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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왜, 무슨 일 있어?

<삶&> 류승연 류승연 기자lscaletqueen@naver.coml승인2017.09.1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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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류승연 선배님이시죠? 저는 운현극회 16학번 누구입니다.”

앳된 목소리의 까마득한 후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매년 이 맘 때마다 받는 전화 한 통. 대학교 연극동아리의 정기공연 시즌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신호다.

매년 가지는 못했지만 후배들은 꼬박꼬박 전화를 걸어 정기공연의 날짜와 시간 등을 알렸다. 연락을 받은 졸업생 선배들은 후배들의 연극을 보기 위해서라기보단 자신의 추억과 마주하기 위해 학교를 찾는다.

참석할 수 없는 선배들은 딸뻘 되는 후배에게 극회의 소식을 물었다. 옛날과는 어떻게 다른지, 잘 돌아가고는 있는 건지. 시어머니 된 심정으로 여러 가지를 캐물었다.

 

▲ 일러스트=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그런데 이번 전화는 이제까지의 전화와 사뭇 다르다. 정기공연을 언제 한다는 내용이 아니라 올해는 정기공연을 할 수 없게 됐다는 걸 알리기 위한 전화다.

“왜? 무슨 일 있어?”

예상했던 답변이 나온다. 연극을 할 사람이 없어서 공연을 하지 못한단다. 올해는 1학년 신입생이 2명 들어왔는데 둘 다 중간에 그만둬 버렸단다. 배우로 뛰어야 하는 1학년 없이 집행부인 2학년과 졸업을 앞둔 3, 4학년이 모여 연극 한 작품을 올리기엔 무리가 따른다.

에효… 뭐라 해 줄 말이 없다. 우리 때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라는 말을 못하는 것이다. 다만 힘들더라도 학창시절 연극을 해본다는 것이 이후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 어떤 식으로 긍정적 작용을 하는지에 대해서만 줄줄 늘어놓는다. 잔소리 많은 뒷방 할매처럼.

전화를 끊고 나선 안타까움이 솟구친다. 대체 요즘 아이들은 어떤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걸까? 요즘 대학은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 걸까?

95학번인 나를 되돌아본다. 우리 때는 그랬다. 이제 갓 대학생인 된 3월 한 달 동안은 과방에서 선배들과 안면을 트고 여러 동아리방을 순방하며 “어느 동아리에 들어갈까?”를 고민하던 시기였다.

나는 풍물 동아리와 연극 동아리 사이에서 살짝 고민을 했는데, 풍물 동아리에 들어가면 무조건 데모를 하는 줄 아는 부모님의 협박(?)도 있었던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연극동아리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운현극회. 우리 동아리의 이름이다. 동아리방을 생각하면 퀴퀴한 냄새와 짙게 차오른 담배연기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요즘에야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면 큰일이 나는 시절이지만 90년대에 연극 좀 한다는 멋쟁이 언니들은 삶에 대한 고뇌를 담배연기와 함께 풀어내곤 했다.

나는 동아리방이 좋았다. 연극도 좋았고 사람들도 좋았다. 점심시간이면 과 친구들과 밥을 먹는 대신 학생식당에서 식판에 밥을 담아 동아리방에 가져가서 먹었다. 동아리방에 가면 이미 여러 명의 극회인들이 식판을 갖고 둘러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우리는 끝없이 수다를 떨었고, 끝없는 담배 연기도 국과 함께 들이켰다. 대화의 소재는 다양했는데 책과 연극, 화장과 연예인 얘기들이 주를 이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모두가 가장 좋아했던 건 야한 이야기였다.

이제 갓 20살 문턱을 넘은 나와 내 동기들은 선배들이 들려주는 이상하고도 요상한 남자의 몸과 성의 세계를 생생히 배우고 익혔다. 이보다 더한 성교육은 없었다. 비명이 끊이질 않았고 웃음은 더 끊이질 않았다.

정기공연은 1년에 두 번 가졌다. 여름방학에 연습해서 9월에 한 번 올리고, 겨울방학에 연습해서 3월에 한 번 올렸다. 보통 연극 한 편 당 두세 달의 연습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대학생활의 절반은 동아리방에서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습시간은 하루 종일 이어졌다. 아침 10시에 모여 신체훈련을 2시간 정도 한 뒤 집행부가 마련해주는 밥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이후엔 감정훈련과 대본 리딩 등을 했고 그러고 나서야 본격적인 연극연습을 할 수 있었다.

