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 박석무

금년은 색다른 해입니다. 1817년 유배살던 강진에서 다산은 국가개혁의 마스터플랜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경세유표』48권을 저술했습니다. 딱 200주년이 되는 해가 금년입니다. 200년이 지난 올해 초여름 나라의 온갖 적폐를 청산하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부가 새로 들어섰습니다. “털끝 하나 썩지 않고 병들지 않은 분야가 없으니,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말 것이다”라고 외치며, 법과 제도를 통째로 뜯어고쳐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보자는 뜻에서 『경세유표』를 저작했노라는 다산의 뜻과 현 정부는 유사점이 많습니다.

내년은 2018년, 1818년 다산초당에서 유배중인 다산은 『목민심서』48권을 저술했습니다. 나라의 지도자들이나 공직자들이 어떻게 해야만 나라다운 나라가 되고, 바르고 좋은 나라가 될 것인가를 참으로 치밀하고 주도면밀하게 방법을 제시한 책이 목민심서였습니다. 법과 제도를 통째로 개혁하고, 지도자들이나 공직자들의 마음가짐과 통치방법을 세세히 열거하여 최소한 그렇게 만이라도 행정에 적용해준다면 불쌍하고 가난한 백성들, 착취와 속박에 시달리면서 인간다운 삶도 누리지 못하는 백성들이 조금 기라도 펴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 아닌가라는 다산의 뜻이 담겨있는 대목입니다.

아무런 죄도 없이 18년이라는 유배살이로 찌들고 병들었던 다산, 자기를 내치고 버린 국가를 그렇게도 걱정하면서 ‘선치(善治)’가 잘 행해지기를 그렇게도 바라며 저술을 했으니 다산은 참으로 뛰어난 애국자였습니다. 인간 다산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렇게 가혹하게 자기를 버리고 탄압한 국가에 원망의 말 한마디 없이 나라가 잘되기만을 간절히 염원하고 희망했으니 그런 애국자가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요.

1021년 다산 서세 85년이던 해인데, 다산의 현손(玄孫:고손자) 정규영(丁奎英)에 의해 『사암선생연보(俟菴先生年譜)』가 편찬되었습니다. 다산의 탄생부터 운명하던 때까지의 일생을 편년체로 상세히 기록해 놓은 가장 중요한 자료의 하나입니다. 그 책의 발문(跋文)을 읽어보면 다산이 어떤 사람인가가 후손에 의해 상당히 바르게 밝혀져 있습니다. “전에 다산초당에 계시며 열심히 연구하고 책 쓰는 일에 전념하여 더운 여름에도 멈추지 않았고 겨울밤에도 닭 우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 일하였다”라는 부분은 얼마나 부지런한 삶이었는가를 보여줍니다. “공은 젊은 날 정조대왕을 가까이 모시면서 경전을 토론하고 학문을 강론하여 먼저 그 바탕을 세우고, 중년에는 상고의 성인들을 경전에서 사숙하여 아무리 심온한 것도 연찬하지 않은 것이 없고, 아무리 높은 곳도 우러르지 않은 것이 없었다(討經講學 先樹基坻 中與上古之聖人 私淑於經籍 無奧不鑽 無高不仰)”라고 말하여 얼마나 깊고 높은 학문 수준에 이르렀는가를 말해줍니다.

200권이 넘는 저술을 완성하고 해배되어 고향으로 돌아와 노년을 보내던 다산의 모습도 그 글은 보여줍니다. “이미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여 스스로 많이 안다고 하지 않았고, 이미 늙었다고 하여 조금도 해이해지지 않았으니, 아아! 지극한 행실과 성대한 덕성이 아니겠는가?”

그렇습니다. ‘지행(至行)과 성덕(盛德)’을 지닌 지도자들이 나와야 합니다. 조금 높은 자리에 발탁되었다고 자신이 많이 알고 똑똑하여 그런 지위에 올랐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다산처럼 애국심을 지니고, 다산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해서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력과 덕성을 발휘해야만 합니다. 모든 국민은 좋은 정치가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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