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류승연의 ‘아주머니’

▲ 일러스트=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겠지만 나는 ‘엄마와 딸’이라는 말을 들으면 ‘애증관계’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결혼해서 애를 낳아보니 엄마 마음을 알겠어”라는 말을 하는 이들이 그저 신기한 것이다. 나는 쌍둥이를 낳았어도 아직 엄마 마음을 모르겠던데.

지난 주말, 남편이 일 때문에 집을 비우게 되었다. 평일은 그럭저럭 버틸만한데 남편 없이 홀로 보내는 주말은 힘이 든다.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 때문이다. 딸은 하루 종일 집에 있어도 이것저것 할 일이 많다. 하지만 아들은 얌전히 앉아서 무언가를 하는 게 어렵기 때문에 무조건 집 밖에 나가 어디든 돌아다녀야 한다.

비 오는 데 혼자서 아이 둘을 데리고 나가 고생을 하느니 친정이나 다녀오자고 계획을 세웠다. 엄마한테 전화를 하니 오라고 한다. 그런데 바로 전날 남편의 일정이 갑자기 바뀌는 바람에 굳이 친정에 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 엄마한테 전화를 하니 목소리가 싸늘하다. 손주들 온다고 이것저것 장을 봐다 놨는데 이제 와 안 온다고 하면 어쩌냐는 것이다.

“애들 방학이니까 2주 내로 한 번 놀러갈게요”라며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오전 일찍 아이들을 목욕시키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엄마다. 전화를 받으니 “지금 밑에 있는데 1층 문 좀 열어봐”라고 말한다.

뭣이라? 1층? 엄마가 일을 낸 것이다. “네가 안 오면 내가 간다”는 생각으로 사전에 알리지도 않고 무작정 쳐들어온 것이다. 어쩐지 아침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더라니…. 잊고 있었다. 엄마의 실행력을. 무엇이든 마음을 먹으면 반드시 하고야 마는 엄마의 성격을 깜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1층이라는 엄마의 말에 열이 확 올랐다. 열라는 문은 안 열고 고래고래 소리부터 질렀다. “왜 온 거예요. 또 나랑 얼마나 싸우려고. 지금 집안 개판이란 말이야. 나 힘들어요. 엄마랑 싸울 힘도 없는데 왜 온 거에요!!!”

엄마는 싸우지 않을 테니 문을 열라며 다독인다. 이 모습만 보면 나는 천하의 나쁜 년이다. 멀리서 찾아온 늙은 엄마를 현관에 세워두고 왜 왔냐며 소리 지르는 딸이라니. 사회고발 방송에 나가도 될 만큼 막돼먹은 딸이다.

하지만 여기엔 나름의 사정이 있다. 엄마와 나. 모녀 사이의 평화를 위해 엄마가 우리 집을 방문하지 않기로 모종의 약속을 했던 것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엄마는 한 주도 안 거르고 주말마다 우리 집엘 왔다. 쌍둥이 독박육아를 하는 딸이 안쓰러워서 주말마다 반찬거리를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거의 3년을 그랬던 것 같다.

엄마는 집에 오면 옷부터 갈아입었다. ‘작업복’ 차림으로 환복하고 난 뒤 집안 곳곳을 청소하기 시작. 엄마는 평소에 내가 손을 대지 않는 곳, 이를테면 옷장 밑이나 냉장고 위, 소파 밑이나 장난감 바구니 속, 싱크대 하수구 등을 청소하며 잔소리 폭탄을 퍼부어댔다.

옷장 밑의 먼지를 닦은 걸레를 내 눈앞에 내보이며 “이것 봐라. 이런 데서 애들이 살면 병에 걸리겠니, 안 걸리겠니!”. 그때마다 나는 영혼 없이 대답. “네네!!”

특히 엄마가 화장실 청소를 할 때마다 내 스트레스는 하늘을 찔렀는데 엄마는 화장실을 더럽게 사용한다며 그렇게 남편 욕을 해댔다. 청소하지 말고 그냥 놔두라고 해도 “너희 때문에 하는 줄 알아? 우리 애기들 때문에 하는 거야”라며 일절 듣지를 않았다.

엄마가 왔다 가면 집은 깨끗해지는데 나와 엄마 모두의 스트레스는 늘어만 갔고, 그로 인해 우리 부부까지 싸움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엄마와 난 3년 간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줬던 일을 그만하기로 했다. 아무리 부모와 자식 사이라도 좋을 때만 얼굴을 보자고, 앞으로는 우리 집으로 엄마가 오는 게 아닌 우리가 엄마 집을 가서 만나기로 했다.

서로의 모든 것을 작은 부분까지 다 알고 참견하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나이 들어 출가한 딸은 독립된 개체로 내버려둘 필요가 있었다. 내 입장에서도 살림과 육아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 했다.

그렇게 1년 반을 지냈다. 만나는 장소는 언제나 친정이 되었다. 우리 집에 엄마의 발길이 끊기자 신기하게도 모녀 사이는 물론 부부 사이도 좋아졌다. 내 마음도 더 행복해졌고.

그러다 이번에 엄마가 아무런 연락도 없이 쳐들어온 것이다. 이른 오전이라 집안은 개판 오 분 전이었고 엄마가 보면 잔소리 폭탄을 퍼부어댈 것들이 사방에 가득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 옷들이 점령한 식탁, 천장에 물곰팡이가 낀 화장실, 개지 않은 빨래, 먼지 쌓인 냉장고 위와 옷장 밑 등등.

