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우리 집 고양이 골드 녀석은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 풀잎에 맺힌 이슬을 핥는다. 아니다. 핥는다기보다 풀잎을 자근자근 씹는다. 얼핏 씹는 것 같지만, 그러나 씹는 것은 아니다. 손이 없기 때문에 이빨로 풀잎을 살짝 잡고서 혀로 핥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슬만 먹고 사는 공주도 있다지만, 공주는 그런 이미지만 풍기는 반면 고양이는 실제로 이슬을 마신다. 물론 이슬만 먹는 것은 아니지만, 아침 일찍 이슬을 받아먹는 재미를 고양이는 매우 흔쾌하게 즐긴다.

 

▲ 처음에는 이렇게도 어색했지만...

 

녀석은 내가 잠자리에서 일어나 물이라도 한 모금 마실라치면 저도 따라 일어난다. 함께 자는 것도 아닌데 귀신처럼 내가 잠에서 깨었다는 사실을 녀석은 알아차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신호를 보낸다. 물론 나한테 인사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먹을 걸 달라는 것일 뿐이다. 어떤 때는 기둥을 두 발로 박박 긁어대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어떤 때는 토방을 이리 왔다 저리 갔다 부산스럽게 쏘다니면서 마치 쫓겨난 아이의 울음 같은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고양이 소리란 기본적으로 애처롭다. 도대체가 녀석은 명랑한 소리를 내지 않는다. 이 세상 노래할 일 하나도 없다는 듯 노래하는 소리도 안 내고, 상쾌한 소리도 안 낸다. 소리를 냈다 하면 뭔가에 얻어맞은 동물의 신음 같은 소리일 뿐이다.

새벽이면 항상 내가 일어나는 기척에 따라서 일어나고, 내가 밖으로 나가면 칭얼대는 소리를 내며 내 주변을 맴돌다가 재빠르게 밥그릇 앞으로 달려가서 밥 달라고 다시 칭얼거리던 골드 녀석이 어느 하루 갑자기 안 보였다. 왜 안 보이지? 하면서도 뭐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살아 있는 녀석이 어디인들 못 가겠는가 하는 심사였더랬다.

 

▲ 시체놀이 시범중

 

아침을 먹고 집안을 둘러보던 중에 느낌이 뭔가 이상해서 대나무 숲을 주시하다가 골드 녀석을 발견했다. 녀석은 내가 부르며 다가가도 고개 한 번 돌리는 법이 없이 한쪽 방향을 날카롭게 주시하며 도움닫기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밤새 그런 자세로 앉아 쥐구멍을 감시하고 있었던가 보았다. 그렇다면 쥐는 지금 구멍 속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까? 아니 어쩌면 이미 반대편의 다른 구멍으로 탈출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오들오들 떨고 있는 쥐와, 이미 탈출해버린 쥐를 기다리느라 밤을 꼬박 지새운 고양이를 동시에 생각하고 있노라니 내 입에서 웃음이 막 터진다.

다시 한두 시간쯤 지난 뒤에, 녀석의 밥그릇 속에 제법 커다란 쥐 한 마리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고양이가 쥐를 잡아오는 현상쯤이야 이젠 뭐 그리 감탄할 만한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만이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에도 녀석의 밥그릇 속에는 쥐 한 마리가 들어 있었고, 그 다음 날에도 쥐는 역시 녀석의 밥그릇 속에 들어 있었다. 밤에는 통 안 보이는 것이 아마 멀리로 원정까지 가서 사냥을 해 오는 것 같았다. 전에 없던 일이라서 이게 뭔 징후인가, 싶어 곰곰 생각을 해보다가 놀라운 추론에 이르렀다. “이게 혹시 어미 잃은 새끼들 먹이? 그런 뜻인 거야?”

신통 방통에 오방통까지 하고도 남을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정말로, 정말로 그런 것이라면 골드 녀석은 혹시 우리의 고충을 십분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다는 얘기를 이런 식으로 하고 있는 것인가? 자기가 잡아온 쥐를 담아둔 밥그릇 앞에 서서 엥, 엥, 소리를 잇달아 내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자신의 사냥 실력을 자랑하자는 것만이 아닌 뭔가 당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걸로 어린 녀석들 주린 배를 채워주시고, 그리고 짜증을 내는 소리는 제발 이제 그만 좀 하세요, 하는 그런 당부를 말이다.

