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골프장에서 잔디수선 일을 하는 동안 제법 그럴싸한 보물들을 얻었다. 그것도 해고되기 직전에 얻은 것들이니, 보물 중에 보물이라고 약간 과장을 해도 뭐 괜찮지 않을까 싶다. 이래서 시골 살림은 역동적이고, 변수가 많고, 그래서 흥미진진하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딱히 직업이라 할 만한 것도 없고, 기술다운 기술 하나 익혀놓지 못한 내가 굶어죽을 염려나 걱정 같은 것 없이 살아갈 만한 곳으로 시골만한 데가 세상천지 어디에 또 있겠는가 말이다. 어쨌든 나는 해고되었고, 수중에는 보물들이 남았다.

 

▲ 새벽 일이 끝날 즈음의 멍때림

 

내가 해고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정리하자면 아마도 잘 빠진 블랙코미디 한 토막쯤은 나올 것이다. 어느 하루 새벽에 출근을 하니 8번 홀 잔디를 신속하게 수선하라는 오더가 떨어졌다. 우리는 무릎을 꿇고 기다시피 해가면서 그야말로 열심히 신속하게 처리했다. 그런데 일이 다 끝날 무렵쯤 중장비가 들어오더니 8번 홀 잔디를 죄다 깔아뭉개고 있었다. 잔디를 통째로 갈아야 한다는 결정을 오래 전에 이미 했었는데 이제야 작업을 시작했다는 얘기가 들렸다. 어쨌든 우리는 화가 났다. 잔디 수리가 애들 소꿉놀이도 아닌데 이게 뭐냐. 우리는 우리에게 8번 홀 잔디를 신속하게 수리하라고 지시한 담당과장을 찾아가서 따져 물었다.

“그렇다고 당신들이 손해 본 게 뭐 있어요?”

과장은 웃겨 죽겠다는 투로 싱글싱글 웃어가며 되묻고 있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너희는 출근을 했고, 지시한 작업을 했고, 퇴근 시간이 됐으니 퇴근을 하면 된다는 얘기였다. 애써 수리한 잔디를 하루도 안 돼서 깔아뭉개건 어쩌건 너희가 상관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냉정하게 기계적으로 따진다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기계가 아니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잖아요?”“그럼 뭐가 문젭니까? 여기 돈 벌자고 나온 거 아니에요? 당신들은 오늘 출근했어요. 이제 퇴근하면 되는 거예요. 뭔 말이 그렇게 많아요 거, 짜증나게.”

도무지 인간의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쯤 되면 너도 인간이냐, 하는 말이 나올 법도 하지만, 우리는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못했다. 우리가 땀을 뻘뻘 흘려가며 애써 해놓은 작업을 너희가 짓밟았다. 우리는 지금 가슴이 쓰라려서 죽겠다. 이런 말을 해서 통할 사람 같으면 잔디를 깔아뭉개기 전에 자기가 먼저 우리를 찾아와서 착오가 있었다고, 미안하다고 말했을 터이었다.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의 지시를 받는 일은 이제 그만두기로 했다. 보수가 뭐 그리 짭짤한 일도 아니었다. 날마다 쳐대는 각종 성분의 농약 때문에 가끔 구역질이 나고, 현기증도 나서 자칫 잘못하면 못된 병이나 얻을 수 있는 일일 뿐이었다. 그런데 선수를 뺏겼다. 그만두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을 뿐 그 생각을 아직 발설하기도 전에 과장이 먼저 해고 통보를 해 왔다.

해고 통보 치고는 명분이 사뭇 교묘하고 거창했다. 이제 곧 골프장 매각 협상을 벌이게 된다나 어쩐다나. 일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보이면 매각 협상이 잘 안 될 수도 있다고, 그래서 사람을 줄이고자 하는 것일 뿐이니 그렇게 알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매각협상은 개뿔이나 무슨 매각협상, 그것은 그들이 골프장 운영에 필요한 인력을 관리하는 여러 가지 방식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 벙커라는 이름의 모래밭

 

시설담당 과장은 사장의 사촌 동생이었다. 그 목소리가 하늘에라도 닿을 듯이 높았다. 예약담당 상무 또한 사장의 처남이어서 그 걸음걸이가 사뭇 요란했다. 그밖에도 대학을 갓 졸업한 사장의 막내 동생은 방송담당, 처형의 남편 즉 동서는 안전담당, 등등 그렇게 사장의 일가친척들이 사무실 내부를 채우는 정식 직원으로 등록돼 있는 골프장이었다.

사무실 밖에서 일하는 사람은 백 명도 넘지만 정식 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캐디라 불리는 경기 보조원은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있어서 언제라도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데로 가세요, 할 수 있었고, 약을 치거나 잡풀을 뽑는 사람들은 근처 농가에서 부수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일용직으로 고용하니 언제라도 마음에 안 들면 내일부턴 안 나와도 돼요, 하면 되는 것이고, 새벽마다 잔디를 깎거나 수선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 역시 고용계약서 한 장 없이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하루살이들이니 언제라도 뚝, 하면 그대로 뚝 끝나는 신세들이었다.

