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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고까짓 거!

<연재> 류승연의 '아주머니' 류승연 기자lscaletqueen@naver.coml승인2017.09.0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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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다. 이렇게 사는 게 피곤할 수도 있는데 나는 매사에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삶’을 살자는 주의다. 물론 상황상 그럴 수 없을 때도 많지만 그래도 환경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선 그리 살려고 노력한다. 후회를 남기는 게 싫고 미련을 두는 게 싫어서다.

그러다 보니 대개의 경우 하고 싶은 일은 하고야 만다. 이런 저런 고민을 하기 보단 아예 빼도 박도 못하게 실행에 옮겨버린다. 왜냐고? 하고 싶으니까!

그러다 보니 지나간 과거에 대한 후회는 그나마 없는 편이다. 다시 돌아가 다시 살아보라 해도 그 이상은 못할 것 같다고나 할까.

 

▲ 일러스트=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어쨌든 이런 태도로 살아가는 또 하나의 이유. 그건 바로 ‘억압된 욕구’는 훗날 더 크게 어떤 식으로든 분출이 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감당 못할 욕구로 커져버리기 전에 적당한 선에서 싹을 자른다는 나름의 계산도 있다고나 할까?

어릴 때 목이 붓는다고 아이스크림을 자주 못 먹게 했던 엄마 덕분에 언제나 나는 아이스크림에 대한 갈증에 굶주려 살았다.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엄마가 3박4일 동안 전라도 광주로 내려가게 되었다. 엄마가 없는 동안 우리들은 할머니가 돌봐주기로 했다.

당시 나에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보다 이제 엄마가 없으니 아이스크림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하고 싶은 걸 다 하게 해주는 할머니를 졸라 가게에 갔다. 아이스크림을 한 봉지 가득 사 들고 집으로.

엄마가 내려간 첫 날 7개의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먹고 먹고 또 먹었다. 아이스크림에 대한 갈증을 모두 채워 넣으려는 듯이. 11살짜리 여자애가 7개의 아이스크림을 먹었으니 배탈이 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경우를 주변에서도 심심찮게 보곤 한다. 주변에 있는 어떤 아이는 언제나 유명 브랜드의 옷만 입는다. 아이들은 워낙 빨리 자라기 때문에 봄에 입었던 옷과 가을에 입을 옷이 또 달라지기도 한다. 몇 달 지나지 않아 비슷한 걸 또 사야 하는 경우도 발생하곤 하는데 그 아이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특정한 유명 브랜드만 고집했던 것이다.

“집에 돈이 많은가 보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한동안 가장이 수입이 없어 아내 혼자 벌어오는 돈으로 살면서 매달 빚이 쌓여가던 터였다. 그래도 아이들은 언제나 비싼 옷과 신발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장을 했고, 심지어 백수인 걸 뻔히 아는 남편은 차를 바꾼다며 외제차를 떡하니 구입하기도 했다. 그 모든 경제적 부담은 아내의 몫이었고 늘어가는 빚도 아내의 몫이었다.

그렇게 힘들어서 헉헉대지 말고 아이들 옷에 들어가는 돈이라도 줄이라고 하면 고개를 저었다. 남편이 그것만큼은 절대 허락을 하지 않는단다. 남편이 어릴 때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 평생 메이커 옷을 한 번 입는 게 소원이었는데 부모는 그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다는 게 이유였다.

그랬다. 그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게스’ 청바지를 딱 한 번이라도 사줬다면, ‘저버’ 재킷을 한 벌이라도 사줬다면 지금 그녀의 남편은 이렇게까지 브랜드에 집착하는 어른이 되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

억압된 욕구는 없어지지 않는다. 내면에서 더 크게 자라고 자라 감당할 수 없는 크기만큼 자란 어느 날 뻥하고 터진다. 안 좋은 방향성을 띠고 자신의 실체를 드러낸다.

그러기 때문에 미련이 남지 않도록, 후회가 들지 않도록, 하고 싶은 것은 그 때 그 때 풀어주며 살자는 게 마치 내 생활신조처럼 되어 버렸다.

나만 그러고 살면 안 될 터였다. 내가 그렇게 살 거면, 가족들도 그리 살 수 있도록 해줘야지.

남편은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많은 것을 통제받으며 자랐다. 그러다 보니 나와 결혼한 이후에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게 되어 처음엔 어색해 했다. 그 자유가 너무 크다보니 이상한 데서 자유를 만끽하기도 했다. 예쁜 언니들이 대기 중인 BAR에 아내의 허락을 받고 당당히 출입하곤 했던 것이다.