사실 우리의 정신은 그 즈음 어지간히 피폐해져 있었다. 어미 없는 새끼 고양이들을 돌본다는 게 처음 며칠은 제법 신명이 났던 게 사실이지만, 그렇게도 고난의 연속일 줄이야 예전에는 차마 상상으로도 해본 적이 없었다. 어쩌다 실수로 꽉 움켜쥐기만 해도 이내 죽어버릴 것만 같은 새끼 고양이들 생식기 주변을 살살 건드려서 똥오줌이 나오게 하고, 그것을 또 치워야 한다는 거, 치우는 데도 아무 걸레나 종이로 해서는 안 되고 부드러운 물티슈 같은 것으로 닦아낸 다음 다시 수건으로 말리는 방식의 처리를 해야 한다는 상상을 왜, 무슨 근거로 해볼 수가 있었을 것인가 말이다.

 

▲ 새끼들도 따라서 시체가 되어가고...

 

어떻든 그 일은 우리에게 현실로 주어져 있었다. 자다가도 새끼들 칭얼대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서 물을 끓여야 하고, 끓인 물을 식힌 다음 분유를 타서 먹이는데 서로 먹겠다고 덤벼드니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겨우 어떻게 먹이고 나서 한숨 돌릴라하면 이번에는 똥오줌이 마렵다고, 어서 빨리 어떻게 좀 해달라고 또 칭얼댄다.

그렇게 새끼 고양이들 수발을 들다 보면 밤은 어느새 아침이 돼있고, 녀석들의 똥오줌으로 젖어버린 수건은 하루에도 몇 장씩 배출된다. 게다가 암컷 세 마리가 합동으로 수컷 한 마리를 죽음에 이르도록 만들어버린 사건이 우리에게 준 충격은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것이어서, 우리는 딱히 짜증이랄 수는 없겠고 하여튼 그냥 의례적으로 이놈들, 이놈들, 하는 소리를 툭하면 뱉어내고 있었다.

그 소리를 골드 녀석이 밖에서 듣고 자기가 뭔가 도움을 주겠노라는 결심을 했는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녀석이 쥐를 잡아다가 밥그릇 안에 넣어두는 행위는 분명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녀석은 평소에 쥐를 잡으면 머리와 내장 일부를 먹고 나머지는 버리는 습성이 있었다. 그런데 밥그릇 안에 넣어둔 쥐는 온전한 한 마리의 쥐 그대로였다. 쥐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도마뱀과 개구리도 잡아다가 넣어두고 있었다. 그런데도 새끼들이 그것을 먹으려고 나타나지를 않으니 애가 탔던 것인가. 아니면 보다 신선한 고기가 필요하다고 여겼던 것인가.

어느 하루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골드 녀석이 쥐를 산 채로 잡아다놓고 문 앞에 앉아서 엥, 엥,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어디를 어떻게 했는지 쥐는 죽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살았다고 말하기도 어렵게 그냥 쪼그려 앉은 채로 달달 떨고만 있는데 골드 이 녀석 꼬라지 좀 보라지. 자기가 쥐를 산 채로 잡아온 것 자체는 아무 중요할 이유가 없다는 듯이, 까짓 쥐쯤이야 얼마든지 잡아올 수 있다는 듯이 쥐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새끼들이 잠들어 있는 방을 주시하며 엥, 엥, 소리만 내고 있는데 그 모습이 흡사 나한테 애들 넘겨요, 넘기라니까, 하는 것만 같다.

 

▲ 쥐를 산 채로 잡아다놓고

 

사람이 무슨 고양이 새끼를 젖 먹여 키운다고 방정을 떠느냐 하는 뭐 그런 어떤 메시지를 골드가 우리에게 보내고 있었다고 한다면 아무래도 과장이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새끼들을 골드에게 한 번 맡겨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요모조모 궁리 끝에 커다란 고무통에 바구니를 넣고, 바구니 안에 새끼들을 담아서 마당에 내놓아보았다. 그러자 골드 녀석은 바로 이것이라는 듯이 엥, 소리와 함께 껑충 뛰어서 고무통 안으로 쏙 들어간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녀석은 아마 이제야 내 세상이 되었다고, 새끼들을 돌보는 자격을 획득했다고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새끼들이 필요로 하는 젖도 없는 수컷 주제에 뭘 어찌할 것인가 말이다. 게다가 녀석은 새끼들의 항문 근처를 살살 간질이면 똥오줌이 나온다는 사실도 아직 모르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은 그저 앞발로 새끼들의 여기저기를 쓰다듬어도 보고, 혀로 여기저기를 핥아도 보고, 이렇게 저렇게 각종 체위(?)를 구사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새끼들은 오직 하나 귀찮기만 하다는 듯이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고, 뒷걸음질을 치다가는 결국 하나씩 둘씩 바구니 속을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바구니는 결국 골드 녀석의 잠자리가 되고 말았다. 녀석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는 듯이, 멀뚱하게 앉은 채로 새끼들을 보고 있다가는 정말로 잠이 들어버렸다. 그렇다고 실망할 것인가. 아니었다.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새끼들이 울부짖는 등 노골적으로 골드를 거부한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고 보면 미래는 밝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런저런 온갖 즐거운 상상을 다해보고, 일단 골드 녀석의 사료를 한줌 가져다가 새끼들에게 주어 보았다.

