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소주병을 든 중1 옆집 아이가 있다
옥상, 소주병을 든 중1 옆집 아이가 있다
  • 류승연 기자
  • 승인 2017.07.19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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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 류승연

빨래를 널러 옥상에 갔다. 언제나 그렇듯 힘 있게 문을 왈칵 여는데 후다닥거리는 인기척이 느껴진다. 옆집에 사는 중1 여자아이가 친구 2명과 함께 있다.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어른 흉내를 내려는 앳된 아이들 손에는 맥주 1캔과 소주 1병, 콜라 1개가 들려 있다.

“여기서 뭐하는 거야!” 대낮에 소주병, 그것도 옥상, 그것도 중1. 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옆집 아이에게 묻는다. “집에 아빠 없어?” “네”라고 답하는 아이.

“그럼 집에 들어가서 놀아. 여기서 뭐해. 4층 아저씨들이 옥상에 자주 오는데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 아이들은 주섬주섬 술병을 챙겨 내려간다. 나는 호랑이 선생님 같은 태도로 꼼짝 앉고 문 옆에 붙어 아이들을 주시한다.

 

▲ 일러스트=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집에 들어왔는데 마음이 영 불편하다. 옆집 아이 때문이다. 이 아이를 어째야 하나?

옆집 아저씨가 이사를 온 건 2~3년 정도 됐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을 홀로 키우는 싱글 파더다. 아저씨는 이삿날 빌라 전체 세대에 수박을 한 통씩 돌렸다.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머쓱하게 웃으며 잘 부탁한다고 말하던 아저씨.

아마 이혼을 하고 온 듯 했다. 사정을 묻기도 뭐했고 평소 자주 볼 수도 없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지냈다. 그런데 딸이 사춘기를 맞으면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하는 듯했다.

앙칼지게 소리를 지르는 딸의 목소리와 더 크게 소리를 지르는 아저씨의 목소리를 듣는 날이 많아졌다. 다른 세대 사람들은 이 같은 사실을 거의 모르고 있었는데 바로 옆집인 나는 부녀의 다툼 소리를 자주 들었다.

한바탕 고성이 오가는가 싶은 어느 날엔 와장창하고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린 적도 있다. 곧이어 “쾅~”하고 현관문을 거칠게 닫는 소리. 누가 깬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유리가 깨질 정도로 싸움이 심해지면서 딸이 밖으로 나가버린 듯했다.

초등학교 때의 이 아이는 그냥 춤을 좋아하는 여자아이였다.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음악을 틀어놓고 걸그룹 댄스를 연습하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빌라 옥상에서 친구들과 춤 연습을 하기도 했다.

중학교에 입학한 뒤 아이는 180도 변했다. 어느 날 복도에서 마주친 아이의 입술은 새빨간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14살짜리 아이가 ‘어른 여자’ 흉내를 내려고 화장을 시작한 것이다.

한번은 복도가 시끄러워서 문을 열어보니 한 눈에 봐도 껄렁대는 포스가 느껴지는 여자아이 5명이 복도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너네 어디 온 거야?”라고 물으니 옆집에 왔단다. 아직 옆집 아이가 안 와서 밖에서 기다리고 있단다.

보통 친구 집에 놀러갈 때는 학교에서 만나 같이 가지 않나? 왜 주인도 없는 집에 먼저 와서 몇 십분 씩 복도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거지?

내 포스도 만만치 않았던 터라 복도에서 조용히 하라고 경고하니 아이들이 하나둘 일어난다. 옆집에 찾아왔다던 아이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그대로 나가버린다. 초대를 받고 온 게 아닌 듯했다.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옆집 아이를 무작정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화장을 하기 시작하고, 껄렁한 친구들과 엮이기 시작하고, 아빠와의 싸움이 잦아진 아이. 하필 이 아이는 가장 안 좋은 방법으로 사춘기를 겪어나가려 하고 있었다.

바로 옆집에 살았지만 나는 이 아이의 이름도 몰랐고 어쩌다 마주칠 때면 서로 건성으로 인사를 주고받았을 뿐이었다. 아침 일찍 나가 저녁 늦게 들어오는 아저씨는 반상회에도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옆집은 빌라 속에 홀로 떠 있는 섬 같은 세대였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그런데 내가 봐버렸다. 옆집 아이가 숨어서 술을 마시는 모습을. 사내 아이였다면 옆집 아저씨에게 몰래 귀띔을 했으리라. 그런데 여자아이다. 아저씨한테 얘기했다간 이번엔 유리가 깨지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한 번 크게 혼나더라도 잡히면 다행인데 한창 민감한 시기의 여자아이를 투박한 남자인 아저씨가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오히려 더 엇나가지 않으면 다행이랄까.

그 때 어디선가 들은 말이 생각난다. “한 명의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맞는 문장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의미는 분명하다. 이 아이를 외면하면, 이 아이의 문제를 옆집의 가정사라고 모른 체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나가 옆집 벨을 누른다. 응답이 없다. 현관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옆집 아줌만데 문 좀 열어봐. 혼내려는 거 아니야!”

조금 있으니 아이가 문을 연다. 아줌마랑 얘기 좀 하자며 아이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아이는 거실에 앉고 나는 현관에 쪼그려 앉았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마주보고 앉은 아이에게 내가 제일 처음 꺼낸 말은 “너 니가 생각해도 사춘기인 거 같지?”였다. 처음엔 당황하던 아이가 한 번 더 반복해서 묻자 “큭”하고 웃으며 “네”라고 대답한다.

