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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어 사랑하라!

<연재> 태국에서 살아보기, 사랑하기-마지막회 강진수 기자lrkdwlstn96@naver.coml승인2017.08.0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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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다는 것

다시 공항에 섰을 때는 한겨울의 매서운 칼바람이 불고 있었다. 한여름에 출발했던 여정이 드디어 마무리되고 이제야 한겨울의 공기를 맞닥뜨리며 그 끝을 보인 것이다. 다시 밟은 땅은 다시 새로운 땅. 그동안 밟아왔던 땅은 다시 헌 땅이 되고, 나는 새로운 땅 위에서 새로운 출발을 할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때가 왔다.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늘 그렇다. 헌 것이 새로워지고, 새로운 것들이 다시 헌 것으로 되돌아가며 우리는 그런 끊임없는 순환 속에서 쳇바퀴를 굴리듯 삶을 살아가게 된다.

문득 돌아오고 나면, 모든 것이 흩날려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모든 것에 미련을 두지 않으려는 노력을 돌아올 시간이 다가오는 만큼 해왔다. 눈이 내렸다 녹아 사라지는 것처럼 미련이라는 것도 그렇게 잠깐 오가는 것이면 좋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특히 만나온 사람들에 대한 미련, 마주하고 함께 그간 손잡아온 인연들, 함께 살아가고 연락 주고받고 애정을 과시하던 사람들, 그만큼 정이란 정은 모조리 들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미련이란 그렇게 소복이 쌓여 절대로 녹지 않을 눈발처럼 머물러 있다. 그대로 얼어붙어버린 눈발들처럼.

그러나 그렇게 꽁꽁 얼어붙은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녹아내리고 만다. 사람들과 나누었던 사랑은 흩날려 사라진다. 그 영원할 것 같이 서로를 껴안던 모습들은 모두 거짓이었을까. 아니, 사랑은 거짓이 아니다. 어느 순간에도 사랑은 거짓으로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이 모든 게 지극히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사랑은 언제나 무게감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내가 그간 낯선 곳에서 살아가며 배워온 사랑이란 그렇게 의무감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옭아매고 목 죄는 사랑이 아니라, 오히려 겨울철 흩날리는 눈발처럼 가볍고 그 모양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 나는 충분한 사랑을 해왔다.

그러니 과연 그간 살아가며 사랑을 해왔는가에 대한 의심과 그로 인한 죄책감들은 모두 내려놓아도 좋다. 진정한 사랑이라는 낯간지러운 말을 그만두어도 좋다. 단 한순간도 진심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면 그 순간들만으로도 내겐 충분한 것이다. 돌아와서 나는 그 죄책감들에 너무 괴로워 잠에도 들지 못했다. 그것은 과분하게 흐르는 사랑의 부작용이다. 돌아온다는 것은 이처럼 내게 커다란 족쇄였고, 아무것도 더 이상 사랑하지 못하게 만드는 정신병이었다. 하지만 드디어 그것들을 떨쳐내고야 만다. 돌아온 지 무려 다섯 달이나 지난 때에서야 드디어 그 깊은 사랑의 상처들을 꾹 눌러 지혈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사랑할 수 있을까? 젊은 날 치기어린 질문일 것만 같았던 이 거대한 숙제를 이제야 마무리 짓고 편안히 잠에 든다. 내가 사랑했던 하나하나의 얼굴들, 하나하나의 풍경들과 시간들을 잠들 때마다 들춰보면서 추억과 사랑에 빠져 매번 다시 눈을 감는다.

 

 

편지 한 통

람빵으로의 출장을 얼마 앞두고 있을 때,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치앙라이에 있는 국제학교에서 인턴을 하고 계시다는 분께서 보내주신 이메일이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의 연락인지라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면서, 또 이렇게 편지를 써주신 정성에 감사하기도 하며 얼른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고된 생활들을 타지에서 해나간 것 같았다. 여러 사람에게 상처받은 모습이 선연히 편지 속에서 드러났다. 그런 나날들이 연속되면서 낯선 곳에 오기로 마음먹은 제 자신이 과연 옳은 선택을 한 것인지 부터가 막연히 두려웠을 것이다. 그것은 그 생활의 배경이 타지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낯선 사람 탓이기도 하다.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을 마주한다는 것은 분명 두렵고 어려운 일이다. 또한 낯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문제들은 사람을 아주 지치고 피곤하게 만든다. 공간보다는 그 공간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늘 더 문제가 되고, 그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에 따라 공간에서의 생활이 즐거울 수도, 힘겨울 수도 있는 것이다.

나 역시 그렇기에 낯선 공간에 떨어져 생활하면서 그곳의 사람들을 사랑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로서 직면하게 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려는 아주 선량한 움직임 속에서도 서로의 오해를 쌓아가게 된다. 그것은 각자가 살아온 환경과 문화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누려져야 하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해왔던 관습들이 이 낯선 공간에서는 결코 무게감이 가볍지 않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것들을 나는 받아들이지 못하든가 일찍이 자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서로를 사랑하기보다 먼저 경계하고 낯설어하기 마련이다. 편지의 주인공과 나 뿐만 아니라, 어떤 낯선 곳에서 낯선 생활을 감당해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사랑의 중요한 시작점은 이해의 속도를 인정해주는 것이라고 나는 기억한다. 내가 낯선 공간의 생활을 견뎌낼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이해하는 속도를 나와 함께 생활하는 이들이 모두 인정하고 받아들여줬다는 것에 있다. 사랑하기 위해선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절실하듯이, 이해하는 속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저들이 이해하지 못할 때, 그것이 답답하더라도 그 느린 속도를 인정하고 그것마저 이해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지점이라고 깨달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생각의 속도마저 이해해주는 것이다. 그 궁극적인 이해가 결국엔 서로의 사랑으로 이끈다.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 다른 문화와 관습까지도 모두 사랑하며, 결국엔 함께 한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편지를 써주신 분께서 이렇게 보내오셨다. “사람들을 더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모르는 사람을 만나기도 전에 사랑하기로 다짐하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전적으로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무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누군가를 전부 이해해줄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 그렇기에 나는 태국에서 생활한 지난 여섯 달 동안 축복받았었다고 생각이 든다. 내가 먼저 용기를 갖고 그 모두를 사랑하기 전에, 나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 마음먹은, 너무나 고마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행복을 누렸다. 용기는 그들의 몫이지 나의 몫이 아니었다. 나의 사랑은 그들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었을 뿐이었다.

살아가면서,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되고 기쁜 일일까. 그것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함께 할 동반자로 만든다는 것은 얼마나 멋있는 일일까. 그 사랑의 이유는 오직 우리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살아있어 사랑하라. 어떻게든지 살아있다면, 우리는 사랑해야 할 이유가 생긴다. 살아있어 사랑하라. 그렇기에 살아있어 부디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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