집에는 언제나 깜깜한 밤에만 들어갔기 때문에 일단 연극 연습이 시작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다른 친구들도 만날 수 없었다. 1년에 두 번씩 몇 달 동안. 우리는 그렇게 한 가지에 깊게 몰입하고 빠져나오는 일을 반복했다.

집중과 몰입의 경험, 그 안에서 벌어지는 관계들 사이의 갈등과 화해, 기획 및 홍보, 무대 및 각종 소품과 의상 제작 등 연극이라는 건 그야말로 인생사의 종합시장 같은 것이었다. 도서관 책상 앞에서 이제 갓 벗어나 사회진출을 앞두고 있는 중간자적 위치인 대학생에겐 여러 가지를 미리 경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그 기회를 요즘 대학생들은 누릴 수가 없다고 한다. 안타까움이 드는 게 그 지점이다. 대학이 단지 전공 수업을 열심히 듣고 학점을 관리하는 ‘학교’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흐름은 몇 년 전부터 지속됐다. 일 년에 두 번씩 하던 정기공연을 한 번으로 줄인다는 연락을 받은 지도 오래 됐다. ‘연극을 하면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어서’가 이유였다.

이젠 그나마도 어려워졌다. 좁은 취업문 때문에 열심히 스펙을 쌓아야 하는 요즘 대학생들에겐 동아리 활동에 몇 달씩 투자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질 않다. 청년실업의 경쟁에서 패자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취업에 도움이 되는, 스펙을 쌓는 데 좋은 뭔가를 해야 하는 것이다.

동아리 활동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다. 비싼 등록금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등록금을 전액 지원받지 못한 많은 학생들은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 전선에 나서야 한다. 일단 돈을 벌어 학자금을 갚고 공부를 계속해 나가는 게 먼저지 팔자 좋게 룰루랄라 연극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대학이라는 곳이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취업을 하기 위해 스펙을 쌓는 곳으로 변해간다. 이들에게, 요즘 세대 대학생들에게 대학생활의 낭만이란 어떤 것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어쩌면 90년대 학번인 우리 세대가 대학생활의 낭만을 꿈꿀 수 있었던 마지막 세대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든다. 비록 1997년에 IMF라는 큰 사건이 하나 터지긴 했지만 1980년대의 최루탄 지옥과 2000년대의 취업 전쟁 사이에서 그나마 특별한 일 없이 지낼 수 있었던 유일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대중문화가 가장 활성화 됐던 시기도 90년대라고 한다. 90년대 음악은 언제 들어도 또 다시 듣고 싶지만 2000년대 이후 음악엔 큰 미련이나 추억이 없는 이들도 많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영향을 준 것이었을까? 내가 경험했던 대학생활의 낭만은 90년대가 끝나며 이제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어 버렸을까?

아홉 살인 딸이 종종 대학생에 대해 물어올 때가 있다. 대학생이라는 존재가 초등학생인 자신과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은 것이다. 그 때마다 나는 멋진 대학생활을 꿈꾸라 하면서 꼭 동아리 활동을 하라고 얘기를 해 준다.

예체능 분야여도 좋고, 외국어라도 좋고, 여행이나 마술 등의 동아리라도 좋다. 연극 동아리에 입단하겠다면 더더욱 두 팔 벌려 환영이다. 그때 가서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무엇이든 꼭 하나는 하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은 가능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십 년 뒤의 일이지만 만일 그 때 가서 내가 딸의 대학등록금을 전액 내 줄만한 처지가 안 된다면 어떡할 것인가! 딸은 졸업을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

청년취업문이 지금보다 더 좁아지면? 동아리 활동을 할 시간이 어디 있어. 외국어 하나라도 더 마스터하고, 각 기업의 대학생 인턴사업 등을 열심히 쫓아다니며 스펙을 한 줄이라도 더 올려야지.

각박해지는 사회가 각박해지는 대학생활을 만든다. 현재를 사는 학생들 마음엔 우리 때와 같은 여유가 없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대학생활에 다시 한 번 낭만 문화가 꽃 피울 언젠가를 기다려 봐도 될까? 가을이 시작될 무렵이면 다시 일 년에 두 번씩 정기공연을 하기로 했다는 후배의 연락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올까? 대한민국은 그런 방향으로 갈 수 있을까? 나는 궁금해진다.

<류승연 님은 언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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