그러다보니 엄마한테 또 욕을 한 바가지 먹을 거라 생각해 감정부터 달아올랐던 것이다. 오늘은 싸울 일 없으니 문 열라며 다독이는 엄마의 말에 문을 열어주고는 쏜살같이 현관으로 뛰어 나갔다.

현관에는 엄마가 주문해서 보내준 배즙 한 상자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유통기한이 지났을 지도 모를 배즙. 다 먹지도 않고 버려둔 것을 보면 그 때부터 지옥문이 열릴 것이었다. 평소 허리가 아파 무거운 것을 못 드는데 그 때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괴력이 솟아올라 배즙 상자를 번쩍 들고는 맨발로 뛰어 4층 복도에 갖다 놓는다.

집에 들어와선 빌라 단톡방에 급하게 한 줄을 쓴다. “저 301호인데요. 지금 친정엄마가 와서 상자 좀 숨기게 4층 복도에 갖다 놨어요. 이따 치울게요. 죄송합니다.”

엄마가 올라온다. 나는 이미 포기를 했다. 오늘은 또 어떤 일로 잔소리 폭탄을 퍼부어댈까. 나는 어디까지 참다가 어느 지점에서 또 폭발을 할까. 오늘 하루는 망쳤구나 등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집으로 들어온 엄마는 내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조심스럽다. 소파 위에 널브러진 옷가지 등을 보고도 아무 말도 안한다. 싱크대 안의 설거지 거리를 보고도 그냥 지나친다. 아이들과 반갑게 인사를 한 뒤 ‘작업복’으로 환복하고 나서 묵묵히 안방으로 향한다.

걸레를 빼들고는 남편 책상부터 정리를 시작한다. 많은 서류와 잡동사니, 동전과 지폐 등이 마구잡이로 쌓인 책상이 엄마 손에 의해 제 모습을 찾아간다. 엄마가 안방을 치우기 시작하자 나는 부엌으로 간다. 하필 식기세척기가 고장 나 손 설거지를 해야 하는 상황. 아무 말 없이 설거지를 시작한다. 내친 김에 가스레인지도 청소하고, 전자레인지 내부도 꼼꼼히 닦는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를 특별한 말없이 청소에만 몰두하는 엄마와 딸. 물론 중간 중간 참다못한 엄마가 한두 번 나를 찾아오기는 했다. 먼지가 잔뜩 묻은 걸레를 들고 와서는 “이것 봐라. 엄마 없을 동안 옷장 밑 먼지는 한 번도 안 닦았니?”라면서 걸레를 들이밀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까 방방 뛰어댄 딸의 모습이 생각나서인지 전처럼 잔소리 폭탄 세례를 퍼붓지는 않는다. 좋은 말투로 나무라기 위해 한껏 감정을 누른 모습이다. 그 마음이 읽혀져서 나도 최대한 좋은 말투로 “몇 번은 옷장 밑도 청소를 했다”고 변명을 한다.

엄마는 그동안 내가 손을 못 대고 있던 집안의 블랙홀 지대를 깨끗한 화이트홀로 모두 바꾸어 놓았다. 내 화장대와 남편 책상이 정리가 되자 찾아도 안 보이던 손톱깎이가 4개나 발견됐다.

남편이 꼬불쳐둔 현금 뭉치도 발견됐다. 봉투 안에 고이 잠들어 있는 5만 원 권 지폐 뭉치. 비상금이었을까? 나는 일단 남편에게 말을 안 하고 안전한 곳에 고이 숨겨놓는다. 특별히 달라는 말을 안 하면 내가 꿀꺽할 생각이다.

식탁의자까지 들고 들어가 화장실 천장까지 청소를 한 엄마의 얼굴은 새빨개져 있다. 힘이 들고 기력이 달려서다. 그 모습을 보니 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 날 엄마는 평소에 내가 생활하던 공간이 아닌 숨어 있던 곳곳의 블랙홀 지대를 모두 깨끗하게 청소해 놓았다. 고맙게도 잔소리의 강도조차 예전의 100분의 1수준으로 줄인 채. 오후가 되어 힘들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도 든다. 그리고 30년 전의 일도 생각난다.

내가 살림을 잘 못하는 건 엄마를 쏙 닮았기 때문이다. 살림이 서툰 엄마는 자식 셋을 키우며 육아와 살림에 힘겨워했다. 엄마의 시어머니인 내 할머니는 가끔 우리 집에 와서 집안 곳곳을 대청소하곤 했다. 심지어 할머니는 냄비들까지 다 꺼내 빡빡 닦은 뒤 다시 넣어놓곤 했는데 할머니가 청소를 하고 갈 때마다 엄마는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역사는 반복된다 했던가. 엄마는 자신이 스트레스 받았던 일을 30년 뒤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반복된 역사를 경험하며 아마 엄마는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 당시 엄마를 힘들게 했던 할머니의 살림 간섭이 사실은 자식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가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아마 이제야 시어머니의 그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도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30년 뒤 딸의 집을 찾아가 옷장 밑을 걸레질하면서. 먼지 묻은 걸레를 딸 앞에 들이밀고 잔소리 폭탄을 퍼부어대면서 말이다. <언론인/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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