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록 여행스케치> 진안의 아름다운 자연색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 3개의 고장을 일컫는 말)의 고장, 전북 진안은 두 개의 우뚝 솟은 봉우리가 먼저 길손을 맞는다. 명승으로 지정된 마이산이다. 프랑스 여행 잡지 ‘미슐렝가이드’에도 소개될 만큼 신비한 명산이다. 수 억 년 전에 형성되었다는 두 개의 돌덩어리는 하늘을 향한 채 긴긴 세월을 이야기한다. 말귀처럼 생긴 동쪽이 수마이산, 서쪽이 암마이산인데, 사람들은 이 두 봉우리를 일컬어 ‘부부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 마령면 소재지에서 본 마이산의 두 봉우리

전설 머금은 두 봉우리

승천하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바위산이 되어 그 자리에 주저앉은 산신부부의 전설을 간직한 마이산. 그 신비에 걸맞게 철따라 네 가지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봄엔 안개를 뚫고 나온 두 봉우리가 쌍돛배 같다 하여 돛대봉, 수목이 울창한 여름에는 두 개의 봉우리가 마치 용의 뿔 같다 하여 용각봉, 가을엔 단풍이 물들면 말 귀 같다 하여 마이봉, 겨울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 같다 하여 문필봉이다. 마이산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전설이 얽혀 있어 더욱 신령스럽다. 고려 말 남원 운봉에서 왜구를 물리친 이성계가 꿈에서 국가를 잘 경영하라는 계시와 함께 금척(금으로 된 잣대)을 받았는데 바로 그 산이 마이산이라는 것이다. 이런 전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조선시대 궁중에서 경사스러운 잔치가 있을 때마다 추던 몽금척(夢金尺)이란 춤도 태조가 마이산에서 금척을 받은 내용을 담고 있다.

 

▲ 수마이봉에 드러난 타포니 지형
▲ 은수사 앞뜰에 핀 야생화
▲ 은수사에서 천황문으로 오르는 나무계단길

 

마이산으로 오르는 길은 두 갈래가 있다. 하나는 탑사(塔寺)가 있는 남쪽에서 오르는 코스며, 다른 하나는 북쪽에서 오르는 코스다. 잘 정비된 등산로는 곳곳에 안내판을 세워 놓아 초보자도 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 거개의 사람들은 주로 남쪽 코스를 찾는다. 그래서 북쪽 코스는 훨씬 한적하다. 다람쥐와 청설모가 수시로 얼굴을 보여주고, 숲 향기가 연신 내뿜는 호젓한 산길이다.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 계단이 끝나면서 앞이 툭 터진다.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던 마이산의 두 봉우리가 홀연 눈앞에 나타나니, 이곳이 바로 암마이봉(서쪽 673m)과 수마이봉(동쪽 667m) 사이의 V자 계곡인 천황문이다. 천황문은 일반 문(門)이 아닌 물이 갈라지는 분수령이다. 즉 암마이산과 수마이산에서 내려온 물이 북쪽으로 흐르면 금강, 남쪽으로 흐르면 섬진강의 원류가 된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기 전 이곳에서 기도를 드렸다는 전설이 있다.

수마이봉 중턱에는 사시사철 맑은 석간수가 흘러나온다는 화엄굴이 있다. 석간수를 마시고 기도를 드리면 예쁜 아들을 얻을 수 있다는 전설도 신비롭다. 화엄굴로 오르는 길은 아찔하다. 돌덩이가 금방이라도 굴러 내릴 듯해 오싹한 느낌이 든다.

 

▲ 은수사 앞마당에 서 있는 청실배나무
▲ 마이산 아래의 은수사

 

한편, 암마이봉 바위 표면 군데군데에는 마치 폭격을 맞은 것처럼 움푹 움푹 파인 많은 구멍들이 나 있다. 자세히 보면 벌집 같기도 하고 공룡 발자국 같기도 한 이 구멍은 암석이 오랜 세월 풍화하면서 생긴 이른바 타포니 지형으로, 마이산의 또 다른 명물이다. 타포니는 벌집 모양의 자연동굴을 뜻하는 코르시카의 방언에서 유래했다.

천왕문에서 탑사 쪽으로 내려오면 태조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위해 들렀다는 은수사가 자리잡고 있다. 절 뒤로 불쑥 솟은 코끼리 모양의 수마이봉이 압권이다. 절 앞마당에는 천연기념물 제386호인 청실배나무가 있다. 푸른 배가 열리는 이 나무는 이성계가 마이산에 들렀을 때 심은 씨앗이 자라났다는 전설이 있다. 이 나무는 ‘거꾸리 고드름’으로도 유명한데, 아주 추운 겨울날에 이 나무 아래에 맑은 물을 받아놓으면, 고드름이 아래에서 위로 솟아오른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없지만 마이산 두 봉우리 사이에서 불어오는 회오리바람과 관계가 있을 거란 추측이다.

