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존중 사회' 앞서 '노동인정 사회'라도
'노동존중 사회' 앞서 '노동인정 사회'라도
  •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 승인 2017.07.18 14: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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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갈노> 이수호 칼럼

직업정치인들의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잘 드러난 사태가, 이번 국회의원 이언주의 학교 급식노동자에 대한 막말 파동입니다. 이 국회의원이 비정규직으로 저임금과 신분 불안 등을 호소하며, 그 해결을 위해 벌였던 파업에 대해 한 말이, 그것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선 그는 어느 방송과의 전화 대화에서 급식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헌법 정신에 따른 노동자의 권리지만, 아이들의 밥 먹을 권리를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권리 주장을 해주면 좋겠다.” 언뜻 보기에는 그럴 듯하지만 여기에는 은근히, 노동자의 파업은 이기적이고 상대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기에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그것은 교육이나 의료 등 직접 상대를 대면하는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제약하는, 사용자들의 논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걸음 들어가 생각하면 그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생계도 어려운 저임금에 신분마저 불안한 비정규직으로, 무슨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겠습니까. ‘좋은 물건을 사려면 제값을 주어라’라는 금언이 사실이라면, 노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밥 짖는 사람이 배가 고픈데 어찌 주걱이 넉넉하며, 요리하는 사람의 허리가 끊어지고 눈코 뜰 새가 없는데, 어찌 그 반찬이 맛이 있겠습니까.

또 노동자의 파업권을, 헌법에 명시되었으니 마지못해 인정한다는 식의 표현은, 인권과 생존권으로서의 노동권을 무시하고 이해하지 않으려는, 자본의 태도를 그대로 견지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많이 참은 것 같습니다. 직접 방송으로 나가지 않은, 취재 과정에서 내뱉은 그의 막말이 본심인 것 같습니다. 그는 파업을 벌이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싸잡아서 “미친놈들”이라고 하면서, 학교 급식노동자들에 대해서는, “그냥 밥하는 동네 아줌마들이다. 별 게 아니다. 왜 정규직화가 돼야 하나”라고 흥분했다고 합니다. 그 무식함과 천박함에 말문이 막힙니다. 변호사를 겸하는 직업정치인의 노동(자)관이 이 정도이고, 그것이 보편적인 것처럼 당당하게 떠드는 것을 보면, 그 당을 비롯한 우리나라 다수 정치인들의 인식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이언주 의원의 노동(자)에 대한 막말 사태를 보며, 아직도 우리 정치가 수준이 이렇게 낮은 것은, 이런 철딱서니 없이 공부도 안하는, 개념 없는 저질 정치인들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정치인들의 노동(자)에 대한 몰이해 사례는 많이 있습니다. 2015년 9월 3일, 당시 새누리당 대표였던 김무성은 최고위원회의 발언을 통해, “기업이 어려울 때 고통을 분담하기는커녕 강경노조가 제 밥그릇 불리기에만 몰두한 결과 건실한 회사가 아예 문을 닫는 사례가 많다”며, 콜트악기와 자회사 콜텍 노조를 정면으로 맹렬히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달랐지요. 그 회사가 문을 닫은 것은 강경노조 때문이 아니라, 많은 흑자를 내고도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면서, 구조조정이란 명분으로 노동자들을 집단해고 한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이 대법원의 판결에서도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김무성은 사과를 않다가, 거의 1년이 지난 다음해 8월에야 마지못해 사과를 했습니다. 김무성을 비롯한 이른바 보수 정치인들은, 파업이라면 무조건 강성노조이고 강성노조는 회사를 어렵게 한다는, 잘못된 노조운동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한 술 더 떠 민주노조운동을 이념화하여 빨갱이로 몰아붙이기도 합니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는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종북세력이고 문재인은 그 하수인이라고 몰아붙이며 민주노조운동을 왜곡했고, 지난 대선 때도, 박근혜 잔존세력으로 적폐 대상인 자유한국당 후보 홍준표가, 입만 열면 좌파 강성노조 귀족노조 운운하며, “당선되면 전교조를 반드시 손보겠다”는 등, 시대착오적 노동(자)관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언주 의원도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었지만, 마지못해 한 그의 첫 번째 사과라는 게 우리를 더욱 화나게 했습니다. 그는 “이유가 어찌 됐든 사적인 대화에서지만 그로 인해 상처를 입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다면 유감으로 생각한다”라며, 아직도 비정규직 급식노동자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와 아픔을 준 줄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또 ‘만약 있다면’이라고 해서 상처 입은 일부에게 ‘사과’도 아닌 ‘유감’이라 표현하며 별 것 아닌 것처럼 넘어가려 했습니다.

오죽하면 문재인 후보가 ‘노동존중 사회’를 구호로 내세우며 대통령에 당선됐을까요.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 정치권에 호소합니다. ‘노동존중 사회’는 아니더라도 ‘노동인정 사회’라도 확실하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전태일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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