그래. 사춘기니까 그럴 수 있어. 아빠도 싫고 다 싫은데 뭔가 막 끓어오르고 반항하고 싶고, 화장을 하고 술을 마시면 왠지 자유로워진 것 같고, 그래 얼마든지 그럴 수 있어.

술 마시는 거 처음 봤으니 아저씨한텐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얼마든지 한번쯤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자주 마시거나 그러는 건 안 된다고 했다.

술을 마시면 안 되는 이유가 뭐냐고? 화장을 하고 빨간 립스틱을 바른다는 건 친구들과 밤에 놀러 나간다는 얘기다. 어디를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들끼리만 노는 곳은 아니리라. 술을 마시고 남자들을 만나게 되면 성적 폭행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현저히 높아진다.

“이미 성관계도 해봤니?”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아니요”라고 말한다.

그래. 그 말이 사실이라면, 아직 안 했다면 진짜 다행인거고. 네가 아줌마 말을 들을 진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성관계만큼은 스무 살 이후에 하라고 했다.

아마 아빠랑은 이런 얘기를 할 수 없을 거라고. 그래서 여자 대 여자로서 아줌마랑 얘기하자고. 이미 화장하고 술을 마시는 중1이면 알 것을 다 안다는 가정 하에 나는 말을 거르지 않고 이런저런 얘기들을 솔직하게 쏟아냈다.

은근슬쩍 겁도 줬다. “아줌마가 과거에 사회부 기자를 해봐서 아는데…”라며 술 마시고 가출한 10대 여자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무서운 상황들을 줄줄줄 나열했다.

“먼 데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야.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야.” 아이는 묵묵히 듣는다.

엄마와 연락은 하고 지내냐고 물으니 안한단다. 그래. 그랬구나. ‘여자의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는 게다. 사춘기를 맞은 이 아이는.

“아줌마 아들 장애인인 거 알지?” “네.” “너 장애인을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지 알아? 너가 와서 언제 한 번 우리 아들 좀 봐줄래?” 긴장이 풀린 아이는 큭큭 웃는다.

“이 얘기를 왜 하냐면 아줌마도 그만큼 인생이 복잡하다는 거야.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가 없어. 그런데 네가 술 마시는 걸 보니 그냥 지나치지 못하겠더라. 그래서 아줌마가 용기를 낸 거야. 내 인생도 복잡한데 너 인생을 그냥 놔둬선 안 될 것 같아서.”

“아줌마도 용기를 냈으니 너도 용기를 한 번 내볼래?” 무슨 뜻이냐고 묻는 무언의 눈빛.

“‘여자의 대화’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을 거야. 여자 어른에게 고민을 말하고 싶은 일들이 분명 생겨 날거야. 그럴 때마다 벨 딩동 누르고 우리 집을 찾아와. 아줌마한테 얘기 좀 하자고 해. 그런 용기를 낼 수 있겠어?”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약속할 수 있겠냐고 하자 그러겠다고 한다. 그래. 꼭 그러렴.

이 날의 대화는 이쯤에서 마무리됐다. 아이가 아빠 오기 전에 친척집에 가야 한다고 해서다. 왜 그러냐고 하니 아빠의 폭력 때문에 피해 있는 거라고 말한다. 요새는 안 때리는데 학교 담임선생님이 신고를 하고나서 안 때리는 거라고.

처음 듣는 충격적인 얘기. 만약 앞으로도 그런 상황이 있으면 일단 아줌마 집으로 도망오라고 했다. 그 때는 아줌마가 아빠랑 대신 싸워주겠다고.

하지만 난 이 이야기를 50%만 믿기로 한다. 친척집에 가기 위해 나가봐야 한다는 아이가 화장도 안 지운 채 배꼽티를 입고 집을 나섰기 때문이다. 어떤 친척이라도 14살짜리 조카가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방문하는 걸 그냥 두고 볼 이는 없으리라.

또 아이들 혹은 청소년이란 존재는 그 무지함과 순수함 때문에 오히려 더 잔인한 존재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얼마든지 어른들을 이용할 수도 있는 법이다. 뒤의 결과는 생각지도 않고. 그래서 난 일단 아이의 말을 50%만 믿기로 한다.

사춘기를 맞은 여자 아이. 부모에 대한 증오와 원망이 가득 차 있는 아이. 그것에 대한 탈출구로 ‘탈선’이라는 방법을 택한 아이. 옆집 아줌마인 난 이 아이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걸까?

내 새끼도 잘 키우기 힘든 세상에서 남의 새끼까지 신경을 쓰려니 정신적 에너지가 소비되는 걸 느낀다. 하지만 그대로 모른 척 할 수는 없다. 내 새끼가 필요할 때 남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려면 나 역시 도움이 필요한 남의 새끼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것이 온 마을이 함께 아이를 키워나가는 일일 것이다.

나는 조만간 옆집 아이가 딩동하고 벨을 눌러주길 바란다. 화장하고 술 마시는 친구들하고 헤어지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봐주길 바란다. 치근대는 나쁜 오빠가 있는데 어찌하면 좋겠냐고 물어봐주길 바란다. 아이가 용기를 내주기를 바란다. 그 한 번의 용기를 낸 최초의 행동으로 아이의 인생이 조금이나마 달라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류승연 님은 언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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