 

▲ 신비스러움이 감도는 탑사

신비하고 기이한 돌탑

은수사에서 5분쯤 내려가면 돌탑으로 유명한 탑사가 나온다. 경건함과 신비함이 동시에 풍기는 절집이다. 절 주변에 흩어져 있는 80여 개에 이르는 돌탑은 심한 폭풍이나 태풍에도 흔들리거나 쓰러지지 않아 신비를 더한다. 언뜻 보면 금방이라도 쓰러져버릴 것 같지만 100여 년 동안 끄떡없이 버텨왔다. 그 단단한 돌 하나하나가 인간의 가변성을 꾸짖는 듯하다. 마이산이 자연이 만든 걸작품이라면 이 돌탑들은 인간이 만든 창조물인 셈이다.

탑사의 돌탑들은 이갑용(효령대군 16대손)이란 처사가 팔진도법과 음양오행설에 따라 10여 년에 걸쳐 쌓은 것으로 낮에는 돌을 모으고 밤에만 쌓았다고 한다. 당초에는 인간의 백팔번뇌를 상징하는 뜻으로 108기의 탑들이 세워져 있었으나 지금은 80여 기만 남아 있다. 외줄로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외줄탑과 이름 그대로 원뿔처럼 생긴 원뿔탑 등 생김새도, 쌓아올린 양식도 제각각이다. 특히 대웅전 뒤의 천지탑(天地塔, 일명 오행탑 또는 부부탑)은 제일 위쪽에서 아래의 모든 탑들을 굽어보고 있다. 모나고 찌그러진 돌을 하나하나 동그랗게 쌓아 올라가다 중간에서 합쳐진 형상으로 틈새 하나 없이 정교하다. 등산코스: 북부주차장-천황문-은수사-탑사-탑영제-금당사-남부주차장(2.7km, 1시간 30분소요), 남부주차장-고금당-비룡대(전망대)-성황당-봉두봉-탑사(5.5㎞, 3시간 소요).

 

▲ 기기묘묘한 바윗덩어리로 이루어진 운일암 반일암 계곡

태초의 자연이 만든 걸작품

진안은 산, 호수, 계곡이 잘 어우러져 있다. 그 중에서도 기묘한 바위들이 늘어선 운일암(반일암)은 보기 드문 자연의 걸작품이다. 진안읍에서 정천을 거쳐 20분쯤 달리면 주천면 소재지. 운일암 반일암은 여기서 운장산 쪽으로 2㎞쯤 더 올라가야 한다. 운장산 동북쪽에 걸쳐 있는 명덕봉(845.5m)과 명도봉(863m) 사이의 약 5km에 이르는 주자천 계곡이 바로 운일암 반일암이다. 계곡을 따라 크고 작은 기암들이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길손을 맞는다. 기암 밑으로는 소(沼)처럼 깊은 물이 흘러내린다. 암벽 여기저기 서 있는 푸른 소나무는 커다란 바위와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보여준다.

 

▲ 운일암반일암계곡을 찾은 피서객들
▲ 갈거계곡의 여름
▲ 운장산휴양림의 산막

 

운일암 반일암에서 남쪽 725번 국도를 따라 약 20분쯤 내려오면 갈거계곡이 펼쳐진다. 계곡 깊숙한 곳에는 운장산자연휴양림이 숨어 있다. 갈거계곡의 길이는 약 7㎞. 갈거 마을에서 시작한 깊은 골짜기는 오염원이 없어 물이 맑다. 갈거계곡을 따라 마당바위, 정밀폭포, 옥녀봉폭포, 장독바위, 학의소, 물통바위 등 명소가 많다. 운장산은 금강과 만경강의 분수령이다. 산을 떠받친 세 봉우리는 헌걸 차고 위엄이 서려 있다. 동봉과 서봉 사이에 솟은 상봉(上峰)이 가장 높다. 운장산휴양림에는 숲속의 집, 산림문화휴양관, 숲속수련장 등이 마련돼 있다.

 

▲ 물을 가득 담고있는 용담호

맑고 푸른 호수와 섬진강 발원지

진안읍내에서 5분 거리에는 맑고 푸른 용담호가 펼쳐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5번째로 큰 인공호수다. 호숫가에 솟은 지장산(774m)은 용담호를 바라보기 좋은 곳. 호수를 찾은 사람들은 가장 한국적인 풍경 앞에 감탄사를 터뜨린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아침녘에 찾으면 산과 호수가 만들어내는 몽환적인 풍경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

 

▲ 와룡마을에서 본 용담호와 봉화산

 

호수를 따라 난 길은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 호수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망향의 동산을 기점으로 용담, 상전, 안전 전망대가 차례로 나타나는데 용담호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용담댐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용담댐 물문화관도 들어섰다. 용담호 드라이브는 보통 댐 아래쪽 금강 상류의 섬바위에서 시작하는데, 795번 지방도로를 타고 용담호 안쪽으로 들어가면 굽이굽이 절경이 펼쳐진다. 1개 읍과 5개 면의 68개 마을을 수몰시킨 용담호의 호반 중간 중간에는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놓여 있다.

