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말한다> 강진수

최근 문재인 정부의 특목고, 자사고 폐지 정책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예전부터 폐지하겠다 말겠다 말은 많았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는데 이번 정부 들어서 추진하겠다는 강력한 의사에 특목고, 자사고 종사자 및 운영자, 학생, 학부모 모두 불만을 표하고 있다. 특목고, 자사고를 모두 일반고로 전환하면 대체 교육이 무슨 꼴이 되겠느냐는 불만이 가장 크게 제기되고 있다. 상향평준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결국 하는 짓은 하향평준화에 불과하다는 것이 주장의 큰 개요다. 이들의 사고방식에 일반고란 하급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며 그로부터 개선의 여지가 없는 공간이기도 하다.

 

 

필자 역시 특목고를 졸업했지만 이번 정부의 폐지 의사에 크게 환영한다. 특목고와 자사고는 그 본질이 바래진지 이미 오래다. 특별 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철저히 입시 교육이 이루어져 학생들을 혹사시키고 있고, 이를 견디는 학생들을 수준 높은 학생, 아예 이를 수준 높은 교육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특별 의식 속에서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선생은 선생들대로, 운영진들은 운영진 나름대로 잘못된 사고방식과 그에 따른 의사결정, 관습과 전통으로 갈음되는 폐해들, 혁신과 개혁을 주저하고 오로지 입시에 중독되는 현상 등이 나타나고 있다. 사실 특목고와 자사고는 모두 어떤 변화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자체의 문제가 분명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렇다면 특목고와 자사고 내부에 변화를 주면 되는 것이지 왜 일반고로의 전환이 필요하냐는 물음이 생길 수도 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교육의 평등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다. 평등하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다. 사실 일반고를 우리는 일반고라 부를 필요도 없다. 다만 특목고와 자사고가 형성되면서 원래 있던 고등학교들을 일반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말만 일반적이지, 결국은 특별한 학교와 그렇지 못한 학교로 구분하는 것이 아닌가. 학생들 역시 그런 사고방식을 갖고 생활하게 된다. 나는 특별한 학교를 나왔으니 특별한 학생의 신분이다, 라는 사고방식. 그리고 어디든 가서 어디어디 학교를 나왔다는 것에 특권 의식을 가지게 된다. 이는 결코 평등의 교육이 아니다.

교육은 모두가 똑같은 것을 배우라는 것은 아니다. 평등한 교육이란 똑같은 것을 무조건적으로 주입하는 행위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에 있어서 위와 아래, 계단의 구조를 형성한다는 것은 분명 평등의 위배임에 틀림없다. 교육을 하는 것에 평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받는 사람들이 평등한 위치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비로소 교육의 평등이다. 교육을 받는 사람, 즉 학생들이 모두 나 어디 학교 다녔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어떤 교육을 받더라도 떳떳하게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진정 평등한 환경인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교육의 평등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평준화가 되어 모두가 똑같은 것만 배우게 되면 교육사회에 무슨 영재가 생겨나고 무슨 발전이 있을 수 있겠냐는 어리석은 반문을 제기한다. 분명한 것은 평등한 교육 사회에서 영재는 잘 생겨나고 발전 역시 잘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특목고와 자사고를 폐지하자는 말이 결코 특목고, 자사고에 있던 학생들을 끌어내려 무지한 교육을 받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일반고가 현재 가지고 있는 문제들, 학생사회의 폐해라던가 교직원들의 무책임감, 교육이 정상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 현상들을 결코 내버려두겠다는 것이 아니다. 특목고와 자사고를 폐지한다는 것은 일반고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 역시 이루어지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어떤 명분으로 특목고와 자사고를 폐지할 수 있겠는가. 현 정부는 일반고에 어떤 문제가 쌓여있고 이를 어떻게 개선해나갈 수 있을 것인지를 정리해서 추진해야만 한다. 또한 일반고 내에서 어떤 방식으로 구분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특권 의식, 특별 교육 수혜자로서의 의식을 함께 폐지하기 위하여, 영재 교육의 대상 범위를 늘리는 방법이다. 우리 사회에서 1%에 해당하는 학생들만을 뽑아 특수 목적 교육이니 영재 교육이니 이루어지게 하였으나, 특목고와 자사고 폐지와 더불어 특수 교육의 범위 역시 30~40%대로 넓히는 것이다. 다양한 학생들이 더 많이 특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면서, 그 교육 프로그램의 희소성 역시 타파하는 것이다. 또한 이런 교육들이 교과 외에 이루어지지 않고, 선택적으로 학생들에 의해 들어질 수 있게 하려는 교육 제도의 변혁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듣고 싶은 수업들을 토대로 시간표를 짜고 다양한 수업을 듣고, 그 과정 속에서 보충 교육, 특수 교육 등 다양하게 물 흐르듯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수업 방식이 만들어지려면 학생을 평가하는 방식 역시 변화해야 한다. 그리고 수능이라는 현 체제 역시 변화의 필요를 피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현 입시 체제 속에서 수업 방식과 평가 방식의 대대적인 변화는 이루어질 수 없다. 교육 자체가 모두 수능을 공부하려는 입시 교육으로 돌아서 있고, 그게 학교와 학생들에겐 효율적이라고 판단되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능이라는 체제가 변화하지 않는 이상 모두 다 빛 좋은 개살구이다.

필자는 여전히 특목고와 자사고의 폐지를 찬성한다. 하지만 폐지와 더불어 중요한 것은 교육사회의 대대적인 변화와 개혁이다. 위로는 수능에서부터 아래로는 고등학교 교육 환경 개선과 수업 방식, 평가 방식의 변화까지. 이렇게 뒤따라오는 수많은 과제들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특목고와 자사고 폐지 자체가 빛 좋은 개살구로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특목고와 자사고의 폐지란 거대한 변화를 위한 시작점인 것이다. 현 정부는 이런 과제들의 산적을 마땅히 떠안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을 해나가야 한다. 교육사회의 문제들은 너무나도 많고 앞으로 가야할 길도 멀다.

교육의 평등은 우리 사회가 성숙해질수록 더욱 중요한 맹점임에 틀림없다. 교육이란 누가 뭐라 해도 새로운 인재들을 끊임없이 배출해내는 샘물과 같고, 그 물이 맑지 않으면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과 사회인들은 과연 무슨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겠는가. 교육이라는 시작점에서부터 평등의 의식은 뿌리 깊게 박혀 있어야만 하고, 그 이후로의 삶과 생활 속에서도 평등 의식이 당연하다는 듯이 작용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강남역 살인사건이라든지, 복수를 위한 염산 테러, 신입생을 과음 시켜 죽음에 몰아넣은 선배들, 수많은 갑과 을 사이의 불평등, 특권의식을 가지고 태어나 자란 사람들의 이른바 갑질 따위의 일들이 사회에서 사라질 수가 있다.

버트런드 러셀의 명언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젊은이들을 위해 가장 바람직한 것은 누구나 위대한 업적을 남길 만한 능력이 있다고 믿어주는 분위기, 따라서 그들의 자부심이 질투에 따른 조소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분위기에서 사는 것이다.”

<런던통신-위대한 국가가 우리에게 주는 것>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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