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11회 / 이석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북쪽으로 70km 떨어진 웁살라(Uppsala). 웁살라 대성당과 웁살라 대학교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이 도시는 스톡홀름과 요테보리(Göteborg), 그리고 말뫼(Malmö)에 이어 스웨덴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지만 전체 인구가 고작 18만 명 남짓. 하지만 1523년까지는 스웨덴의 수도였고, 노벨상 수상자만 12명을 발굴한 웁살라 대학교로 대표되는 유럽에서 가장 지적인 도시다. 전체 인구의 80%가 웁살라 대학교 학생, 교직원과 그 관련자로 된 대학 도시고, 아기자기하고 지성적인 아름다움이 빛나는 곳이다.

웁살라 대학교에 재학 중인 한국인 유학생 최모씨는 기숙사 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던 피리스(Piris) 강변의 아름다운 카페에 거의 발길을 끊다시피 했다. 주말이면 세계 각국의 친구들과 즐기던 파티도 지난 5월부터는 사실상 중단했다. 식사는 거의 학교 구내식당을 이용하고, 주류 판매점인 시스템 블라겟(System Bolaget)에도 거의 가지 않는다. 한 마디로 얘기해서 허리띠를 졸라 맨 것이다. 이유는 지난 2월 말 이후 스웨덴의 화폐 가치가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생활비를 서울의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돈으로 해결하기에 최근 스웨덴 화폐의 상승은 엄청난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이다.

 

▲ 스웨덴 중앙은행 릭스방크 : 우리의 한국은행격인 스웨덴 중앙은행 릭스방크. 스웨덴 화폐를 발행하는 곳이다. 릭스방크는 오랫동안 크로나를 지킬 것인지, 유로로 전환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했지만, 유로를 지켜서 스웨덴의 복지 정책을 지키는 길을 선택했다.

 

스웨덴 기업의 한국 지사에 근무하다가 2년 전 스톡홀름 본사로 파견 근무를 나온 회사원 김모씨는 한국 귀국을 1년 앞두고 요즘 신바람이 났다. 지난 2월 말부터 오르기 시작한 스웨덴 화폐 가치가 약간의 등락을 거듭하기는 했지만 최근 오름세가 강해지면서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말 받았던 월급과 이번 달 월급은 똑같지만,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100만원 가까이 인상된 셈이다. 이런 기조만 유지가 된다면 내년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1000만원 이상의 환차익에 의한 수입이 추가되는 셈이다.

스웨덴은 유럽연합(EU) 국가다. 하지만 스웨덴은 EU의 화폐인 유로(Euro)를 사용하지 않는다. 스웨덴의 화폐는 크로나(Krona)라고 부른다. 국제표준화기구(ISO)의 ‘ISO 4217’ 화폐 단위로는 ‘SEK’로 표시되지만 스웨덴 국내에서는 ‘kr’로 표기된다. 왕관이라는 뜻이다. 브렉시트를 선언한 영국을 제외한 27개 EU 국가 중 유로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는 스웨덴을 비롯해 덴마크 체코 크로아티아 헝가리 폴란드 리투아니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모두 9개국이다.

스웨덴 국립은행인 릭스방크(Riksbank)가 발행하는 스웨덴의 ‘크로나’는 1873년부터 현재까지 통용되고 있다. 1, 2, 5, 10 크로나 동전과 20, 50, 100, 200, 500, 1000 크로나 지폐가 통용된다. 2017년 7월 25일 기준으로 원화 대비 크로나 환율은 136.6원이다. 유로-크로나 환율은 9.559이고, 달러-크로나 환율은 8.177이다. 최근 크로나의 화폐 가치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영국을 시작으로 프랑스나 벨기에 등 EU의 중심 국가들이 EU 탈퇴를 선언하거나, 내부적으로 EU 탈퇴에 대한 사회적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도 스웨덴은 강력한 EU 지지국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왜 유로를 사용하지 않고 오래된 자국 화폐를 고집하는 걸까? 이유가 한두 가지는 아니겠지만, 스웨덴 내에서는 가장 큰 이유로 스웨덴의 복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보고 있다.

지난 2003년 유로 도입에 관한 국민 투표가 실시됐을 때 스웨덴의 시민들은 유로 대신 자국 화폐인 크로나를 선택했다. 만약 스웨덴이 유로를 사용하게 되면 독자적인 재정 운용이 어려워지게 돼 스웨덴 고유의 복지 정책에 손상이 불가피하다고 본 것이다. 공통의 통화를 사용하면 비슷한 수준의 복지 예산을 운용할 수밖에 없다.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서 스웨덴의 복지 수준은 상당히 높은 편이기 때문에 EU 평균치로 조정될 경우 스웨덴의 복지 정책은 대대적인 하향 조정이 불가피한 것이다.

심지어 국민투표 이후 스웨덴은 고의적으로 ‘유로존 가입 조건’ 중 일부를 충족시키지 않고 있다. 복지 축소를 주장하는 극히 일부의 정치세력의 압박이나 스웨덴의 유로존 가입을 종용하는 주변 다른 나라들의 참견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즉, 스웨덴은 자국인의 복지를 최상의 가치로 삼겠다는 의지가 강력하다. 1930년대 사민당의 장기 집권이 시작됐을 때부터 시작해 1970년대 올로프 팔메 총리 집권시 완성된 복지 정책이 손상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스웨덴 크로나 : 스웨덴 크로나의 인물들이 재밌다. 과거에는 고액권의 경우 왕의 초상을 실었는데, 최근 화폐를 바꾸면서 초상화도 바뀌었다. 20 크로나는 ‘삐삐 롱스타킹’의 저자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50 크로나는 스웨덴 민중 가수로 불리는 에베르트 타우베, 100 크로나는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영화배우 그레타 가르보, 200크로나는 스웨덴 출신의 거장 영화감독 잉마르 베르히만, 500 크로나는 스웨덴의 소프라노 가수 비르기트 닐손, 그리고 최고액권인 1000 크로나는 제2대 유엔 사무총장이면서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다르 함마르셸드의 얼굴이 도안돼 있다.

 

스웨덴 입장에서 다행스러운 일 중 하나는 사민당을 비롯한 좌파 정당은 물론, 지난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집권했던 보수당을 비롯한 보수 정당들도 이런 기조에는 대부분 동의를 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총선에서부터 부상하기 시작해 최근 제법 의석수를 많이 늘린 극우 정당인 스웨덴 민주당 정도가 이런 부분에 대해 시비를 걸고 있지만, 그래도 다른 제 정당들이 유로 가입에 반대하는 이유가 ‘단일 대오’인 탓에 스웨덴은 ‘복지를 유지하기 위한 유로 기피’는 큰 흔들림이나 갈등이 없는 것이다.

최근 크로나의 화폐 가치 상승은, 한국에서 송금을 받아 생활하는 유학생이나 단순 여행자에게는 달갑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스웨덴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특히 스웨덴 사람들보다도 스웨덴에서 돈을 버는 외국 사람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수익성 높은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현재 크로나의 위상은 단순히 환차익이나 환차손에 대한 개념이 아니다. 종교보다 더 우위의 가치를 지니는 스웨덴의 복지를 지키고자 하는 그들의 확고한 의지이고, 신념의 표상이다. 복지의 가치를 그 복지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에게 온전히 부여하는 것은, 복지는 권력자 등 정치인이나 정당 간의 이념 경쟁의 도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의 진정한 삶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게 스웨덴의 크로나인 것이다.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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