그러자 이게 웬일이냐. 신통방통하게도 새끼들은 일제히 사료 앞으로 달려들어 먹어보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었다. 아직 이가 튼튼하지 못해서 입에 물었다가 놓기를 되풀이할 뿐이긴 하지만, 먹지도 못할 것을 입안에 자꾸 넣어본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희망의 크기는 굉장한 것이어서, 잔뜩 고무된 우리는 사료를 잘게 빻아서 분유에 섞어 먹이는 한편 거칠게 빻은 사료를 접시에 담아 새끼들 앞에 공손히(?) 내주어 보았다.

 

▲ 나무타기 유격훈련장에서...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을 누가 했던가. 박근혜였지 아마? 박근혜와는 세상 보는 눈이 영 다른 우리는 뭐 우주까지도 필요하지 않았다. 새끼 고양이들이 우리의 간절한 염원을 알아봐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잠도 못자고 밤마다, 날마다 난리법석을 피워야만 하는 그 고충을 말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그렇게도 실감날 수 없었다. 새끼들이 마침내 사료를 아작아작 깨물어먹기 시작했을 때의 기쁨을, 그 해방감을, 그 성취감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우리의 뜻대로 되어주는 시간들이 착착착 잘도 지나갔다. 이 말을 조금 비틀어서 표현하자면 너무나도 충격적이어서 잊을 수 없는, 기록해둘 만한 사건이 우리 앞으로 착착착 다가오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물론 아직 그때는 오지 않았다. 당면한 관심사항은 새끼들이 바구니와 고무통을 빠져 나와서 마당을 마음껏 돌아다니기 시작했다는 점이고, 누가 그렇게 하라고 일러주지도 않았건만 스스로 땅을 파서 자신의 똥오줌을 묻는 경지에까지 도달했다는 점이다.

골드 녀석은 새끼들을 어떻게 설득했는지 자기가 직접 낳은 새끼들처럼 데리고 다니면서 아침에는 이슬 먹는 법을 가르치고, 낮에는 나무를 타고 오르내리는 유격훈련을 실시하는가 하면, 태양열이 아주 뜨거운 시간에는 누가 와서 다리 하나를 잘라가도 모를 정도의 완전 무방비 상태로 잠을 자는 시체놀이 같은 것을 즐기고 있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새끼들을 두고 사라진 검은 고양이 야옹이와 골드는 서로를 대하는 그 친애감이 남달랐다. 야옹이가 암컷이고 골드가 수컷이니 둘이서 연애 비슷한 것이라도 하는가보다고 우리는 생각했지만, 그런 관계는 아니었던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야옹이가 발정기에 이르렀을 때, 기미를 차리고 달려온 수많은 수컷들을 골드는 놀랍게도 하나도 적대시하지 않았다.

옆에서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 마치 사윗감 후보자를 보는 엄마 같기도 하고, 여동생의 남편감 후보자를 살펴보는 것 같기도 했다. 심지어는 그렇게도 다정하게 함께 놀던 검은 고양이 야옹이가 마침내 외부에서 들어온 수컷과 짝짓기를 하고 있는 장면까지도 골드 녀석은 멀리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 새끼를 낳고 사라진 검은 고양이 야옹이와 함께했던 시간

 

한 마디로 말해서 검은 고양이 야옹이와 골드 녀석은 친족이거나 가족이거나 뭐 그런 어떤 혈연관계 같은 것으로 우리에게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미를 잃어버린 어린 녀석들은 사람 세상의 촌수로 치자면 골드의 조카들이고, 조카딸들인 셈이다. 그러니까 골드는 그렇게도 다정했던 누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새끼들을 두고 떠나버린 그 빈자리를 연민과 애정으로써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믿었다. 진실로 그렇게 믿었다. 믿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기보다 골드 녀석이 우리에게 그런 믿음을 심어준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뭐냐. 그 뒤로 꼬박 일 년이 지난 뒤의 어느 하루, 골드 녀석은 우리가 그렇게도 철석같이 조카딸이라고 믿었던 암컷 중에 한 마리 경이 녀석의 수컷 노릇을 하겠다고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잉야, 잉야, 소리를 질러대는가 하면 앞발로 경이의 목덜미 같은 데를 살살 어르다가 냉큼 올라타기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게 뭐냐. 도대체 이게 뭔 일인 것이냐. 그 옛날 검은 고양이 암컷은 그렇게도 소 닭 보듯 하던 녀석이 그 새끼한테는 왜 그렇게도 애절하게, 간절하게, 절절하게 죽을 듯이 쫓아다니며 수컷 행세를 하는가 말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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