예전에 하루살이 공사판 일을 할 때는 그만두는 날 소주 몇 잔을 돌리는 조촐한 송별회라도 있었지만, 골프장에서는 그런 절차도 없었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동안 타고 다니던 카트를 지정된 자리에 키를 꽂은 채로 세워놓고, 그동안 쓰던 연장들을 카트에 올려놓고, 그리고 돌아서서 감시카메라 아래를 지나고 경비실을 지나 정문을 통과하는 것, 그게 전부였다.

잘 거시라거나, 그동안 수고했다거나, 등등 흔해빠진 그 어떤 인사 한 마디 나누기는커녕 얼굴 한 번 구경함도 없이 그냥 나오는, 그래야만 하는 기분이 매우 씁쓸하고 심지어 서글프기까지 했지만, 그렇다고 뭐 억울하다거나 분통이 터질 일까지는 아니었다. 다만 약간의 헛웃음과, 씁쓸한 미소와, 알 수 없는 뭔가가 오고 있다는 희미한 느낌은 있었다.

덤벼드는 모기떼가 두려워서 한여름에도 긴 팔에 긴 바지를 입어야만 하는, 날아오는 골프공에 머리통 깨지지 말라고 지급한 안전모를 착실하니 머리에 뒤집어쓰고, 쪼그리고 앉아 일을 하다 보면 엉덩이가 무거워서 자꾸 내려앉으니 엉덩이 받침대까지 자비로 사서 붙이고, 그렇게 희극적인 풍경으로 잔디를 수선하다가 무릎이며 허리가 너무 아파 잠시 일어섰을 때의 꼬라지는, 정말이지 그 모양새는 돌이켜 생각하면 웃기고, 웃겨 죽겠다 싶으면서도 뭔가 엄숙하다는 느낌이어서 한동안 허둥거려야 했다.

 

▲ 마치 누군가 일부러 끼어놓은 것처럼

 

이게 뭐지? 이 엄숙한 느낌의 정체가 대체 뭐지?

비분강개가 같은 것은 분명 아니었다. 분해서 어금니를 꽉 깨물고 어디 이놈들 두고 보자 하는 따위 유치한 감정도 당연히 아니었다. 골프장 일에 무슨 목숨을 걸었다거나, 내 생애 마지막 직업이라는 등의 심각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면 그런 후유증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단언컨대 무슨 깊은 호기심이나 애정을 갖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우연히 그냥 어떻게 한 번 해볼래? 해서 그러지 뭐 하고 시작한 일일 뿐이었다.

한참이 지난 뒤에서야 알았다. 내 스스로 세운 삶의 원칙을 내 자신이 위반했다는 데서 오는 일종의 문책성 감정이 발동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아, 그러고 보니 그렇다. 골프장이란 데가 뭐냐. 왜 하필 그딴 데 가서 노예를 자임하고, 끝내는 개돼지 취급을 받으며 물러 나와야 했는가 말이다.

부자들과는 그림자도 섞이지 말자. 부자들이 운영하는 것이라면 포장마차조차 피해서 다니자.

수도권 인근에 살 때 그런 결심을 했었다. 돈자랑 하는 재미로 살아가는 녀석들과는 죄다 인연을 끊었다. 돈 버는 방법 외에는 할 말이 거의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친척들과도 거리를 한껏 벌여놓고 저게 사람인가, 하는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백화점 같은 것은 지나는 길에 흘낏 건물이나 겨우 쳐다보았을 뿐 들어가서 커피 한 잔 팔아준 적이 없었고, 거리에 흔해빠진 스타벅스니 파리바게트 같은 자본냄새가 물씬 풍기는 소굴 또한 내 옆의 여자가 잡아끄는 등의 아주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용해본 적이 없었다. 그랬던 내가 돈냄새 아니면 존재의 근거가 사라질 수도 있는 골프장에서 잔디수선이란 명목의 개돼지 노릇을 하고 있었으니, 오, 이게 무슨 언어도단이었더란 말이냐.

확실히 그것은 반성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반성이나 하고 있을 일은 아니었다. 반성이 지나치면 자괴감에 빠지고, 자괴감이 깊어지면 자기 자신을 부정하거나 파괴하는 극단적인 선택에 이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돈이란 무엇인가, 하는 주제를 예전과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런 주제는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두 손으로 머리통 붙잡고 낑낑대는 식의 관념적인 접근만으로는 답을 찾기 어렵다. 뭔가 구체적이고 확실한, 가능하다면 손으로 잡을 수도 있는 소품이 필요했다.

