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록 에세이> 제주해녀 이야기

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다는 삼다(三多)의 제주. 여기에 물질(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해녀들도 빠질 수 없는 제주의 상징이다. 제주도에는 모두 5000여 명의 현역 해녀가 있다고 한다. 한때는 1만여 명의 해녀가 제주 바다를 휘젓고 다녔지만 연안어장의 고갈과 물질이 힘들고 나이가 고령화되면서 그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다. 이대로라면 오래지 않아 해녀들이 영영 종적을 감출지도 모를 일이다.

‘물속에 들면 바다가 곧 하늘이다.’ 제주 해녀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그들에게 산호빛 바다는 평생 놀이터 같은 곳이다. 스무 살 이전에 해녀일을 시작해 짧게는 20∼30년씩, 길게는 50∼60년씩 바다와 함께 인생의 황금기를 보낸다.

 

▲ 일러스트=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예로부터 제주 아낙들의 억척스러움은 유별났다. 타고난 근면성으로 척박한 자연환경에 맞서 가히 초인적인 생활력을 발휘해왔다. 고구마나 보리밖에 심을 수 없는 돌멩이 투성이의 척박한 땅으로는 온 가족의 생계를 도저히 꾸려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숙명적인 ‘물질’에 매달려야 했다.

“이여싸나 이여싸나 / 어떤 사름 복도 좋앙 / 앉아 살리 우리네는 / 보롬이랑 밥으로 먹곡 / 구름으로 똥을 싸곡 / 물절이랑 집을 삼앙 / 부모동슁 떼여두곡 / 오늘날도 물에 든다.”

(이여사나 이여싸나 / 어떤 사람 복도 좋아 / 앉아 살리 우리네는 / 바람일랑 밥으로 먹고 / 구름으로 똥을 싸고 / 물결은 집안 삼아 / 부모 동생 떼어두고 / 오늘날도 물에 든다)

제주도 무형문화재 1호로 지정된 해녀 노래 소리는 제주 해녀들의 희로애락을 거침없이 보여준다.

제주 해녀들의 바다는 고단한 삶의 처음이고 끝이다. 야윈 몸을 이끌고 거친 파도를 벗 삼아 오늘도 내일도 ‘물질’을 놓지 못하는 그네들의 생애는 거룩하고 한편으론 아름답다. 바닷물 속에 잠겨 있으면 뭍에서 느끼던 몸과 마음의 고통이 깨끗이 사라진다는 그네들의 말은 삶의 지난함을 새삼 일깨워준다.

잠수(潛嫂) 또는 잠녀(潛女)는 해녀의 또 다른 이름이다. 제주도에는 약 1500년 전부터 해녀가 있었다고 한다. 물질 솜씨에 따라 보통 상군(상감수), 중군(중감수), 하군(톨파리 또는 갓잠수)으로 나누는데, 가장 물질을 잘 하는 사람을 상군, 중간 정도의 해녀는 중군, 이제 막 물질을 배운 해녀를 하군이라 부른다. 상군 중에서도 ‘대상군’은 물질 솜씨가 가장 뛰어난 해녀를 일컫는다. 제주 해녀들이 가장 듣기 좋아하는 ‘애기상군’은 어릴 때부터 물질 솜씨가 남다른 이에게 부여하는 호칭이다. 그렇지만 이런 자랑스러운 호칭은 해가 갈수록 듣기 어려워지고 있다. 해녀들의 나이가 점점 고령화되고 물질을 하려는 젊은 사람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제주 해녀들은 10미터 안팎의 얕은 바다에 들어가 소라, 전복, 해삼, 톳, 우뭇가사리 등을 채취하는데, 이런 작업은 특별한 장비 없이 모두 자맥질로 이루어진다. 가끔 어장이 있는 곳까지 배를 타고 나가서 작업을 하기도 하는데, 이것을 ‘뱃물질’이라 한다.

해산물 가운데 소라는 아무 때나 잡지 않는다. 제주 해녀들은 마을에 경조사가 있는 날은 소라를 채취하지 않는데, 이는 해녀들이 소라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균등하게 나눠 갖기 위함이다.

제주도는 ‘해녀의 본고장’에 어울리게 전 지역에 걸쳐 해녀들이 고루 퍼져 있다. 그 중에서도 섬 속의 섬, 우도는 해녀들의 ‘마지막 고향’이다. 제주도에서도 바닷물이 가장 깨끗하고 해산물이 풍부해 해녀들이 살기에 딱 좋은 곳이다. 주민들 중 넷에 하나는 해녀이고, “아들을 낳으면 엉덩이를 때리고 딸을 낳으면 돼지를 잡는다”는 말까지 생겨났다.

