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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그리고 핀란드와 스웨덴의 흑역사

<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12회 / 이석원 이석원 기자lmaster@weeklyseoul.netl승인2017.08.03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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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복지 제도를 가지고 있는 나라로 일컬어지는 스웨덴. 그런데 스웨덴을 따라다니며 “우리가 더 훌륭한데…” 하는 나라가 있다. 스웨덴과 발트해에 연결된 보트니아만을 사이에 두고 있는 옆 나라 핀란드다. 더구나 핀란드는 스웨덴도 감히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세계에서 교육 시스템이 가장 우수한 나라로 유명하다.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비행기로 불과 1시간 거리지만, 시간차가 1시간 나는 바람에 스톡홀름에서 출발한 시간에 헬싱키에 도착하게 되는 재밌는 곳이기도 하다. 즉, 스톡홀름에서 현지 시간으로 오후 1시에 비행기가 출발했다면, 헬싱키 공항에는 현지 시간으로 오후 1시에 도착한다. 그래서 스웨덴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고, 또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 중 하나가 핀란드다.

스웨덴에도 약 5만여 개의 호수가 있지만 핀란드에는 무려 20만 개가 넘는 호수가 있다. 핀란드(Finland)는 핀란드의 원주민인 ‘핀족의 나라’라는 뜻의 영어 이름이지만, 핀란드어 나라 이름인 수오미(Suomi)는 ‘호수의 나라’라는 뜻이다. 북쪽으로 가면 세계에서 오로라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지역이 지천에 깔려있고, 북부 도시 로바니에미(Rovaniemi)에 가면 살아있는 산타크로스를 볼 수도 있다.

▲ 헬싱키 대성당 - 핀란드의 랜드마크로도 불리는 헬싱키 대성당. 핀란드 루터교의 본산이기도 하다.

 

헬싱키에서도 외국의 여행자들이 아닌 헬싱키 시민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기로 유명한 에스플라나디(Esplanadi) 공원.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스웨덴어로 말을 걸면 위 아래로 훑어본 후 대꾸도 하지 않고 눈길을 돌리기 일쑤다.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에 등장해 유명해진 카페 알토가 있어서 특히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대형 서점 아카데미아(Academia).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친절한 핀란드 젊은이들은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냉랭하다. 심지어 유명한 관광지인 헬싱키 항구에 있는 노천 식당의 섹시하고 매력적인 핀란드 여성 주인에게 “당신은 멋진 바이킹 여전사 같다”고 아부를 떨었다가는 밥도 못 얻어먹는 일이 생긴다.

오래전 유럽 역사에서 배운 바로는 스웨덴과 핀란드는 거의 같은 나라나 마찬가지라는데 왜 그럴까? 사실 핀란드에게 있어서 스웨덴은 우리에게 일본과 같은 존재다. 아니 어쩌면 어떤 면에서는 일본보다 더한 앙숙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려 65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핀란드는 스웨덴의 속국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식민지인 핀란드에 대해 강온 전략을 번갈아 가며 사용하던 스웨덴은 제정 러시아가 핀란드를 뺏어가기 직전 100여 년 동안은 핀란드어의 사용을 금하는 등 냉혹한 지배자가 돼 핀란드를 괴롭혔다.

▲ 핀란드 대통령궁 - 헬싱키 항구 바로 앞에 있는 핀란드 대통령궁. 전임 핀란드 대툥령이었던 타르야 할로넨은 종종 헬싱키 항구나 원로원 광장 등에 나가 외국의 여행자들에게 관광 가이드 노릇을 하기로도 유명했다.

 

가장 최근의 기억이 가장 아프고 선명한 법. 그러니 현재 핀란드에게 스웨덴은 ‘불구대천지 원수’일 수밖에. 게다가 스웨덴은 핀란드를 독립시켜준 게 아니고 전쟁을 통해 제정 러시아에게 뺏긴 것이다. 결국 110년의 제정 러시아 지배까지 핀란드의 760년 피지배의 참혹한 역사는 고스란히 스웨덴의 몫이 된 셈이다.

