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난 돌은 왜 정을 맞아야 하는가
모난 돌은 왜 정을 맞아야 하는가
  • 강진수 기자
  • 승인 2017.09.18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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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마광수 교수를 추억하며’ / 강진수

신촌에서 수업을 듣는 첫 해였다. 갓 완공된 백양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며, 동기들과 키득키득 별것도 아닌 일에 농담하고 웃으며, 학생회관에 들러 천 원짜리 커피를 집에서 들고 온 컵에 담아가며, 백양관 강당에 수런거리는 학생들의 소란스러움을 제쳐두고 자리 잡아 앉으면 조금 있다가 마광수 교수가 비틀거리며 들어오곤 했다. 하얗게 센 머리에 구부정한 허리, 이따금씩 지팡이를 짚고 들어오곤 했는데, 강의실의 층계를 오르는 것은 마교수에게 영 어려운 일이었다.

한 칸 한 칸 조심스럽게 강단을 오르던 마교수의 모습이 선명하다. 강단 뒤편에 놓인 간이의자를 천천히 끌어 가운데에 놓고 앉으면, 수런수런 떠들던 학생들이 점차 고요해졌다. 마이크를 힘없게 들어 천천히 말씀하던 마교수에게는 교재 같은 것이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연극의 이해’라는 수업명과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라는 교재와 별개로 교수는 의자에 앉아 이런저런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국문학과에서 더 이상 자신과 이야기해줄 교수 한 명 없다느니, 은퇴하기 전 마지막 강의라느니 그런 말들을 궁시렁거리다가 그는 가끔 강단에서 담배를 꺼내 피웠다.

 

 

백양로를 걷다 보면 외롭게 세워져 있는 벤치에 위태롭게 걸쳐 앉아 마교수는 담배를 천천히 피우곤 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교수님, 하고 말을 붙일까 여러 번 고민을 했지만 그는 극도로 외로워보였고 모순되게도 그 외로움이 극도로 어울려보였다. 수업을 듣다가 쉬는 시간에 동기들과 강의실 밖에서 별 의미 없는 말들을 주고받다가 누군가 그랬다. “왠지 이게 마광수 교수의 마지막 수업일 것 같아. 인생에서의 마지막 수업.” 그때는 가만히 듣고 있으면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을 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 마광수 교수의 자살을 생각하기보다는, 오랜 육체적 고통에 의하여 결국 숨이 멎는 그를 상상하며. 그러나 꼬박 1년 조금 넘어서 들려온 소식은 처참했다.

그가 가진 최고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만의 외로움이, 육체적인 문제보다 더 그를 옭아맨 것일 테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광수 교수는 자신이 스스로 고독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 것이다. 그의 바깥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고독이 그를 천천히 괴롭혔던 것이다. 천재라면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에게는 너무나도 무거운 짐이 되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는 그렇게 침잠했고 바닥에 닿았다. 우리는 비로소 바닥에 닿아버린 그를 두고 이야기한다. 그의 죽음은 꽤나 슬프다. 물론 장례도 치러졌고, 그의 가족들에 의해 시신도 처리됐다. 그것보다 크게 슬퍼 오는 것은 그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경종처럼 울려오는 점이다. 우리는 그를 죽였다. 우리는 마광수를 죽였다.

마광수 교수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는 뉴스 기사를 친구 통해 듣고 나서 한참동안 우울에 빠져 있었다. 그것은 매우 깊은 우울이었다. 그가 어떻게 생활했을지, 혼자 남은 집에서 무슨 생각들과 혼잣말들을 했을지, 가끔씩 혼자 산책을 하다 무슨 생각에 빠져있었을지, 그 모든 것이 천천히 상상되면서 나를 깊은 우울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는 왜 굳이 죽음을 택해야 했을까. 무언가를 성취했다거나, 삶의 과제를 다 끝마쳐서 따위의 이유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오히려 그의 과제, 그의 의무와 평판 따위에 짓눌렸던 것이다. 사실 그를 알고 있는 모두는 그의 천천히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를 구제하려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는 사회의 모난 돌이었고, 모난 돌은 당연히 정을 맞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죽고 나서야 그가 온몸으로 맞은 정을 탓하며, 그의 죽음을 추도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하나도 진심이 담겨있지 않은 슬픔이다. 누군가는 그의 학생이었다고, 그는 훌륭한 교수였다고 떠들어대지만 그것은 결코 마광수 교수라는 외로운 인간을 위로하는 말이 아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는 훌륭한 교수는 아니었다. 훌륭한 강의도 아니었고 학생들에게 훌륭한 충고와 조언을 해줄만한 인물도 아니었다. 다만 그는 사람이었다. 돌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그렇게 정을 맞을만한 짓을 했단 말인가. 사회는 돌이켜보아야 한다. 왜 모난 돌은 정을 맞아야만 하는가. 모난 돌은 모난 대로 내버려둘 수 없는가.

문학이란, 사회란 결코 하나의 이념, 하나의 생각, 하나의 원리원칙을 담아두는 그릇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마광수라는 그릇은 뱉어냈다. 뱉어내는 것도 모자라 잘근잘근 씹어서 그를 끝까지 괴롭혔다. 그의 외설적 표현들은(사실 외설이면 어떻고 그게 문학이 된다면 또 어떤가) 그를 법정에 세웠고 실형을 살게 했으며 그가 평생 다닌 대학에서는 온전한 대우도 받지 못하게끔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를 일부러 찾지 않았으며, 사회는 그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정은 이렇게 맞는 것일까.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모난 돌에 정을 날렸으면서도 이제와 안타깝게 죽은 노인 정도로 식어버린 마광수 교수의 시신을 바라본다.

그러나 모난 돌은 결코 정을 맞을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헤아릴 수 없는 시간들의 풍파에도 거스르며 모난 모습을 유지한다. 우리는 모난 것을 모난 것대로 내버려두었어야 했다. 그 모양 자체를 즐기고 바라보며 가꿀 줄 알았어야 했다. 사회에는 너무나도 모난 돌이 많다. 장애인이라는 모난 돌, 성적 소수자라는 모난 돌, 그 외에도 많은 모난 돌들에 우리는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정을 날린다. 마광수 교수는 물론 훨씬 사정이 나은 사람이었지만, 그의 죽음은 하나의 경종이다. 아직도 그 종소리의 잔음이 잔잔하게 울린다. 사회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 그래 보이는 사람들 모두를 우리는 품어낼 줄 알아야 한다.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을 줄 알아야 성숙한 사람이고 성숙한 사회다. 관점이 다르다고 시각과 시점이 다르다고, 사는 방식이 다르다고, 갖춘 지위나 삶의 형태가 애초에 다르다고 우리는 정을 날려서는 안 된다.

오히려 마광수 교수는 죽지 않았어야 했다. 바람에 꺾인 풀처럼 그는 그의 몸을 한껏 꺾어버려 수많은 사람들의 동정과 안타까움을 사고 있지만, 사회에 우리가 외쳐야 할 말은 결코 그의 죽음에 대한 동정 따위가 아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 오히려 마광수라는 인물이 살아남아 더 크게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 그런 아쉬움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인식을 바꾼다. 그런 변화는 상당한 세월과 사람들의 점진적인 변화들을 요구하지만, 그런 거대한 벽에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결국 우리는 다시 묻는다. 누가 마광수를 죽였는가. 그리고 또 죽일 셈인가. 그럴 거라면 애초에 우리는 그의 죽음에 대해 동정해서도 안 된다. 더 이상 또 다른 마광수를 죽여서는 안 된다.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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