우도의 바닷가를 따라가다 보면 고무잠수복을 입은 해녀들이 자주 눈에 띈다. 미끈한 잠수복에 물안경을 쓰고, 옆구리에는 망사리를 끼고 태왁과 빗창을 든 채 바다 속으로 점프하는 모습은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우도는 제주도 동남쪽 성산포에서 바라다 보이는 작은 섬이다. 우도 사람들은 거개가 물질로 삶을 영위한다. 아침이면 우도 앞바다에는 수백 개의 하얀 태왁이 꽃처럼 떠 있는데, 바로 우도 아낙들이 물질을 하고 있는 풍경이다. 물때에 맞춰 일제히 바다 속에 들어가 물 밑에 널려 있는 해산물을 잡아 올린다. 숨을 길게 쉬고 들어가면 길게는 2분 정도 물질을 할 수 있다. 노련한 해녀들은 3분까지도 버티는데, 그만큼 숙련된 기술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물질을 하다 숨이 차면 수면 위로 떠올라 태왁에 몸을 걸치고 ‘호오이, 호오이’ 가쁜 숨을 내쉰다. 이를 ‘숨비소리’ 또는 ‘솜비소리’라 하는데, 물속에 들어갔다 나온 해녀가 숨을 고르기 위해 내뿜는 소리로 짧은 시간에 많은 탄산가스를 내뿜고 산소를 흠뻑 받아들이기 위한 무의식적인 행동이다.

 

▲ [유네스코 등재] 해녀홍보영상 캡쳐

 

해녀 일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한다. 여기에는 오랜 경험과 더불어 물질에 쓰이는 기구들을 빠짐없이 갖추어야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잠수복에 오리발(물속을 빨리 오르내릴 때 씀)은 기본이고 망사리(잡은 해산물을 담는 그물주머니)와 태왁(가슴에 안고 헤엄치는데 쓰는 스티로폼으로 만든 기구), 골갱이(돌멩이를 뒤집는 기구)와 빗창(전복을 따는 기구), 소살(물고기를 잡는데 쓰는 기구), 물안경, 갈고리 같은 해산물 채취에 필요한 장비들을 지니고 물속에 들어간다. 또한 흔들리는 물살에서도 중심을 잡고 작업을 할 수 있도록 3-5kg에 이르는 납덩이를 허리에 두른다. 이밖에도 일부 해녀들은 미역이나 톳을 베는 ‘정게호미’, 넓미역을 채취하는 ‘갈퀴’, 소라나 성게 따위를 캐는 ‘까꾸리’ 등을 가지고 들어가기도 하고, 수심 깊은 곳에서 일을 할 때 봉돌을 넣어 닻 역할을 하는 ‘생명줄’을 달고 잠수하기도 한다. 또한 제주 해녀들은 물수건을 일상적으로 쓰고 다니는데 이것은 뭍에서는 햇빛을 가리는 모자로, 땀을 닦는 수건도 된다. 물질할 때는 머리카락의 흩어짐을 막고, 머리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다양한 기능이 있다.

잠수 도구 중에서도 잠수복은 여러 변천 과정을 거쳤다. 지금의 고무 잠수복이 나오기 전에는 베로 만든 속옷에 작은 물안경이 전부였다. 그때만 해도 물질할 때 입는 옷을 ‘물옷’, ‘소중이’, ‘속곳’ 등으로 불렀는데, ‘소중이’란 제주도 고유의 여자용 하의를 말하며 해녀뿐만 아니라 농가의 부녀자들도 입고 다녔다. 아래 위를 흰 무명이나 광목으로 지어 입거나 윗저고리는 흰 것으로, 아래는 검정 무명으로 지어 입었다. 여기서 흰 저고리를 입는 것은 흰색을 멀리하는 상어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볼 때 지금의 ‘고무옷’은 개량 해녀복인 셈이다.

그래도 그땐 바다 속에 들어가면 짧은 시간에 많은 해산물을 건져 올릴 수 있었다. 그만큼 바다 자원이 풍족했던 까닭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물이 더러워져 값비싼 전복이나 해삼은 씨가 말라가고, 겨울철에는 잦은 풍랑과 차가운 바닷물 때문에 물질을 할 수 없다. 여기에다 중국산이 넘쳐나 힘들게 따온 해산물은 제값을 받기 힘들다.

해녀들의 나이는 보통 30-50대 초반이 대부분이다. 전성기의 해녀들은 수심 12-13미터까지 잠수해 작업을 한다. 해녀들은 보통 10일 물질을 하면 5일 정도는 바다에 나가지 않는다. 힘에 부쳐 한 달 내내 일을 해낼 수 없을 뿐더러 그 기간 동안 집안일을 챙기거나 밭일을 한다.

제주 해녀들에게 가장 힘든 것은 아마도 거친 물질로 생긴 몸과 마음의 병일 것이다. 연중 물속에서 호흡을 멈춘 상태로 해산물을 채취하다 보니 높은 수압과 산소 결핍 등으로 만성 두통, 난청, 이명, 위장병, 신경통, 관절염 같은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이 아픔을 참기 위해 거개의 해녀들이 진통제(‘뇌선’이라 부른다)를 작업 전후에 복용하고 있는 현실은 너무나 가슴 아프다. 삶의 방편인 물질을 끝까지 놓지 못하는 직업정신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렇다고 물질이 고달픔과 쓰라림으로만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다. 그네들도 엄연히 노동자이며 마음 한 구석에는 즐거움과 보람이 영글고 있다.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것보다 바다 속에 뛰어들어 물질을 하는 편이 훨씬 더 낫다고 여긴다. 사실 제주 아낙들은 살찐 해산물을 캐내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제주의 역사는 곧 해녀의 역사이다. 풍랑과 싸우며 오랫동안 자맥질을 해온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된다. 잠수 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누구나 바다 속을 헤집고 다닐 수 있다지만 해녀들의 자맥질만큼 정겨워 보이지 않는 것은 진득한 삶의 냄새를 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옥빛 제주바다는 오늘도 해녀들을 기다리고 있다.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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