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짝짓기의 재발견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예전에 나는 이런 말에 상당 부분 반감을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가 만약에 일찍 죽었다면, 나는 아마 분하고 억울하고 서럽고 짜증이 나서 귀신 노릇조차 제대로 못하고 여기저기 아무 데로나 마구 떠돌아다니는 방랑자게 돼 있을 것 같다.

우주가 끝없이 팽창하듯이, 사람은 경험을 통해 세계를 넓혀간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결국 경험의 확장인 셈이다. 경험에 끝이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하나도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인생에는 얼마나 많은가. 관념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들이 경험을 거치는 동안 관념이란 허울을 벗어던지고 완전히 다른 모습을 띠고 나타나서 나를 놀라게 한다.

 

▲ 새끼를 낳고 수컷을 찾아온 경이

 

사춘기 시절에 나는 우연히 부산 해운대를 갔다가 팬티와 브래지어만 걸치고 활보하는 여인들을 보고는 그만 숨통이 막혀 죽어버리는 줄 알았다. 저게 어디서 날아온 외계인 아니 야만인들이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여성용 팬티와 브래지어 따위에 놀라지 않는다. 호기심으로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의 짝짓기가 내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시절이 있었다. 짝짓기의 원리랄까 본질 같은 것을 알았다기보다 알았다고 여겨지면서 그 또한 시들해졌다. 코끼리나 토끼나, 뱀이나 꿩이나, 사람이나 두꺼비나 뭐 다 거기서 거기네 뭐, 했던 것이다. 만약에 내가 우리 집 고양이들의 짝짓기 장면을 목도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그 상태 그대로, 그러니까 짝짓기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관념을 유지한 채로 ‘마지막 그 날’을 맞이했을 것이다.

서툴게 안다고 생각하는 거, 실제로는 절반도 모르면서 다 안다고 생각하는 시건방짐이야말로 어쩌면 늙음의 한 징표인지도 모른다. 생물학적인 늙음이 아니라 정신적인 늙음 말이다. 생물학적으로는 백 살이 넘은 꼬부랑 노인이라도 정신이 팔팔하게 살아서 무엇이든 새롭게 배우고자 한다면 그는 청년 이상의 청년이다. 스무 살쯤의 시퍼런 청년이라도 ‘저건 내가 이미 다 알고 있어’ 어쩌고 떠들어댄다면 그는 늙음의 과정도 거치지 않고 늙어버린 얼치기 애어른이다.

동물의 짝짓기에 대해서 모든 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 온 나는 무엇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일도양단해서 아무것도 몰랐다고,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나 자신을 폄훼하고 탄핵할 일은 아니라 해도, 최소한 수축과 이완, 또는 붙음과 떨어짐, 또는 넣음과 빠짐, 이런 단순한 운동이 반복되는 어느 시점인가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에너지가 발생한다는 것, 이 에너지는 궁극적으로 종족번식의 기폭제가 되며, 덤으로 약간의 희열이 바람처럼 지나간다는 것, 짝짓기의 본질이란 대체로 그와 같다고 여겨 왔던 것만은 분명하다. 한 마디로 말해서 짝짓기란 매우 진부한 일종의 관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관념이 내게 있었다는 얘기이다.

 

▲ 이러지 마요...

 

물론 우리 집 고양이 수컷 골드와 암컷 경이의 관계가 특수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그들의 짝짓기에서 그 어떤 새로운 발견도, 영감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어린 암컷 경이는 골드의 조카뻘이고, 성숙한 수컷 골드는 경이의 삼촌뻘이라고 하는, 삼촌은 조카를 매우 어여삐 여기고 조카 또한 삼촌을 매우 깊이 신뢰한다고 하는, 그래서 두 마리 고양이가 그렇게도 다정하게, 보기에도 좋은 모양을 연출하고 있다는 생각은 지금 생각하면 너무 일차원적이고 유치해서 부끄러울 지경이지만, 어쨌든 나는 그들을 암수 한 쌍 즉 언제든 때가 되면 짝짓기에 이를 수도 있다는 쪽으로는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게다가 골드는 생식 능력이 없는, 무늬만 수컷일 뿐이라는 관념이 내게 있었다. 경이의 어미가 외부에서 들어온 다른 수컷과 짝짓기를 하고 있는데도 그저 바라만 보는 수컷이란 필경 수컷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태어났거나, 나중에 그 기능을 상실한 거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녀석의 등을 쓰다듬어 주면서 “에이그 짠한 녀석”, 어쩌고 그렇게 할머니들처럼 혀 차는 소리도 내곤 했었더랬다.

그렇게도 ‘짠한 녀석’이 어느 하루 잉야, 잉야, 소리를 잇달아 질러대며 마당을 정신없이 잰걸음으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마당뿐만 아니라 모퉁이로도 가고, 뒤뜰로도 가고, 대나무 사이로도 들어가서 소리를 질러댔다. 한 마디로 말해서 집안 구석구석 온갖 곳을 다 쏘다니면서 마치 자신의 소리를 새겨 넣듯이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마당을 가로질러 밖으로 나가더니 집을 중심으로 한 바퀴 빙 돌았다. 이어서 또 한 바퀴, 또 한 바퀴, 도대체 몇 바퀴를 도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돌고, 돌고, 또 돌며 소리를 질러댔다.

