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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가 일본 국기고, 삼성이 일본 기업?

<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이석원 기자lmaster@weeklyseoul.netl승인2017.09.22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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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스톡홀름 외곽 밸링뷔(Vällingby) 지하철역에서 내리는데 앞서 걷는 어떤 남자의 옷을 보고 뒤따르던 스웨덴 남녀가 이야기를 한다. 앞선 그 남자의 재킷에는 8개의 세계 각국 국기가 그려져 있었다.

먼저 스웨덴 남자가 여자에게 묻는다. “저 국기들 중 몇 개나 알아?” 그러자 여자는 “다 알아.” 여자는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저건 이탈리아, 그 옆에는 이스라엘, 그 아래는 중국, 그 옆에는 포르투갈, 오른쪽 팔위는 일본, 그 아래는 미국, 왼쪽 팔 아래는 인도 국기인데….” 그 여자는 왼쪽 팔 위 국기에서 머뭇거렸다. 그리고는 “저건 TV에서 본 것 같은데….” 그러자 남자가 힌트를 준다. “‘삼숭’의 나라, 2002년 월드컵도 했는데….” 그러자 여자가 “그건 일본이잖아. 일본 국기는 저건데?” 남자는 웃으며 “맞아. 저것도 일본 국기야. 일본이 예전에 쓰던 국기인데, 디자인이 복잡해서 멋을 낼 때만 쓰고 정식 국기는 오른쪽 팔위에 있는 국기를 사용해. 디자인이 깔끔하고 기억에 오래 남잖아.”

 

▲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의 구시가지에 있는 성 베드로 교회에서는 리가항구 쪽 삼성의 간판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그 여자가 머뭇거렸고, 그 남자가 친절하고 자세히 설명한 국기는 바로 대한민국 태극기다. 낯선 스웨덴 사람이 태극기가 그려져 있는 재킷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는데, 이 두 남녀의 황당한 대화에 기가 막혔다. 차라리 두 사람 모두 태극기를 끝내 몰랐으면 좀 서운한 마음은 들었을망정 황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아는 척 가르쳐 준 게 ‘일본의 예전 국기’라고?

몇 해 전, 스웨덴과 멀지 않은 발트해 3국 중 하나인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Riga) 구시가지에 간 적이 있었다. 구시가지에서 가장 높은 곳, 리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성 베드로 교회의 종탑 꼭대기는 늘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그런데 거기서 멀리 리가항 쪽을 보면 가장 높은 건물 꼭대기에 ‘SAMSUNG’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그리고 반대방향 리가강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보면 강 언저리에 ‘LG’의 광고 간판이 크게 눈에 들어온다.

엄마 아빠와 함께 온 스웨덴 꼬마 아이가 아빠에서 ‘SAMSUNG’ 간판을 보고 “저거 핸드폰 회사다”고 하자 아빠는 고개를 끄떡인다. 그리고 꼬마가 다시 아빠에게 “저거 일본 회사지? 소니보다 큰 회사야?”라고 묻자 아빠는 “그래. 저 회사는 원래 작은 일본 회사였는데, 지금은 핸드폰을 많이 팔아서 소니보다 더 큰 회사가 됐다”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반대편 ‘LG’ 간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저것도 일본 전자 회사인데, 소니보다 TV를 더 잘 만드는 회사야.”

2005년 처음 스웨덴에 왔을 때, 당시 스웨덴 사람들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무척 생소해 하는 것을 느꼈다. 이미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른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입양아를 많이 보내는 나라’나 ‘북한과 전쟁을 했던 나라’ 정도로 아는 경우가 많았다. 스톡홀름의 얼란다(Arlanda)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우뚝 솟아 있는 대형 삼성 광고판이 버젓이 있고, 당시에는 지금보다 삼성 휴대전화 사용이 아이폰 사용보다 더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게다가 당시 스톡홀름 길거리에는 기아차 카니발이 대형 택시로 꽤 많이 이용되면서 곳곳에 현대 기아차 광고판이 있는데도 그들은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물론 지금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모르는 스웨덴 사람들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어디서든 “어느 나라에서 왔나?”라고 물을 때 “South Korea”라고 대답하면 밝게 웃으며 반긴다. 한국을 다녀온 경험이 많은 스웨덴 사람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특히 스웨덴 젊은이들은 10명 중 3∼4명은 한국을 다녀온 경험이 있고, 또 2~3명은 한국인 친구가 있다. 간단한 한국말이나 김치와 불고기, 잡채와 비빕밥 정도의 한국 음식에 대해서는 애정까지 보이기도 한다.

 

▲ 3개월 이상 거주하는 한국인 수가 유럽에서 여섯 번째로 많고, 시민권자 비율로 보면 유럽 최고 수준인 스웨덴에 한국 문화원이 없다. 대사관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지만 실망할 수준이다.

 

스톡홀름에서 북서쪽으로 300여km 떨어진 순드보른(Sundborn)에는 칼 라르손이라는 유명한 스웨덴 화가의 집이 있다. 이곳을 가이드 투어하는데, 가이드를 맡았던 아름다운 스웨덴 아가씨 소피아 싱네 양이 우리 일행에게 묻는다. “한국 사람이세요?” 물론 한국말로. 깜짝 놀라 “한국말을 어떻게 하세요?”라고 물으니 작년에 한국에서 1년 살았단다. 그리고 가이드 일을 하며 돈을 모아서 내년에 다시 한국에 갈 것이라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거의 알지 못하는 도시 순드보른에서 만난 스웨덴 아가씨는 한국에서 홈스테이 하던 집 주인을 단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나라를 모르는 스웨덴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금이지만, 아직도 삼성과 LG, 그리고 현대자동차가 한국의 기업인 줄 모르는 스웨덴 사람은 적지 않다. 앞서 ‘황당한 남자’가 얘기한 “삼숭”은 삼성의 이 사람들 발음이다. 이들은 현대를 영문 표기대로 ‘훈다이’라고 발음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삼성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면서, LG TV와 냉장고를 사용하면서, 현대차 산타페를 타고 다니면서 이 모든 것을 일본 제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스웨덴에는 여행자가 아닌 3개월 이상 거주하는 한국인이 2800여명에 이른다. 유럽 전체를 통틀어서도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에 이어 여섯 번째로 많다. 그런데 그 흔한 한국 문화원 하나가 없다. 주스웨덴 한국대사관이 가끔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한 행사를 열기도 하지만, 참석자의 3분의 1은 스웨덴에 거주하는 한국인이고, 또 그 횟수도 많지가 않다.

스웨덴에 한국을 체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것은, 스웨덴 사람들이 삼성이나 LG나 현대차를 일본 기업으로 알게 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스웨덴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뺏고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에 사는 3개월 이상 거주 한국인 중 시민권 소유자가 1800명에 이른다. 비율로 따지면 고려인의 비율이 높은 러시아나 옛 소련 연방에 속한 나라들을 제외하고 최고 수준이다. 그들은 ‘삼성폰’을 ‘삼숭폰’이라고 읽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지만 삼성이 일본 기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한국 문화원 하나 세우지 않는 한국 정부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만약 태극기가 일본 국기의 옛 버전이라고 생각하는 ‘무식한’ 스웨덴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그들의 심정은 어떨까?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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