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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은 행동을 이길 만큼 강하지 못하다’

<청춘 &> ‘일본 오사카 여행기’-4회 / 구혜리 구혜리 기자lrz_tes@naver.coml승인2017.09.03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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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 한 바퀴

아침 일찍 일어나 타지의 향을 맡고 싶었다. 전날 너무 무리해서 돌아다녔고 다리가 퉁퉁부어 욕조에 몸을 담군 채 졸도하기도 했다. 기절하듯 잠에 들어서 그런지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창밖을 보니 날은 흐렸지만 해가 보였다. 이르다면 이른 6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다정히 손을 잡은 노부부의 동네 한바퀴

 

나는 일본의 편의점을 좋아한다. 없는 게 없고, 신박하다 싶은 먹거리가 많아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어느 가게 못지않게 사람들이 활기차다. 활기차고 건강하다. 보통이 되어버린 ‘요즘 사람들의 우울’이 담겨 있지도 않거니와 누가 강요하여 만들어진 서비스용 환대도 아닌 듯해 반가워진다. 또 일본 편의점에서 혼자 일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나이가 많아도 적어도 같은 라인에서 둘 이상이 붙어있다.

여행자 입장에서 너무 감사했던 점은 편의점마다 공공화장실이 있어 급한 용무(?)를 부담 없이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기도 했다. 우연히 화장실에 앉아 본 포스터에는 아르바이트를 모집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최저 시급 900엔. 인센티브 협의’ 그저 놀랄 뿐이었다. 살아있는 청년의 이유가 여기 있었나 생각해본다. 정권이 바뀌면서 최근 우리나라도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일본 편의점이 밝은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보장된 시급과 협업을 유도하는 건강한 노동문화 때문이 아니었을까.

 

 

바나나 한 개만 사려던 것이 처음 보는 주먹밥과 푸딩 같은 것들에 현혹되어 금세 6000원어치를 손에 들었다. 동전으로 500엔씩이나 (우리 돈 약 5000원) 쓸 수 있어 그런가, 우리나라랑 물가가 큰 차이는 안 나는데 손가락 사이로 돈이 슝슝 빠져나간다. 아니다 그것보다도 일단 돈을 쓸 수밖에 없이 너무 귀엽다. 주먹밥을 한 입 물고 계속 걸었다. 아침 햇살에 선크림을 바르지 못하고 나온 건 걱정이 됐지만 호텔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걷다보니 자주 보이는 것이 있다. 바로 신사(神社)다. 동네마다 그 지역을 수호해 주는 신을 모시고 있었다. 이른 아침 약수터 마을 가듯 나온 어르신도, 장바구니를 들고 나온 주부들도,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출근길에 들린 중년들도 같은 모습으로 저마다 기도드린다.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두 번 손뼉을 치면 평생을 함께한 그 ‘신’이 기도를 듣기 시작한다. 기도를 끝내고 인사를 한 번 더, 그러면 다시 발걸음을 옮겨 저마다의 아침을 향해 제 갈 길을 간다. 신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염원이리라. 그냥 돌아가기 아쉬워 복점을 뽑아보고 나무아래 걸어 보고, 기도를 드렸다. 이 여행이 따뜻하게 평안하게 마무리되게 해달라고.

 

▲ 무수히 걸린 다른 이들의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 무녀를 생전 처음 보았다.

 

┃선 빌리지 모모다니 호스텔

이번에 일본에 가면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캡슐 호텔! 캡슐 호텔의 명칭은 작은 용기를 뜻하는 그 캡슐(capsule)에서 따온 것이다. 마치 캡슐 속에 들어가듯이 딱 잠잘 곳만 정직하게 주어지는, 그래서 비용도 정직한 새로운 숙박 형태를 말한다. 일본의 경우 캡슐의 이미지를 재현한 리얼 캡슐호텔이 많이 생겼다. 대게 공용 화장실, 욕실을 샤용하며 귀중품을 라커에 보관, 호텔에서 제공하는 편한 가운만 입고 냉장고 문 열 듯 캡슐 속으로 들어간다. 조금 더 향상된 곳은 캡슐 속에 간단한 책을 읽을 수 있는 조명과, 미니 사이즈의 텔레비전이 설치되어 있기도 하다. 그래도 차마 냉장고 같은 리얼 캡슐호텔은 선뜻 정하지 못하고, 그보다 조금 대중적인 도미토리 형식의 호텔을 골랐다.