사실 핀란드는 그 어떤 면에서도 스웨덴과는 다른 나라이고, 다른 민족이고, 다른 언어다. 요즘은 어떤지 몰라도 198, 90년대 만해도 학교 사회 과목에서 ‘스칸디나비아 3국’이라는 용어에 스웨덴과 노르웨이, 그리고 핀란드를 집어넣었다. 핀란드의 공용어는 핀란드어와 스웨덴어라고 현재 인터넷 지식 백과에도 나와 있고, 특히 핀란드 상류층에서는 스웨덴어 구사를 자랑으로 여긴다고도 소개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팩트 오류다.

흔히 스칸디나비아 3국이라고 하면 실제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위치한 나라인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를 일컫는다. 최근 여기에 핀란드와 아이슬란드를 포함시켜 노르딕 국가라고 부르기도 하고, 실제 노르딕 이사회라는 조직을 만들기도 했다. 주변 그린란드와 올란드 제도,그리고 페로 제도가 노르딕 이사회의 준회원국이고, 1991년 소련의 붕괴와 함께 독립한 발트해 연안 3국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까지 아울러 이른바 북유럽이라고 부른다.

실제 스웨덴과 노르웨이와 덴마크는 북부 게르만어를 사용한다. 발음이나 알파벳의 약간의 차이가 있어 편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자기네 나라 말만으로도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 세 나라는 같은 뿌리의 바이킹들이 세운 나라이고, 1397년부터 1523년까지 칼마르(Kalmar) 동맹을 맺어 거의 같은 나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핀란드는 없었다. 핀란드가 스웨덴의 속국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웨덴이 핀란드도 자기들과 동등한 스칸디나비아의 국가로, 또는 칼마르의 동맹국으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 스웨덴 대사관 - 650년 간 핀란드를 지배했던 스웨덴의 위력과 권위는 아직도 살아있다. 하지만 핀란드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마치 1980년대 주한 미국대사관이나 요즘 주한 일본대사관 같은 느낌이다.

 

핀란드는 게르만족인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와는 달리 아시아 계통인 핀족이다. 우랄 지역에서 이동한 사람들이다. 또 다른 북유럽 국가들처럼 유럽인도 어족에 속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우리나라나 일본과 같은 계열인 우랄-알타이 어족이 방계인 피노우그리아 어족이다. 어순이 우리와 비슷하다. 스웨덴과는 본질이 다른 사람들인 셈이다.

스웨덴과 노르웨이와 덴마크는 유로(Euro)를 사용하지 않는다. 노르웨이는 아예 EU 국가도 아니지만, 아무튼 이들은 다 자국 화폐를 쓴다. 명칭도 같다. 왕관을 뜻하는 ‘크로나(Krona)’다. 스웨덴 크로나, 덴마크 크로네, 노르웨이 크로네. 하지만 핀란드는 이 동네서 유일하게 유로를 사용한다. 아예 이들과 경제 체제를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핀란드의 경제학자들은 “스웨덴과 무엇이든 섞이는 것은 가장 나쁜 경제 정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핀란드가 1918년 최종적으로 남의 지배에서 벗어나면서 아예 공화제를 채택한 것도 어쩌면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가 유지하는 군주제에 대한 극렬한 거부감 때문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 에스플라나디 공원 - 헬싱키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

 

스웨덴의 한 기업에서 일하는 핀란드 청년 요하네스 아르네는 스웨덴에 대해 “지금에 와서 특별히 미워하거나 혐오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핀란드 사람 앞에서는 늘 거만한 스웨덴 사람들이 반갑지는 않다”고 말한다. 시벨리우스의 교향시 ‘투오넬라의 백조’를 듣고 있는 레스토랑 사장을 바라보던 핀란드인 종업원 라르스 아크베르는 “저 음악에 담긴 시벨리우스의 민족주의가 비록 직접 겨냥한 것은 제정 러시아였지만, 그 이면에는 스웨덴에 대한 저항 정신도 있다는 것을 바보 같은 사장은 모른다”며 조소를 던지기도 했다.

‘거의’ 같은 나라라고 생각했던 스웨덴과 핀란드. 하지만 한국과 일본 간의 뼛속까지 배어있는 민족적 갈등보다 더 깊은 골이 놓여 있는 두 나라.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복지 정책으로 경쟁하고, 가장 합리적인 시민 의식으로 견제하는 두 나라를 보는 색다른 시각은 제3자적 관점이지만 재밌는 관람기이기도 하다.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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