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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보이지 않나, 저 평화의 노란나비들이!

<현장> 1300회 넘긴 위안부 피해 할머니 ‘수요시위’에서 정다은 기자lpanda157@naver.coml승인2017.09.2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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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폭우가 억수로 쏟아졌다. 쉴 틈 없이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이 쳤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놀란 사람들은 연거푸 “드디어 날씨가 미쳤구나” 했다.

다음 날, 언제 그랬냐는 듯 맑고 투명한 하늘. 시원하다 못해 싸늘한 바람이 폭우가 내린간 사실을 귀띔은 해주는 듯하다. 긴 옷을 입어도 바람이 옷을 뚫고 들어온다. 온몸에 기분 좋은 소름이 돋는다. 그래도 비가 와서 그런지 미세먼지가 끼어있던 대기는 맑아졌다. 길거리도 더 활발하다. 날씨가 좋은 덕에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

해가 중천에 뜨면 그나마 따뜻해질 줄 알았으나 아직도 쌀쌀하다. 점점 가을다워진다. 한동안 가을이 여름인척 하더라. 아무리 4계절의 축복을 받은 나라라지만 하루 안에 4계절이 모두 있는 요즘이다. 아침엔 봄, 낮엔 여름, 저녁엔 가을, 새벽엔 겨울…. 폭우에 혼쭐나고 제 모습을 찾은 듯하다. 내일은 겉옷 좀 챙겨야 되겠다.

쌀쌀한 바람에 잔뜩 몸을 움츠리고 전철역으로 향한다. 역 계단을 내려가자 어깨를 좀 폈다. 전철이 도착하고 몸을 싣는다. 목적지는 안국역. 안국역 6번 출구로 나가 일본대사관으로 향한다. 이 날은 수요일.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를 찾아갔다.

매주 수요일 정오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진행한다. 1992년부터 시작된 시위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이 주최하고 여성, 종교, 노동 단체 등과 학교 동아리 등이 돌아가며 주관한다. 역사, 인권, 평화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외치는 연대의 공간이다. 8월 14일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과 매년 마지막 수요시위는 세계연대집회 등 특별 수요시위로 진행한다.

대사관 앞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였다.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경찰들이 시위대를 둘러싼 채 보호하고 있다. 통행하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돕는다. 소규모로 진행되는 시위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기자들도 많이 보인다. 엄숙할 줄 알았는데 굉장히 밝고 힘 있는 분위기다. 사람들은 저마다 노란 나비모양의 부채를 들고 있다. 작은 무대 앞에 모여 앉은 참가자들이 사회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다.

일본인들이 눈에 많이 띄는 점이 이채롭다. 참가자들의 3분의 1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번역기 이어폰을 한 귀에 꽂고 무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일본어로 적힌 플래카드도 보인다. 사진과 동영상으로 집회 장면을 담는 사람도 보인다. 한 플래카드엔 ‘왜 우리나라는 「일본군 종군 위안부」 문제를 진지하게 마주대하지 않을까!?’라는 한글과 함께 아래에 같은 뜻의 일본어가 적혀있다.

이날 참가한 단체들은 헌법9조 세계로 미래로 연락회,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중계중학교, 중국인전쟁피해자지원모임,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위안부문제를 교육시키는 희망의 씨앗, 청소년 지원 단체 콜라보, 일본 성매매 지원 단체 팝스 등이었다.

최우미 민주노총 금융노조 여성위원장이의 진행을 맡았다. 정대협 윤미향 대표가 마이크를 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의 힘 있는 발언에선 간절함이 느껴졌다. 지나가던 사람들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주변 회사원들이 점심을 먹고 가는 길 잠시 멈춰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연설이 끝날 때마다 그들은 한마음으로 박수를 쳤다.

한쪽에는 방문자들이 서명하는 곳이 있었고 다른 쪽에선 후원팔찌와 에코가방, 저금통 등을 팔고 있었다. 노란 모금함을 들고 다니는 아주머니들도 보인다. 모금함에는 ‘1000원으로 100만 시민이 100일 동안 함께하는 100만 시민모금’이라고 적혀있다. 지갑을 열어 1000원을 넣었다. 모금함을 들고 있던 아주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감사하다고 했다.

젊은 여대생들도 꽤 있었다. 연합 동아리 평화나비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매주 집회에 나온다고 한다.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이 올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며 맞이한다.

무대 앞 한쪽에는 길원옥 할머니와 김복동 할머니가 자리하고 계셨다. 무대에 올라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도 하셨다.

민중가수 박준의 기타와 노래공연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흥얼거리기도, 박수를 치기도, 나비부채를 흔들기도 했다. 집회는 무겁고 딱딱한 분위기가 아닌 모두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참여를 원하는 사람들은 따로 신청하지 않고 매주 수요일마다 이곳에 찾아와 방문자 서명을 하면 된다. 어린 꼬마가 작은 손으로 서명을 하고 있다.

1300회를 넘긴 수요시위는 성명서 낭독과 함께 끝이 났다. 남녀노소, 국적, 종교를 불문하고 모인 이들. 그들은 한마음이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우리 모두의 염원이 하루 빨리 이뤄지길 간절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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