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여백

스웨덴, 21세기 판 ‘아메리칸 드림’인가?

<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9회 / 이석원 이석원 기자lmaster@weeklyseoul.netl승인2017.07.13 15:40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최근 몇 년 새 한국의 청년들이 만들어낸 신조어 중 가장 참담하고 비참한 말이 ‘헬조선’일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후 새롭게 등장한 이 단어는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지옥을 뜻하는 ‘Hell’과 ‘조선’을 합성한 말이다. 최근 한국의 경제 여건이나 생활이 최악이라는 반증이다. 특히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젊은 청년들이 심하게 느끼는 말이다.

그런데 각종 경제지표는 한국이 그렇게까지 최악이라고 얘기하고 있지 않다. 또 최근 경제가 심각하게 나빠진 남유럽 국가들, 그리스나 이탈리아, 스페인이나 포르투갈과 비교하면 한국은 그래도 아직 살만하다. 하지만 그들 나라에서 살아보지 않은 한국의 청년들은 그들 나라와 굳이 비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냥 자신이 살고 있는 한국의 상황이 그야말로 ‘지옥’ 같다고 느끼는 것이다. 국가의 전반적인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에 대한 강력한 항의다.

 

▲ 스웨덴 왕궁

 

그러다보니 최근 청년들 사이에서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에 대한 선망이 최고치에 달했다. 얼마 전 한 매체에서 모 대기업에 근무하는 20대와 30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이민을 꿈꾸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는 대답이 70%를 넘겼다. 또 ‘이민 대상 국가로 가장 선호하는 나라가 어디냐?’는 질문에는 가장 많은 사람의 대답이 스웨덴이었다. 2위가 덴마크, 3위가 핀란드, 4위가 오스트리아, 5위가 노르웨이였다고 한다. 상위 5개국 중 북유럽 국가가 4개국이다. 거의 모두가 북유럽 국가를 선호한다고 봐도 되는 결과다.

한국에서 가장 ‘좋은’ 직장 중 하나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그 회사에 근무하는 젊은이들이 이렇게 답한 이유는 뻔하다. 북유럽 사회의 복지와 사회 안전망, 합리적인 시스템 때문이다.

가장 최신인 지난 2014년 말 기준 외교부에 등록된, 여행이나 단기 출장, 연수가 아니라 스웨덴 이민청으로부터 3개월 이상의 거주허가를 받은 한국인(이하 교민)이 2789명이었다. 역시 그렇게 많지 않다고 느낄 수 있지만, 실은 전 유럽 국가들 중에서 6번째로 많은 수준이다. 물론 러시아나 과거 소련에 속했던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은 제외. 그들 나라에는 아주 오래 전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스웨덴보다 교민이 많은 나라는 영국(4만 263명), 독일(3만 9047), 프랑스(1만 5000명), 이탈리아(4148명), 스페인(3708명) 뿐이다. 스웨덴이 정확히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고, 스웨덴과 스위스와 스페인을 구분 못하는 사람도 제법 있는데. 게다가 10여 년 전 보다는 많아졌지만 아직까지 스웨덴 여행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주변 대다수라고 보면 상당히 많은 숫자다. 같은 북유럽권에 속하는 다른 나라의 경우, 노르웨이가 1121명, 핀란드가 555명, 덴마크가 551명이다. 가장 많은 노르웨이도 스웨덴의 절반 이하 수준이다.

 

