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지난 8월 8일자로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국에서 보낸 보도자료가 언론사의 종교담당 기자나 관계자들에게 이메일로 보내졌습니다. 그 다음날인 8월9일자 도하 신문에는 보도 자료의 내용들이 큰 활자로 보도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보도 자료의 제목은 “한국천주교 230년 역사, 사상 최초 바티칸에 전시된다”라고 되어 있으며, 전시 기간은 9월9일부터 11월17일 바티칸 박물관에서 전시가 진행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 다산 정약용

한국 천주교 유물 특별기획 전시를 개최한다면서 자세한 설명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전시는 바티칸 박물관의 52개 전시실 중 하나인 ‘부리치오 디 카를로마뇨’ 홀에서 열린다”라고 말하고, 바티칸 박물관은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꼽히는데 매년 전 세계에서 600만 명 이상이 다녀가는 바티칸 박물관은 특별전시회를 1년에 많아야 2〜3차례밖에 허용하지 않을 만큼 장벽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설명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명성 높은 박물관에서 한국 천주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으로서도 처음인 특별전시회에 한국천주교 유물 203점이 전시되는 일은 한국천주교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매우 자랑스럽고 명예롭기 그지없는 일임에 분명합니다. 전시회의 개최를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전시 내용물에 대한 논란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약용의 무덤에서 발견된 십자가(조선 후기, 오륜대한국순교자박물관 소장)”가 전시될 유물의 하나라면서 그 십자가의 사진까지 첨부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보도 자료에 의하여 보도된 언론에서는 “정약용의 묘소에서 발견된 십자가”를 기사의 제목으로 잡아 크게 보도한 기사를 접한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자들이 확인한 바에 의하면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국에서는 부산의 오륜대한국순교자박물관에 언젠가 후손이라는 사람이 와서 기증해주어서 박물관에 보존돼 있던 것을 이번에 전시하게 되었다면서, “정확한 연대나 기증자까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라고 답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즉각 다산의 7대 종손인 정호영(교육방송 근무)씨에게 전화를 걸어 집안에서 다산의 묘소를 통해 십자가를 발견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깜짝 놀라며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면서 황당무계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정호영씨는 자신이 알고 있는 한 다산의 묘소는 처음 장례 치른 뒤로 지금까지 이장이나 파묘가 없어 내용물을 확인한 바가 전혀 없다면서, 어떻게 십자가가 나올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천주교 쪽에 이야기하여 전시할 품목에서 빼줄 것을 요구하겠다고까지 말했습니다.

만약 다산의 묘소에서 십자가가 나왔다면 다산은 분명히 천주교 신자였음을 증명하게 되고, 학계에서 결론이 났던 대로 한 때 신자였으나 의례문제와 국금(國禁)으로 진즉 천주교를 떠났다는 학설이 뒤집히는 대사건으로 번지게 됩니다. 천주교 쪽에 부탁드립니다. 십자가의 정체를 정확히 밝혀야 합니다. 언제 어떻게 묘소에서 누가 발견하여 왜 부산의 순교자박물관에 보관하게 됐는지를 밝혀야 합니다. 설혹 신자였더라도 다산은 순교자는 아닌데, 왜 순교자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을까요. 이런 의문점이 명확히 밝혀지기 전에는 전시품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이 다산을 연구하는 사람의 한사람으로서의 바람입니다. 다산이 신자로서 살았느냐, 신자에서 떠났느냐는 다산학 연구에 매우 중요한 문제의 하나이기 때문에 역사적 진실을 밝힌다는 뜻에서라도 세심한 판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천주교 교회사에 밝은 조광(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교수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전시품에서 빼줄 것을 요구했다고 하니 천주교 당국은 깊이 고려해주기 바랍니다.



[편집자 공지] 8월 17일, 서울대교구로부터 전시품목 중 '십자가'를 제외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산연구소와 정약용 종손의 이의 제기가 수용된 결과입니다. 이미 기고 완료된 원고인데다 상황 이해를 돕는 의미도 있어 기고문을 그대로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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