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수의 ‘서울, 김수영을 읽다’ –10회

(엽서 하나)

사소한 것이 시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생활에 아주 사소한 것에도 울고,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외로워하고, 기뻐하고, 자괴감 들어 스스로를 탓한다면 그때의 사소한 것은 결코 사소하지 않을 것이다. 사소한 것은 어느 순간 거대한 일이 되어버리고, 거대한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에 시인은 갇히게 된다. 결국 사소함과 거대함은 동일한 것이다. 거대한 것은 사소하기 그지없을 뿐만 아니라 사소한 것은 가끔 무지막지하게 거대해진다.

이러한 어이없는 모순은 시인에게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 김수영의 시를 보라. 김수영이라는 일개 시인이 분개하는 것이 얼마큼의 크기였으며, 그것이 겨우 김수영만을 위한 일이었는가를. 우리는 과연 정정당당을 부르짖으면서도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나보다 보잘것없게 여겨지는 이들을 얼마나 증오해왔는가를.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 시인 김수영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지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엽서 둘)

그렇다면 이제는 작아져버린 나에게 건네는 메시지가 있다. 이것은 단순히 건네는 말 따위가 아니라, 하나의 해결책이다. 바람과 먼지, 풀보다도 작아져버린 나를 다시 살아 있는 눈밭 위로 끄집어내 줄 해결책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 있어야 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하는지를 김수영의 시로부터 배운다.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 ‘눈’, 김수영

 

답은 단순하다. 기침을 하는 것이다.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어내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들끓는 가래 앞에서 누군가를 사랑하려고 하다가도 하지 못했는가. 우리는 그렇기에 누군가를 증오하고, 그러면서도 가래를 뱉어내면 또 누군가의 미움을 살까봐, 우리는 그렇게 누군가를 증오하는 마음의 가래만을 삼키고 지내왔던 것이다.

 

그러나 뱉어내야 사랑할 수 있다. 김수영의 시는 거창한 목표를 위한 일보 전진 따위를 일컫는 것이 아니다. 내 곁을 사랑하기 위한 자세, 그 자세의 시작은 기침을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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