아침 내내 캐리어와 백팩 그리고 면세품이 담긴 쇼핑백을 들고 다음 숙소로 이동했다. 같은 곳에 오래 머무는 걸 싫어해, 하루 한 숙소를 옮겨 다닐 예정이라 ‘아침마다 이 짓을 해야하는 건가’ 사색이 되었다. 땀으로 샤워를 하고 몸도 천근만근이었지만 친절한 호스트 덕분에 상쾌해졌다. 오사카 일대는 통상 체크인이 3시에나 가능하기 때문에 아침에 짐을 맡기고 오후쯤 숙소로 돌아와야 체크인 할 수 있다. “고레오 아즈께떼 모라에마스까?(이것을 맡아주실 수 있나요?)”라고 묻자 친절한 미소로 화답했다. 전날 묵은 아파트먼트에서 미리 일본어 회화를 익혀두길 잘했다.

 

▲ 짐을 맡기고 자전거를 빌려 호스텔 밖으로 나오자 호스트가 헐레벌떡 뛰어나와 아이스크림을 주며 웃었다. 동전만한 크기의 하트 모양 초콜렛 아이스크림. 기똥찬 맛이다. 맛보다는 친절한 환영의 표시에 기분이 좋아졌다.

 

보통 호텔을 이용하는 편이지만 근래 게스트하우스와 호스텔의 매력에 푹 빠진 이유는 프라이버시를 허묾에 있었다. 사적인 호텔과 달리 여기서는 공용시설(다이닝룸, 샤워실, 화장실 등)이 많다. 그러다보니 호스트나 다른 게스트와의 교류가 쉬운 편이다. 여행에서 만나는 새로운 인연만큼 흥분되는 게 또 있을까. ‘수치심은 행동을 이길 만큼 강하지 못하다.’ 전혀 다른 맥락이지만 영화 ‘엘르’에 등장한 대사다. 우스꽝스러워질지언정 이 시간은 말을 걸까 말까 고민하기에도 아까운 시간이다.

내가 다녀온 호스텔은 ‘선 빌리지 모모다니 호스텔’이란 곳인데, 두 번 세 번 네 번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짐을 맡길 때, 체크인 할 때, 또 저녁에 돌아왔을 때, 또 다음날 아침 퇴실할 때 직원들이 모두 달랐다. 한 타임에 3명 정도씩 상주해 있는데 서로 언어 구사를 달리하는 것을 보니 그때그때 찾아오는 게스트에 국적에 맞게 프리~한 근무시간을 갖는 듯 했다. 그 중 매 시간 늘 상주한 젊은 남성 하나가 주인인 듯 보였다.

 

▲ 선 빌리지 모모다니 호스텔의 전경. 이 자전거를 빌려 타고 다녔습니다.

 

┃여행의 이유

숙소에 짐을 맡기고 자전거를 빌렸다. 기동성이 생기자 언제 그랬냔 듯 몸이 가뿐해졌다. 선빌리지 모모다니 호스텔은 오사카칸조 열차의 모모다니 역에 붙어있다. 모모다니역은 덴노지 구에 소속된 지역이다. 덴노지동물원, 시텐노지 절, 케이타쿠엔 정원, 츠텐카쿠 전망대 등이 볼거리로 유명하다. 이 중 소요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은 뒤로 하고 가볍게 산책이나 하자는 생각이었다. 아직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이 남아있었다. 특히 오사카는 ‘주유패스’를 사용하면 오사카 대부분의 관광지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이는 차후에 설명하겠다.

 

▲ 전시회 같은 이 곳은 게이타쿠엔 정원의 실제 모습. 여유를 두고 쉬기에 좋다.

 

날이 좋았고 솔바람이 불었다. 덴노지구는 관광지역이면서 동시에 주택가였기 때문에 텐시바 공원에는 외국인 관광객 뿐 아니라 동네 주민들,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나온 유치원 교사, 뭇 연인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또 이날은 드디어 애타게 찾아 헤매던 ‘도톤보리 아저씨’와 상봉한 날이기도 했다. 자전거로 덴노지 구를 돌아 도톤보리까지 사람 내음을 맡고 다녔다.

