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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도 일정도 없이 무작정 떠났다, 남미!

<남미여행기> 프롤로그 / 강진수 강진수 기자lrkdwlstn96@naver.coml승인2017.09.0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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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미를 다녀온 지 네 달이 넘었다. 신기하게도 남미 여행을 한 기억은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새록새록 남는 것 같다.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각 나라의 각 도시들, 마을들이 선명하게 기억으로 남는다. 아직도 가끔씩은 내가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고, 그곳을 걸어 다니고, 그곳을 헤매며 수많은 별들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그 별들처럼 설레는 이야기들을 풀어보려고 한다.

가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가고 싶었다. 아는 형과 둘이 남미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비행기 표를 끊어버리더니, 결국엔 귀국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둘이 다시 남미로 떠났다. 우리 둘은 남미 여행에 대한 전혀 계획을 짜지 않았다. 오직 200만원 조금 넘는 돈을 들고, 나머지 비상금은 카드에 챙겨 넣고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다. 출발 직전까지도 어디서 자지, 무엇을 하지, 어떻게 가지, 온갖 고민만 떠안고 우리는 무작정 남미를 향해 갔다. 오히려 우리 나이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작정 부딪히고 깨지더라도 우리는 버텨낼 자신이 있었다. 다른 누군가가 남미, 거기 위험하지 않니? 라고 묻거든 우리는, 어떻게든 되겠지, 라며 대충 대꾸하곤 했다. 결국 우린 필수라는 여행자 보험 하나 들지 않고 떠났다.

 

 

그렇게 덩그렇게 공항에 떨어졌다. 언제 와도 공허한 공항 한 구석에서 우리는 비행편을 확인하고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상상했다. 우리의 남미 여행은 어떤 방식으로 흘러갈까. 그리고 나와 함께 하게 된 이 형과의 사이는 어떻게 변화해 나갈까. 무엇보다도 학교를 다시 한 학기 쉬고 떠나는 여행인지라, 그만큼 더 많은 것을 남기고 오고 싶은 여행이었다. 그곳의 사람, 그곳의 마을, 그곳의 공기와 바람, 그곳의 하늘과 구름 모양은 어떨까. 남김없이 다 즐기고 오고 싶었다. 여행이라는 것은 마냥 그렇게 즐기기만 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즐거운 이름표의 뒷면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때 우리는 알지 못했다. 우리는 너무나도 젊은 여행자였고, 그 젊음이 전부인 우리였다.

가기 직전에 그 형과 소주 한 잔을 했다. 집 근처 조그만 술집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여행이 끝나면 우린 무엇을 할까. 형은 그다지 그런 대화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우리는 여행이 끝나는 대로 각자 돌아갈 곳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짧은 꿈을 꾼 것처럼. 형은 무슨 그런 생각을 벌써 하느냐고 질색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행의 시작과 함께 끝을 고려해봐야 한다. 짧은 여행 동안 무엇이 나를 변화시킬지. 그 두려움에 대비해야만 한다. 사실 그게 하나의 여행이고, 여행을 시작하려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되어야 할 부분인 것이다. 우리의 젊음은 어떻게 변할까. 아쉬움을 안고 시작하는 여행. 그 시작은 소주 한 잔으로 일컬어지는 것이다. 남미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가라앉히기 위해 형과 나는 무엇이라도 들이켜야만 했다.

 

2.

출발 하루 전날, 아는 형과 근처 찜질방에서 자면서 홀로 깨어있는 이는 나뿐이었다. 모두가 잠든 사이에 드는 생각이라곤 남미 여행에 관한 생각들이었다. 나는 왜 이 여행을 가기로 하였을까. 그건 나 자신도 모르는 일이었다. 사실은 정말 가게 될 줄조차 몰랐다. 핑계를 대자면 모두 마음이 시킨 탓이었다. 마음이 시켜서 날을 잡았고 마음이 시켜서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고 비행 직전까지 일이 산더미처럼 커져서 내게로 왔다. 그런데 이처럼 마음먹는 대로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에 첫 번째로 맞서는 경험이 될 것이다. 수없이 많은 난관들을 거치고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다.

그러나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이 여행이 끝나고 나서다. 이 여행 하나만을 계기로 하는 휴학계를 학교에 냈고, 정작 다녀와서 남는 두세 달간의, 나만의, 방학을 어떻게 쓸지 아무런 계획이 없는 것이다. 텅텅 비어있는 일정 속에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꼭 이 여행이 나의 전부인 것 마냥 나는 굴어야 하는 것일까. 여유를 가져야 해. 여유를 가져야만 했다. 다급해할 것 없이, 곧 시작될 여행을 잘 마무리 지어야 한다. 일단은 그게 우선이다.

자꾸 이런 맘을 먹게 되는 이유는, 태국을 다녀오며 없던 병이 생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몸과 마음이 모두 녹슬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태국으로 나가있는 동안 생각보다 많은 것들에 신경을 쓰고 있었는지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와 너무 많이 달랐다. 그래서 여행을 갈 수 있을지가 걱정되기도 하고, 너무 많은 것들에 대한 집착들로 시달리고 있었다. 잠들어 있는, 같이 여행을 떠날, 형의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잠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꼭 온 세상의 짐을 혼자서 전부 지고 있는 것처럼 굴까. 나의 내면은 무엇에 이렇게 지쳐있는 걸까.

 

 

많은 것에 이미 지쳐서 새로 시작하는 여행이었다. 사실 말하자면 나를 위한 일종의 테라피와 같은 것이었다. 지금 힘겨운 것을 이겨내고 싶었고 누군가의, 또는 어떤 것으로부터의 위로를 받고 싶었다. 잘 살아왔다고. 고생했다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런 위로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나 주변인은 결코 없었다. 오히려 여행에서 직면하는 수많은 사건사고들이 나를 위로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깊이 잠들어 있던 형을 깨우고 나갈 채비를 했다. 비행기 시간에 맞게 일어나서 움직여야 한다. 대충 끼니를 때우고 공항버스를 탔다. 못 잔 잠을 버스에서나 조금 자고. 잠깐 눈을 붙이고 있었는데 어느새 인천 공항으로 버스는 들어섰다. 짐을 챙기고 체크인을 했다. 잠시 동안 다시 떠나있을 이곳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 수많은 고통과 어려운 숙제들로만 가득했던 시간들아. 댈러스 공항을 경유해서 20시간 가까이의 비행을 견뎌내야 한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별 일이 아니다. 얼른 목적지의 땅을 밟고 나면 고통스럽게 목 죄어 오던 나의 생각들이 공허해질 것 같다.

의지할 곳이라곤 같이 가는 형 하나 뿐, 배낭을 수하물로 부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무기력했던 나의 손과 발에는 조금씩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오랜 비행 시간동안 그 힘을 잘 지켜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도착하면 더 많은 이야깃거리 속에서 활기를 띌 수 있도록. 나는 잠깐의 면죄부를 받았다. 세속의 면죄부. 나의 여행은 그렇게나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었다. 괴롭지만 조금은 덜 괴로운. 다른 세계의 구천을 구경하러, 신나는 여행을 시작하는 무기력한 글쟁이의 모습. 그것은 어느 때보다 피곤해보였다.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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