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1회

취임 2개월을 훌쩍 넘어섰다. 그 짧은 시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미국으로 날아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독일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각국 정상들과 회담을 했다. 물론 중국 시진핑 주석도 일본 아베 총리도 만났다. 그리고 신베를린 선언이 발표됐다. 선언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여건이 갖춰지고 한반도의 긴장과 대치국면을 전환시킬 계기가 된다면 언제 어디서든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고 했다. 잇따른 북한의 도발을 의식한 ‘조건’이 달리긴 했지만, 문 대통령이 직접 정상회담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문 대통령은 북핵 해결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대화의지도 밝혔다. “핵 문제와 평화협정을 포함해 남북한의 모든 관심사를 대화 테이블에 올려놓고 논의하자”는 게 그것이다. 평화체제 달성을 위한 네 가지 제안도 눈에 띈다. 추석 성묘 등 이산가족 상봉,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 7월 27일 휴전협정 64주년에 맞춰 군사분계선에서의 적대행위 중단, 남북 간 대화 재개 등 비교적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문 대통령은 또한 북한 붕괴를 바라지 않고, 흡수통일도 추진하지 않으며, 인위적 통일도 추구하지 않는다는 ‘3대 불가 원칙’도 밝혔다. 인터뷰는 3회에 걸쳐 게재된다.

 

▲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신베를린 선언은 2000년 남북 화해·협력의 기틀을 마련한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을 연상케 한다. 거기다 북한이 핵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잇따라 하고 있고,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미·중 간의 극한 대립,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문제 등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극도로 고조된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더욱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지난 17일 정부는 베를린 구상의 후속 조치로 남북 군사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회담 개최를 북측에 공식 제의했다.

“각국의 모든 행위는 외교에서 외교로 끝난다. 외교는 안보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국제 문제 전문가인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의 얘기다. 정 대표는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갈 길은 아직 멀다고 얘기한다.

“미국 방문과 베를린 G20 정상회의에서 비틀어진 외교를 복원시켰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문제는 외교력이다. 사드 문제와 자유무역협정(FTA), 중국의 사드 보복, 일본군 위안부 재합의, 북핵과 미사일 발사 실험 등 외교적 난제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 한국과 일본은 과거사 문제로 견원지간이다. 북한도 핵을 담보로 경제개발(병진노선)에 ‘올인’하고 있다.”

정 대표는 현재와 같은 국제정세에서 남북한, 특히 남한주도의 한반도 문제해결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는 “하지만 국면전환의 힘을 활용한 구조적 접근은 가능할 수 있다”며 “단, 일관적이고 장기적 마스터플랜이 중요하다”고 얘기했다.

정욱식 대표를 만나 한반도를 둘러싼 난제들과 대북관계, 국제정세, 우리 정부가 나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해 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다음은 심층인터뷰 전문이다.

 

- 현재는 한국이 남북 대화를 주도해가고 있는 분위기다. 미국과 모종의 얘기가 있었다고 보는가.

▲ 그런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미국이 대북제재를 이완시키거나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대북정책기조를 벗어나지 않는 틀 안에서 인도적인 스포츠 교류 등은 오케이 한 것 같다. 민간교류도 ‘문제없다’(I Don’t Care)는 뜻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도 한·미 정상회담 이전에 보여줬듯 안보의식이 명확하다. 개성공단 재가동도 북핵문제에 있어서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반면에 북한은 남북한 민간교류에 관심이 없다는 입장이다.

 

-사드 배치와 관련한 중국 시진핑 주석의 태도 어떻게 생각하나.

▲ 문재인 정부 초기, 중국도 어느 정도 기대를 많이 한 것 같다. 사드배치 중단 내지는 재검토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겠나 하는 게 시 주석의 바램이었다. 그런데 한·미 정상회담 절차를 거치면서 사드를 철회하는 것이 아닌 배치를 기정사실화 하는 방향으로 급선회했다. 지난번 베를린 G20정상회의에서 시 주석의 불만이 여실히 드러났다.

 

- 북한을 ‘혈맹’이라고 했다.

▲ 한·미 양국이 사드배치를 철회하지 않을시, 중국이 취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북한과의 관계를 회복하거나 최소한 현상유지 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 것이라는 분석이 많이 있었다. 시진핑이 북한을 중국의 혈맹이라고 표현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 전에는 정치적인 그런 말을 잘 쓰지 않았다. 더군다나 회담 후, 북한이 ICBM을 발사한 상황에서 혈맹이라는 말을 쓴 것은 사드배치를 철회하지 않고 있는 한국에 대해 강력한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 6자 회담 복원 가능성은.

▲ 당분간 매우 어려울 것 같다. 6자 회담은 북·미 대화 재개 등 관계가 풀려야 가능한 일이다. 지금은 미·중 관계나 북·중 관계가 아주 안 좋은 상태다. 북한이 중국을 엿먹이는 방법 중 하나는 6자 회담 원탁이 아니라 미국과 다이렉트로 회담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각자 서로 다른 상황 때문에 성사되기 어렵다. 트럼프는 아주 까다로운 대화의 조건을 내세운 상태다. 문재인 정부도 강도는 덜하지만 대화를 위해서 북한의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중단을 표방한 상황이다. 새 정부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 있다면, ‘조건 없는 대화’ 뿐이다. 이렇듯 핵 문제와 관련한 전제적 조건들이 많기 때문에 회담재개는 당분간 힘들 전망이다. 우리가 6자 회담을 주도하려면 충분한 실력과 힘을 키우는 일이 급선무다. 탄탄한 내공을 키워야 한다.

 

- 문정인 특보의 ‘북한 핵, 미사일 포기하면 한·미 군사훈련 축소’ 발언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 그 정도의 의견도 제대로 공론화되지 못하고 논의가 안 된다면 아예 북핵 문제를 포기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볼 때, 문 특보의 발언수위는 편향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한 편이다. 북한이 핵을 동결하거나 실험과 핵 물질 생산을 중단할 경우에 한·미 군사훈련 ‘중단’도 아니고, 단지 ‘축소’라고 말한 것뿐이다. 이런 것을 두고 보수진영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법석을 떤 것은 어불성설이다. 일부 야당과 보수언론들은 문재인 정부가 조금이라도 잘못한 꼬투리만 잡히면 비방하는 못된 습관들이 있다. 이는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다. 이 문제는 대통령과 청와대가 어떤 입장인가가 중요하다. 한·미 간에도 얼마든지 검토가 가능한 사안이다. 실례로 40년 동안 한반도 문제를 다룬 미국의 전 국가정보국(DNI) 국장 제임스 클래퍼(James Clapper)는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를 풀기 위한 방법으로 한국을 포함한 미국과 북한의 평화협정체결을 주장했다. 지금의 군사훈련 축소와 비교한다면 경악할 만한 주장이다. 한반도 문제를 수십 년 동안 깊이 다뤄온 그는 북한에 핵 동결을 아무리 요구해봤자 웬만한 수준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이미 간파했다. 오히려 평화협정체결 정도는 한·미 간에 염두 해두어야 할 것이라고까지 말한 인물이다. 물론 이것이 가능할지 안할지 여부는 판단이 어렵지만 클래퍼의 말과 비교했을 때 문 특보의 발언은 아주 약한 것이다. 미국 최고의 정보통인 클래퍼가 그런 말을 할 정도다. 김정은 체제를 움직이려면 뭔가 과감하고 혁신적인 대북정책이 나오지 않으면 길이 없다. 우리 내부에서마저 이런 정도의 발언이 제대로 수용되지 못하고 공론화 되지 못한다면 한반도의 미래는 불투명할 뿐이다.

<2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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