 

▲ 버려진 골프공을 찾는중

 

다행히도 내게는 그에 딱 맞는 소품들이 있었다. 나한테 무슨 예지력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다. 뭔가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수집해 들이는 버릇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있었을 뿐이다. 어른들이 피다가 버린 담배꽁초에 붙어 있는 필터를 하나씩 둘씩 모아들이기 시작한 게 아마 내 수집벽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쌀가마니로 얼추 한가득이나 모은 필터뭉치를 양잿물로 빨아서 베개를 만드는 어머니를 보면서 보람도 꽤나 깊게 느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거니와, 꼬맹이가 사춘기를 지나고 성인이 되는 속도만큼이나 나의 수집에 관한 넓이와 폭도 진화를 거듭했다. 광고용 성냥갑 하나를 얻기 위해 다방이며 식당이며 이발소며 온갖 곳을 볼 일도 없으면서 드나들었는가 하면, 새로 나온 우표 한 장을 사기 위해 아침 일찍 우체국 앞에 줄지어 서서 꾸벅꾸벅 졸기도 했고, 북한에서 날려 보낸 삐라를 수집한다고 북한산이며 의정부며 파주 등등의 후미진 곳을 누비고 다니다가 나 자신이 간첩 비슷한 종자로 오인돼서 조사를 받기도 했더랬다.

그 많은 수집품들을 그대로 고스란히 갖고 있다면 지금쯤 아마 컨테이너 박스 몇 개는 족히 채웠을 것이다. 하지만 물건을 장기간 쌓아두는 것은 내 관심사항이 아니었다. 수 년 동안 애써 모은 담배필터를 어머니가 죄다 빨아서 베개를 만들 때 아무런 항의도 없이 바라만 보았듯이, 어떤 물건을 하나씩 둘씩 모아들일 때 얻어지는 새로운 느낌을 나는 소중하게 여겼을 뿐 물건 그 자체를 중요하게 여겨본 적은 없었다.

 

▲ 공과 핀과 연장의 뒤섞임

 

같은 물건이라도 그것을 대하는 장소와 시간 등 환경에 따라 느낌은 다르기 마련이다. 다른 느낌, 그러니까 새로운 느낌을 나는 수집해 왔었던 셈이다. 그런데 새로운 느낌이란 영원히 항구적으로 생성될 수는 없다. 어떤 물건에 대한 새로운 느낌이 쌓이고 또 쌓이다 보면 그 물건의 본성이랄까 본질 같은 것이 드러나면서 기억을 확실하게 차지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나는 그 물건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러면 더 이상의 새로운 느낌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 물건에 대한 관심을 접고 다른 물건을 찾아 나선다.

골프장에서 발견한 그것들은 사실 내가 찾고자 했던 것들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내가 예전에 관심을 갖고 수집한 것들과는 그 가치와 성질이 아주 다른 일종의 쓰레기들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고, 관심을 갖는다 해도 쓰레기를 치운다는 관점에서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쓰레기가 내 눈에 띄는 순간, 그것은 순식간에 보물이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보물이라는 구체적인 생각을 갖고 그것을 주워 모은 것은 아니었다. 나로서는 처음 보는 것이라서 호기심에 그냥 하나씩 둘씩 호주머니에 주워 넣은 것일 뿐이었다.

공식 명칭이 핀이라고 했다. 티잉그라운드에서 첫 타를 칠 때, 골프채가 흙을 파먹지 않도록 핀을 꽂은 다음 그 위에 공을 올려놓고 치는데 그것이 만약 한 가지 색상에 재질도 같고 모양도 같다면 그렇게도 오랜 시간 내 관심을 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도 다양한 색깔에 다양한 모양, 다양한 재질이 없는 것이어서, 가격도 당연히 천차만별이었다.

 

▲ 핀들의 모음

어쨌든 그것은 쓰레기였다. 한 번 쓴 핀을 또 쓰겠다고 회수해 가는 건강한 골퍼도 가끔 보이긴 하지만, 열에 아홉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건들건들 그냥 가버린다. 그러면 경기 보조원이 그것을 주워서 자신의 바구니에 담았다가 쓰레기통에 버린다. 핀보다는 덩치가 훨씬 큰 공도 마찬가지여서, 어떤 사람은 자기가 공을 잘 때렸건 못 때렸건 공이 날아가는 방향으로 가서 그 공을 다시 치지만, 어떤 사람은 자기가 설정한 방향으로 공이 날아가지 않으면 그 공을 버리고 새것을 꺼내 쓴다. 그러면 경기 보조원이 그 공을 주워서 바구니에 담았다가 쓰레기통에 버린다.

내가 줍는 것은 경기 보조원들이 미처 주워가지 못한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치우고도 남아 있는 것들이 내 차지가 됐던 것인데, 그렇게 가끔 하나씩 주웠을 뿐인데도 어느새 대야로 한가득이었다. 해고된 며칠 뒤에 그동안 모아들인 쓰레기들을 물에 깨끗이 씻어서 말려놓고 보니 그렇게도 화려해 보일 수가 없다. 이 화려한 쓰레기들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들여다보기를 되풀이하다 보면 부자들이 왜 그렇게도 인간 같지 않은 태도를 자주 보이는지, 쓰레기보다 몇천 배는 더 쓰레기 같은 짓을 부자들은 왜 그렇게도 자주 하는지 알 것 같다는 느낌이 있는 것이어서, 나는 아마 꽤나 오랜 시간 이 화려한 쓰레기들과 친교를 맺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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