▲ 이민자들에 대한 포용력이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진 스웨덴. 물론 최근에는 이민자에 대해 곱지만은 않은 시선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유럽 사회에서 스웨덴은 가장 진입장벽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사실은, 전체 교민 대비 영주권자나 시민권자의 비율이다. 스페인 73.4%, 스웨덴 70.6%, 영국 48.3%, 독일 47.2%, 프랑스 23.9%, 이탈리아 16.7%다. 스페인이 가장 높고 그 다음이 스웨덴이다. 한 가지만 더 보자. 그렇다면 아예 국적까지 취득한 시민권자만 따지면? 스웨덴이 단연 1등이다. 64%다. 그 뒤를 스페인 28.5%, 독일 27.1%, 영국 21%, 그리고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각각 7%와 6.7%다. (물론 이 이후의 자료가 아직 외교부에도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정확한 교민 상황은 다소 다를 수 있긴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스웨덴에 교민이 이 정도로 많고, 또 국적까지 취득한 시민권자는 유럽에서도 가장 높은 비율인 이유가 뭘까? 독일 같으면 과거 박정희 정권 때 보내진 파독 간호사나 파독 광부라도 이유가 되겠지만, 스웨덴은 도대체 왜? 스웨덴은 한국과 워킹홀리데이 협정을 체결한 나라다. 전 세계 21개 협정 체결국 중 유럽 국가가 13개국(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아일랜드,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 이탈리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체코)이고, 그 중 모집 인원의 제한이 없는 나라가 스웨덴을 비롯해 독일과 덴마크뿐이라 그 숫자도 적지 않은 편이지만 그게 영주권 이상을 취득하는 이유가 되진 못한다.

스웨덴에서 오래 산 교민들은, 스웨덴에서 영주권 이상을 취득한 사람 중에는 국내 기업의 현지 주재원으로 파견됐다가 아예 눌러 앉은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유학을 왔다가 아예 영주권까지 취득한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스웨덴의 복지 시스템이 스웨덴 경제와 결합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아무리 복지 시스템이 좋아도 경제 규모가 작으면 살기가 쉽지 않다. 복지 시스템이 뛰어나다고 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데 국가가 먹여 살려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비슷한 복지 국가지만 덴마크나 노르웨이, 핀란드가 스웨덴과 다른 가장 큰 이유다.

또 하나, 진입 장벽이 다른 국가에 비해 훨씬 낮다는 것이다. 영주권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일정기간 스웨덴에서의 경제활동과 그에 따른 납세 기록, 그리고 범죄 여부 정도만 따지기 때문이다. 스웨덴어 시험도, 역사나 문화에 대한 테스트도 없다. 경우에 따라 기간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2년 거주허가를 가진 경우 한 번 연장을 한 후 두 번째 거주허가가 만료되기 전 영주권 신청을 하니까 4년 정도다. 그리고 영주권을 취득한 후 1년 정도 더 있으면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다.

 

▲ OECD 국가 중 이민자를 위한 무료 자국어 교육을 시켜주는 나라는 스웨덴 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사회로의 편입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사진은 이민자를 위한 스웨덴어 교육(SFI) 수업 장면.

 

결국 적당한 경제 규모와 이민자에 대한 문턱이 높지 않다는 것은 영주권 이상을 취득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행운이다. 그리고 어쩌면 기회일 수도 있다. 그런 이유들이 모이고 모여서 현재 한국에서는 ‘헬조선’의 대안으로 스웨덴 이민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시도를 했지만 실패하거나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높은 조세부담률도, 날씨의 문제도 그렇다. 또 최근 아랍계 난민이나 이민자들의 폭증에 따른 스웨덴 사람들의 이민자에 대한 곱지만은 않은 시선도 그 이유가 될 수 있다. 인종 차별의 수준은 아니더라도 불편해 하는 것은 사실이니까. 또 아무리 노력해도 적응하기 쉽지 않은 스웨덴 사람들의 정서나 생활 방식도 실패와 포기의 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한국 젊은이들의 스웨덴에 대한 선망은 과거 1960, 70년 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것과 비견된다. 이는 사실 씁쓸한 일이다. 환영할 수만도 없는 일이다. 밀려나서 가면 안 된다. 기회와 경험의 다양성, 진정한 글로벌리제이션의 일환이어야 한다. 스웨덴도 하나의 ‘또 다른’ 무대여야지, 도피가 돼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고 합리적인 복지 시스템이 우리의 기회가 돼 줄 것이다.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주)뉴텍미디어그룹  |  등록번호 : 서울다07108  |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발행인 겸 편집인 : 정서룡  |  발행소 : 서울시 종로구 난계로 29길 27(숭인동) 동광 B/D 2층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Copyright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  master@weeklyseou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