처음엔 그조차 모두 허용했던 나였지만 지금은 금지! 아무리 하고 싶은 걸 하며 살라고 해도 아닌 건 아닌 거지.

어쨌든 불혹을 넘긴 남편. 특별한 기회가 있어 전문 사진작가에게 프로필 사진을 찍게 됐는데 뭔가 변화를 주고 싶어 안달이다. 안경도 바꾸고 수염도 안 깎는다. 그러더니 은발로 염색을 하고 싶단다.

미용실에 이리저리 전화를 해 본다. 가수 지드래곤 같은 순백의 백발로 머리색깔이 나오려면 염색 전에 탈색만도 3번은 해야 한단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기간도 길어서 패스.

한 군데 미용실에서 탈색 없이 회색빛의 염색이 가능하다는 답변이 온다.

일반 회사원이라면 불가능한 도전이었을 테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염색 정도는 얼마든지 허용이 되는 업계에서 일하는 덕에 남편의 ‘은발 같은 회색빛 머리’에 대한 환상은 점점 커져만 간다.

나는 걱정이 반이다. 하게 되면 하는 건데 애들 아빠이기도 한 남편이 은발의 머리를 하고 동네를 돌아다니면 동네 아줌마들이 수군수군 댈 것이 눈에 보여서다.

하라고도 못하고 하지 말라고도 못하는데 하루 종일 은발의 연예인 머리만 찾아보고 있는 남편을 보자니 더는 안 되겠다. 미용실 가서 염색하고 오라고 명령을 내린다.

지금 못하게 하면 마흔 세 살에, 마흔 일곱 살에, 쉰다섯 살에 염색하겠다고 난리칠까봐서다. 은빛 머리에 대한 염색 욕구가 있으면 차라리 한 살이라도 젊은 지금 하는 게 낫다. 지금 그 욕구를 풀어줘야 미련이 남지 않고 나중에 이상한 데서 터지지 않을 터였다.

기분이 좋아진 남편은 룰루랄라 미용실로 향한다.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밖을 보란다. 햇빛에 비친 자신의 머리 색깔이 어떤지 봐주란다.

창밖을 보니 남편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은발 같은 회색은 간데없고, 대신 연갈색 머리의 남편이 미소 짓고 있다.

어떠냐고 묻는 남편에게 솔직히 말했다. “그냥 고딩(고등학생) 같아.” 은빛이나 회색빛은 하나도 안 보이고 갈색 중에서도 연한, 노란색에 가까운 날라리 느낌이 나. 젊어 보이려고 무리한 중년의 느낌이.

남편은 기분이 팍 상했다. 미용실에서 봤을 땐 회색빛이 살짝 감돌았단다. 하필 미용실도 동네에서 제일 비싼 데로 갔는데 원하는 대로 색깔이 안 나오니 실망한 것이다.

괜히 나한테 투정을 부린다. “이 돼지야! 그래도 회색이라고 말해줘야지. 배만 볼록해서는!”

아니 자기 머리 색깔 안 나온 것과 내 배가 나온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나는 더 독해져서는 머리 색깔이 얼마나 창의적이지 않은지 늘어놓고 남편은 내가 얼마나 뚱뚱한지를 늘어놓는다.

그렇게 한참동안 서로를 공격하다 결국 합의점에 도달한다. 그래. 염색 한 번 해봤으니 됐다. 지금이라도 해봐서 소원은 풀었으니 그걸로 됐다. 안 그랬으면 계속 미련과 아쉬움이 남았을 터였다. 그래도 저지르고 나서 실패한 걸 알았으니 그걸로 됐다. 이렇게 위로를 한다.

살다보면 크고 작은 욕구가 끊임없이 솟구친다. 모든 욕구를 다 풀면서 살 수는 없다. 하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스스로가 행복해질 수 있는 성질의 욕구가 올라온다면 그런 것들은 제 때 제 때 해소를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이 다음에… 상황이 더 좋아지면… 나이가 있어서… 등의 이유로 마음 속 욕구를 못 본 척 외면하고 살아버리면 나중에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할 수도 있다.

한번 사는 인생. 오늘 죽을지 40년 뒤에 죽을지 아무도 모르는 인생.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자. 그럼 적어도 꼴까닥 하고 죽는 순간에 미련은 없을 것이다. 후회도 덜할 것이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이유로!

<주부, '아주머니'는 직은 인공이 아니지만 지않아 가 세상의 주인공이 될 얘기를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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