이 무슨 전대미문의 해괴망측한 짓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골드 녀석을 붙잡아 앉혀놓고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그런 해괴한 짓이 하루로 끝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무려 사흘 동안이나 녀석은 그렇게 잉야, 잉야, 소리를 질러대며 집안 구석구석을 쏘다니고,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서 집을 중심으로 돌고, 또 돌기를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저게 느닷없이 동네 고양이들 대장 노릇을 하기로 한 거야, 뭐야?”

 

▲ 안 된다니까

 

외부에서 다른 고양이가 들어와 자기 밥그릇을 탐해도 방어는커녕 뒤로 슬그머니 물러서 버리던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갑자기 보무도 당당한 발걸음으로 동네방네 곳곳을 쏘다니며 온 세상천지가 다 들으라는 듯이 의기양양한 소리를 질러댄다. 그게 주변의 모든 수컷 고양이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접근금지 경고라는 것을 나중에 추론해 내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저 녀석이 갑자기 실성을 했나, 아니면 전에 없던 무슨 권력욕이 발동했나, 했을 뿐이었다.

그런 희한한 사건이 끝나고도 사흘인가 나흘이 지난 뒤에서야 우리는 어린 암컷 경이가 어느새 다 자라 발정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았다. 개는 발정기가 되면 자신이 새끼를 낳을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를 엉덩이에 마구 흘리고 다니지만, 고양이는 그런 게 거의 없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았다. 아무튼 아침이었다. 아침도 이른 아침이었다. 밖에서 골드 녀석이 이상한 소리를 내서 저게 또 왜 저러나 싶어 뛰쳐나갔다가 세상에나, 멀리서도 한눈에 사건의 핵심을 알아차리고는 말문이 막혀서 꼼짝도 못 하고 우두커니 선 채로 한참이나 눈만 깜빡거리고 있어야 했다.

골드 녀석이 잉, 하는 식의 이상한 소리를 질러대며 날렵하게 경이의 등으로 올라타고, 경이는 그 순간 바닥으로 납작 엎드리고, 그러면 골드 녀석은 일단 경이의 등에서 내려온다. 잠시 뒤에 경이는 가만히 일어서면서 앞발로 골드 녀석의 뺨을 가볍게 한 대 때리는 포즈를 취해 보이고, 그러면 골드 녀석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서고, 그러면 경이는 날렵하게 일어서서 어디론가 가고자 하지만, 뒤로 물러섰던 골드녀석은 다시 잉, 하는 소리를 내면서 날렵하게 경이의 등으로 올라탄다. 그 순간 경이는 다시 납작 엎드려 버리고, 골드는 경이의 목덜미를 입에 문 채로 뭔가 용을 써보려 하지만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어서 한참을 혼자 낑낑거리다가 이게 뭐야, 하는 투로 다시 내려온다.

그런 장면을 한 시간도 넘게 지켜보았다. 골드 녀석은 이제 자기도 지쳤다는 듯이, 더러워서 그만 잠이나 자겠다는 듯이 절구통 위로 올라가서 몸을 동그랗게 말아 감고 자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암컷 경이 녀석은, 귀찮고 지겨워서 어디 멀리로 가버릴 법도 하건만, 기가 막히게도 골드 녀석이 잠들어 있는 절구통 위로 올라가서 그 옆으로 나란히 앉더니 저도 잠들어 가는 것이었다.

 

▲ 일어서라고 설득하는 것일까

 

그리고 한 시간여쯤 지나서, 아까 하다 만 일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뭔가 이루어질까 하는 호기심에 잔뜩 긴장해서 지켜보았지만, 되는 일은 하나도 없고, 골드 녀석의 입에서 절로 터져 나오는 것으로 여겨지는 잉, 소리가 처음보다 애처롭다고나 할까, 처절하다고나 할까, 뭔가 안타까움 같은 것이 뚝뚝 묻어난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경이는 요지부동이었다. 서서 걷다가도 골드가 자기 등으로 올라탄다 싶으면 날렵하게 네 다리를 쭉 뻗고 엎드려 버린다. 그리고는 고개를 쭉 빼서 자기 등 위에 올라와 있는 골드를 쳐다본다. 그 표정이 흡사 ‘이러지 마, 이러지 마’, 하는 것만 같다.

그리하여 골드 녀석은, 도로 내려왔다. 몸이 가벼워진 경이는, 이번에도 어디론가 멀리 가버리는 포즈를 취하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네 다리를 쭉 뻗고, 바닥에 몸을 완전히 밀착한 상태 그대로 고개를 들어 자기를 보고 있는 수컷 골드를 보고 있었다. 골드 녀석은 애가 타고 실망스럽고 화가 나서 경이를 노려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부드럽게 설득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들의 몸짓 언어를 해독할 수 없어서 안타까울 따름이지만, 소설을 쓰는 방식으로 유추해 보기로 하자면 아마도 이런 이야기쯤 되지 않을까 싶다.

