끌쩍’거리니 사방에서 분대싹이 뽀족뽀족 어린 낯을 내놓는다.

“풀 매드끼 매야제 이녁 맘도 안 가꾸고 내비두문 배래”

천지에 매화향기 아득하면 도무지 앉아 있지를 못하고 향기따라 이리저리 어정대는 ‘산각도인(散脚道人)’이 있다 하던가. 이 봄 호멩이 자루 하나 들고 이 밭 저 밭 성큼성큼 돌아다니는 김형님(70) 할매도 ‘산각도인’이렷다.

“상추 째까 갈고 인자 째깐헌 분대밭 조깨 끌쩍거릴라고 가.”

‘째까’ ‘째깐헌’ ‘조깨’…. 이녁이 할 일은 무엇이든 ‘작다’ 하는 습성, 이녁이 하는 고된 노동의 값도 ‘끌쩍’쯤으로 겸양하는 습성. 생색 없이 엄살 없이 삶의 짐을 지고 가는 이의 말법이다.

월암리 성도마을 까끔밭을 부산나게 올라가는 할매.

“나 열아홉에 시집와 갖고 흙에 엎진 지 50년이 넘었어. 글은 못 배왔어도 일은 잘 배왔어, 하하.”

할매는 오늘 분대밭을 매러 왔다. 호미 날로 우북한 덤불을 ‘끌쩍’거리니 사방에서 분대싹이 뽀족뽀족 어린 낯을 내놓는다.

“떡해 묵어. 색도 포름허니 이삐고 쫄깃쫄깃 맛나. 분대 좋다고 환장허는 사람들 쪼까썩 줄라고 해. 원래 놈 주는 것이 재밌어. 나 먹을라고 안해. 내 입에는 암것이나 들어가도 되야.”

“종자도 존 놈은 놈 주고 나는 물짠 놈 해. 그래도 열어. 놈의 것 잘 되야서 기쁘다고 허문, 그것 보는 것이 좋아. 사촌이 논 사문 박수치고 내가 못 산 것을 샀구나 그렇게 보고.”

할매는 그리 살아왔다. 호멩이 자루로 한사코 덤불을 걷어내 장차 세상을 이롭게 할 싹을 찾아내듯 덤불 같은 욕심 따위는 마음밭에 덮어둔 적이 없는 할매인 것이다.

“욕심이 일어나문 놈 물짠 것 주고 나 좋은 것 갖고잡제. 그것이 못씰 맘이여. 풀 매드끼 매야제, 이녁 맘도 안 가꾸고 내비두문 배래. 밭도 사람도 가꾸는 대로 되야. 그래서 사람이 똑같이 좋게 태어나도 난중에는 천층만층구만층이 되는 것이여.”

 

 

▲ “파고 매고 숭구고 키우고…팽야 그것이 팽생 해온 일이여.” 김순예 할매.

“파고 매고 숭구고 키우고…그것이 평생 해온 일”

“요런 것은 일도 아니여. 그락저락 노는 거여.”

밭에서 풀 매는 것쯤이야 김순예(84·신천리 진천마을) 어매에겐 일축에도 못 끼고 ‘그락저락 노락질’이다.

“도시서나 살문 몰라도 시골에 살문 눈 뜨문 흙 몬치고 사는 것이 일이여.”

째깐해서부텀 이날평상 흙에서 사는 어매에게 이날평상 요긴한 벗은 호미.

“내가 숨 떨어지문 몰라도 호무(호미)는 손에서 떨어질 날 없제.”

오늘도 호미를 두 개 갖고 밭에 행차했다.

“요 놈이 잘 될란 가 저 놈이 잘 될란가 시퍼서 두 개 갖고 나왔어. 일 년에 호무 한 나썩은 쓰제. 요러고 닳차진 것 잔 봐.”

호미 닳아진 그만치 밭에 엎드려 몸뚱이도 닳아쳐 왔을 터.

“일이라면 똑소리나제. 내가 공부만 못했제, 못한 거 없어. 첫 딸로 생개나서 일 시개묵을라고 그랬는가 우리 어매 아배가 나를 공부를 안 갈찼어. 한글도 몰르고 숫자도 잘 몰라. 긍께 모든 것이 불편하제. 뻐스 그것이사 못 타까. 글씨 몰라도 ‘500번’만 일로 댕긴께 문제없어. ‘500번’ 타문 읍으로 가. 그것 하나만 알문 되야.”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은 ‘500번 버스’ 하나면 족했다. 그리곤 눈뜨면 논으로 밭으로 향하는 하루하루. 그 길은 글자도 숫자도 쓸데없는 길.

날마다 논으로 밭으로 들명날명한 어매의 걸음걸음 쌓여 ‘아들 싯 딸 싯’은 장성했다.

“연필이라곤 손에 쥐어보들 안했제.”

평생 손에 쥐어온 것은 호미, 꽹이, 삽….

“파고 매고 숭구고 키우고…팽야 그것이 팽생 해온 일이여.”

 

 

▲ “길갓에 뙤갱이만 벌어. 나라땅이여. 아무라도 보지런한 사람, 추켜든 사람이 벌어묵어.” 유봉덕 할매.

“아무라도 보지런한 사람이 벌어묵어”

도로에 뽀짝 붙은 ‘길어깨(노견)’ 같은 땅이다. 애매하게 붙어 있는 좁다란 흙길을 어엿하니 ‘밭’으로 일군 이는 유봉덕(월암리 청산마을) 할매.

“노니(노느니) 이거라도 지슬라고. 그전에는 크은 밭 있었제. 인자 늘그고 다리 수실(수술)하고 허리 수실하고 다 폴아불었어.”

그러고도 흙으로 밭으로 향하는 마음 어쩌지 못하여 여기저기 널린 자투리 땅들을 조각보처럼 일구고 산다.

“길갓에 뙤갱이만 벌어. 나라땅이여. 아무라도 보지런한 사람, 추켜든 사람이 벌어묵어.”

손바닥만한 ‘뙤갱이밭’일망정 할매에겐 마음 붙일 든든한 의지처.

“땅이라문 눈물나고 부러뵈는 시상을 살았어. 전에는 땅늘려가는 재미가 질로 컸어. 낮에는 품 벌라고 놈의야 일하고 밤에는 우리야 일하고 그랬어. 놈의야는 틈으로 못한께 우리야는 달밤에 포도시 하는 거제. 달 뜬 밤이문 잠을 못자고 댕임서 일했어. 낮인중 밤인중 모르고.”

전설처럼 멀고 아름다운 이름 ‘달밭’을 먼바다 여서도에서 들은 적이 있다.

“옛날에 여그 사람들이 얼마나 부지런했냐문 산을 다 일궈서 밭을 맨들아놨어. 낮에 해 뜰 때는 딴 일 하느라 바쁜께, 달 뜬 밤으로만 잠 안 자고 산을 일궈서 밭을 맨든 사람도 있었어. 순전히 달 뜬 밤에만 일해서 그 밭을 맨들았다해서 ‘달밭’이여.”

절박하고 치열한 삶과 노동이 낳은 ‘달밭’.

그런 달밭들이 어디선가는 또 묵정밭이 되어가고 있을 세상에서 할매는 여전히 초록의 ‘뙤갱이’를 늘려가고 있다.

“육남맨디 아들 한나를 그러께 보내불었어. 의지가 없응께 요거이라도 한다고 돌아댕겨. 가만히 앙겄들 못해. 자석을 앞에다 보내논께. 잊을 참이 없어. 낮에나 밤에나.”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최성욱 다큐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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