 

▲ 용담호에서 구봉산 쪽으로 가다 본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한편, 용담호에서 그리 멀지 않은 부귀면 신정리의 모래재(옛 26번국도)는 참으로 멋스러운 길이다. 완주군 소양면으로 이어지는 이 길 양쪽으로는 메타세쿼이아가 길게 늘어서 있다. 저 담양의 그것만큼 오밀조밀하지는 않지만 영화의 한 장면처럼 허전한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준다.

 

▲ 섬진강 발원지인 데미샘

 

백운면 신원리 팔공산(1,151m) 북쪽 기슭 상추막이골에는 섬진강 발원지인 데미샘이 있다. ‘데미’는 이 마을 사투리로 봉우리를 뜻하는 ‘더미’에서 왔다. 마을 주민들은 샘 동쪽에 솟은 작은 봉우리를 천상데미(1,080m)라 부르는데, 이는 섬진강에서 천상으로 올라가는 봉우리라는 뜻이다. 데미샘으로 오르는 길은 나무들이 우거선 호젓한 산길이다. 데미샘에서 시작된 섬진강물은 임실 순창 남원을 거쳐 곡성과 구례를 흠뻑 적신 뒤 전남 광양과 경남 하동 사이를 지나 남해로 흘러간다. 약 212km에 달하는 이 물길은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길다.

 

▲ 용담호 옆의 인삼밭

홍삼 특구로 지정된 진안

진안은 국내 유일의 홍삼 특구로 지정된 고장이다. 읍내의 인삼상설시장이나 시외버스터미널 바로 앞의 진안고원시장, 홍삼한방센터에 가면 진안관내에서 생산된 수삼, 홍삼 등 다양한 인삼 제품을 만날 수 있다. 홍삼한방센터에 들어서면 홍삼엑기스 비롯해 홍삼사탕, 홍삼 젤리 등 홍삼으로 만든 먹거리가 가득하다. 진안인삼은 사포닌과 진세노사이드 함량이 타지 인삼보다 월등히 높다. 일교차가 큰 해발 400m 이상 고랭지에서 생산돼 조직이 단단하고 향도 강하다.

 

▲ 진안산 수삼
▲ 진안산 인삼을 싼값에 판매하는 홍삼한방센터

 

인삼의 생육 기간도 다른 지역보다 60여 일 더 길다. 동의보감에 밝히고 있듯이 홍삼은 늙지 않고, 오래살고, 기운을 돋우는 등의 효능과 함께 최근에는 방사능 예방, 항암 효과, 기억력 증강, 성기능 향상 등의 효능이 입증되기도 했다. 이밖에도 홍삼은 식품 외에 여성들의 피부 미용이나 홍삼을 주제로 한 전문 스파 등 활용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진안읍내의 진안홍삼스파(1588-7597)는 음양오행 프로그램을 가미한 스파테라피존으로 건조, 아쿠아, 건식, 습식, 버블등 오행프로그램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홍삼 거품으로 온몸을 씻은 뒤 안개와 이슬비로 샤워를 하고 나무 침대에 깔려 있는 약쑥과 편백칩 위에서 피로를 풀 수 있다. 옥상의 하늘정원에서는 마이산을 바라보며 야외 스파도 즐길 수 있다. <여행작가/ 수필가>

 

 

여행팁(지역번호 063)

◆가는 길=서울에서 진안행 고속버스 수시 운행. 전주에서 진안행 시외버스 약 15분 간격으로 운행. 진안에서 마이산 북부주차장이나 남부주차장행 버스가 수시로 있다. 경부고속도로-대전 통영고속도로 무주 IC-국도 30번-용담호-진안읍-마이산, 호남고속도로 전주IC-전주역-26번국도-화심온천-신정리-연장리-진안-마이산. 진안읍내-795번지방도-10km-정천면-725번지방도-12km-주천면(좌회전)-732번지방도-3km-운일암반일암. 진안-30번국도(임실 방면)-백운-742번 지방도(장수 방면)-신암리-데미샘.

◆맛집=마이산 입구의 초가정담(432-2469)과 읍내의 깡통삼겹살(433-9438)은 진안의 대표 음식인 흑돼지삼겹살(깜도야) 전문점이다. 입소문이 자자한 귀자식당(433-9879)은 영양돌솥밥과 돼지주물럭이 별미고 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는 제일식당(433-2246)은 피순대가 맛있다. 마이산 남부주차장에서 탑사 가는 길에 더덕구이와 산채비빔밥을 내는 식당들이 밀집해 있다.

◆숙박=백운면 신암리에 데미샘계곡펜션(010-7361-1234), 데미샘빌리지펜션(433-4321) 등이 있고 용담호 근처에 있는 용담호반펜션(433-1800), 용담펜션(432-5551), 용꿈펜션(010-6420-4670) 등도 좋다. 데미샘자연휴양림(290-6993, 백운면 데미샘1길), 운장산자연휴양림(432-1193, 정천면 휴양림길 77)에서도 숙박 가능. 단 주말엔 예약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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