“너 왜 이러는 거냐. 정말로 왜 이러는 거야, 응?”

“삼촌이야말로 정말 왜 이러시는 거예요, 왜, 왜, 네?”

“삼촌 같은 소리 하고 있다. 나는 네 어미를 좋아했을 뿐이다. 형제도 남매도 아무것도 아니니 삼촌이란 애당초 말이 안 되는 소리란 말이다.”

“그런데 왜 저를 그렇게도 조카처럼 귀여워하셨어요?”

“내가 네 어미를 좋아했는데, 너를 어찌 안 좋아할 수 있겠냐.”

“엄마를 좋아했으면, 그런데 왜 다른 수컷에게 양보했던 거예요?”

“아까 말하지 않았느냐. 좋아했다고. 그러니까 좋아해서, 좋아하는 사이로 언제까지나 지내고 싶어서, 그래서 다른 수컷을 용인했던 것일 뿐이거든. 그런데 네 어미가 다른 수컷의 새끼를 낳고 보니, 후회가 되더라.”

 

▲ 임신이 돼버렸다.

 

자, 이렇게 해서 암컷 경이는 설득되었을까? 아니었다. 적어도 내 눈 앞에서는 경이가 단 한 번도 꼬리를 들어주지 않았다. 동물들의 짝짓기란 암컷이 꼬리를 들어줘야 뭐가 되든 되는데 경이는 꼬리를 들어주기는커녕 바닥에 납작 엎드려버린다. 그런 하릴없는 되돌이표 같은 짝짓기 놀음이 하루도 아니고 무려 일주일여 가까이나 되풀이되었다.

그리고 갑자기 중단되었던가? 모르겠다. 일주일 가까이나 성과 없는 짝짓기 놀이가 되풀이되는 동안 나는 아마 잊는다는 생각도 없이 잊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하루 문득 그 일이 생각나서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그 또한 잊고 말았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나는 그들의 짝짓기가 실패했다고 단정한 것이다. 실패한 이유가 궁금하긴 했지만 아직은 내가 본격적으로 들여다볼 만한 주제가 아닌 것 같아서 뒤로 미뤘다.

그런데 웬걸, 그 뒤로 한 달이나 지났을까. 경이의 배가 노골적으로 부풀어 오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얘가 왜 이렇게 살이 팍팍 오를까, 했는데 임신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어도 너무 없었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현실을 받아들이자는 생각으로 착실하게 새끼 낳을 준비도 푹신하게 해주었건만, 실망스럽게도 경이 녀석은 어느 하루 밤도 깊은 시간에 방으로 들어와서 새끼를 낳았다.

새끼들의 아비가 궁금했다. 털 색깔로만 보자면 다섯 마리 새끼들 중에 두 마리는 골드 녀석이 아비인 것 같았지만, 다섯 마리 중에 세 마리는 골드가 아닌 다른 녀석이 아비인 것 같아서 헷갈렸다. 골드 녀석의 짝짓기는 성공한 것인가? 실패한 것인가? 아니면 반반? 그럴 수도 있을까?

 

▲ 경이가 새끼를 낳고 있는 동안에 골드는 잠을 잤다.

 

그나저나 새끼를 낳은 경이 녀석의 행동거지 좀 보라지. 새끼를 낳고 하루, 그리고 또 하루, 사흘 정도는 그저 누워 있기만 했다. 물론 그냥 누워 있는 것만은 아니고, 새끼들 젖을 물리랴 어쩌랴 나름 바쁘게 움직였다. 어쨌든 기력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나의 그녀는 이런저런 무슨 보약(?) 같은 것을 사 먹이는 눈치였다. 그런데 사흘째 되던 날, 경이는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경이를 골드 녀석이 절구통 위에 앉아서 지켜보고 있었다. 경이가 새끼를 낳고 일종의 산후 조리를 하는 동안 골드 녀석은 절구통 위에서 거의 내려올 줄을 몰랐더랬다. 식음을 전폐한 것까지는 아니라 해도,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어쩌면 경이가 새끼를 낳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걱정까지 골드가 했었는지 여부는 내가 알 수 없지만, 거의 그와 유사한 걱정을 골드가 하고 있었다는 정도는 추론해볼 수 있었다.

아무튼 경이는 새끼 낳기를 무사히 마쳤고, 그리고 밖으로 나왔다. 마당으로 나와서 천천히 걷는 경이를 골드는 말없이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난 뒤에, 경이는 새끼들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고 골드가 앉아 있는 절구통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골드 옆으로 나란히 앉아서, 아무 다른 생각도 없다는 투의 매우 편안한 표정으로 눈만 깜빡, 깜빡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숙연해서, 나는 감히 발자국 소리도 크게 낼 수가 없었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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