 

▲ 일본의 병아리들
▲ 텐시바 공원 내 애견 호텔에서 강아지들이 더위를 피해 풀장으로 뛰어가는 모습
▲ 도톤보리 아저씨는 밤이면 전광판이 되어 다른 사진으로 변모한다.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체력도 방전에 가까워지고 밤눈도 어두워졌다. 정신까지 몽롱해지자 나는 자꾸만 사고를 일으켰다. ‘일본은 무조건 왼쪽!’이라는 좌측통행 원칙을 잊고 맞은편 사람을 마주할 때마다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곤 했다. 크게 부딪칠 뻔 하거나 미처 사과하지 못할 때면 상대방은 ‘왜 저러는 거야’라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째려봤다. 20년 이상을 우측통행에 익숙해져 살아온 한국인은 좌측통행이 ‘자연스러운’ 일본 외 국가에서 비정상인이 된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불의의 순간에서 몸은 자꾸 익숙한 방향으로 고집을 부리는 것이다. 그리고 함께 있던 사람들로부터 나이가 높을수록 이런 역행성이 심화되는 것을 보았다. ‘아! 이것이 여행의 이유구나.’ 무턱대고 출발한 이제까지의 모든 여행들에 소중한 의미가 씌워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들이 떠나려고 몸부림치던 까닭은 새로운 사람들, 낯선 환경, 나와 철저하게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부딪쳐보기 위함이었다. 다투어보고 다쳐보고 다듬어보면서 내 사고와 마음은 새로운 지평으로 확장된다. 한 번 당황스러운 충돌을 겪고 나면 이후에 일어날 충돌에는 꽤 융통성 있게 반응할 수 있게 되니까… 이래서 여행도 젊을 때 다녀야 한다고들 하나보다.

자전거를 끌고 나온 것이 참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한낮에 쨍하던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후두둑 쏟아져 내렸다. ‘와 이건 정말 안 되겠다’ 싶을 정도로 많이 쏟아졌다. 도톤보리의 중심지에 가장 큰 쇼핑몰인 돈키호테는 비를 피하려는 사람들로 빼곡했다. 우산 하나는 7천~8천 원에 팔렸다. 젖으면 안 되는 물건이 있었기에 돈키호테에서 비를 그치길 기다렸다. 1시간이 지나도 그칠 생각이 않자 우여곡절 끝에 택시를 잡아탔다.

호스텔로 돌아와 ‘고멘나사이(죄송합니다)’를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이 둘 있었고 주인 호스트는 상황을 전해 듣고도 표정 변화가 없었다. 직원 한 분이 봉고차에 시동을 걸어 직접 다녀오겠다고 말하길래 따라나설 채비를 하니 괜찮다고 다독였다. 우두커니 어쩔 줄 몰라 하며 서 있으니 주인 호스트가 간식을 챙겨 쇼파에 앉혔다. 혹시나 사고가 생길까 또 면목이 없어 적막이 흘렀다. 그러자 호스트는 게스트 하우스에 구비되어 있던 보드게임을 챙겨 나왔다. 실제로 몇 게임하진 않았지만 긴장이 풀렸다. 우리는 한국인 직원을 사이에 끼고 이런저런 대화를 시작했다. 가벼운 통성명과 내일 날씨에 대한 얘기, 호스텔에 대한 얘기, 오사카에 대한 얘기… 급기야 그날 저녁은 ‘일본 드라마 주인공 같았다.’는 생각까지 호스트에게 전하고야 만 것이다. 호스트는 크게 한번 웃더니 원래도 젠틀하던 눈빛을 강아지마냥 바꾸고, 귀를 쫑긋 세운 채 내가 뱉는 모든 말을 궁금해 아니 기대했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지만, 즐거웠습니다.” (사진을 찍지 못해 무척 아쉽다) 자전거가 무사히 돌아오고 시계를 보니 자정이 훌쩍 넘었다. 아, 정말 하루만 머물렀던 것이 무척 아쉬운 곳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새로운 만남을 위하여 캡슐 속으로 쏘옥 들어갔다.

 

▲ 돈키호테 쇼핑몰의 랜드마크. 이전에는 회전관람차로 운영되었지만 현재는 멈춘 상태다. 외벽에는 ‘관람차가 다시 회전하길 원하나요?’ 라는 설문 투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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