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록 여행스케치> 휴(休)와 힐링의 고장, 사천

어느새 가을의 중심이다. 저 산천에 핀 화사한 가을꽃들이 손짓하는 이즈음, 남쪽의 끝 사천(삼천포)으로 떠난다. 사천 여행은 수려한 자연의 매력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 좋은 여로이다. 남해고속국도 사천 나들목으로 나와 3번 국도를 타고 30여 분 남쪽으로 내려가면 5개의 다리(삼천포대교, 초양대교, 늑도대교, 창선대교, 단항교)로 연결된 연륙 · 연도교(창선 삼천포대교)가 나타난다. 이 다리는 사천시 대방동에서 남해군 창선면을 잇는데 2개의 주탑이 대교를 버티고 있으며 총 연장 3.4km이다. 5개의 다리 중 삼천포대교가 436m로 가장 길다.

 

▲ 삼천포항

☛활력 넘치는 삼천포항

삼천포대교의 기점인 대방동 주변에는 삼천포항(활어위판장)을 비롯해 유람선선착장, 대방진굴항, 노산공원, 남일대해수욕장, 코끼리바위, 실안노을길 등 볼거리가 쏠쏠하다. 수 백 척의 화물선과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삼천포항은 활력이 넘친다. 항구 안쪽 어시장에는 억센 ‘경상도 아지매’들이 갖가지 종류의 해산물을 푸짐하게 늘어놓고 싱싱한 횟감이나 반찬거리를 준비하러 나온 주부들을 기다린다. 새벽 4시 30분, 삼천포항 활어위판장에 가면 또 다른 삶을 엿볼 수 있다. 생선 경매가 열리는 시간이다. 경매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경매사와 중매인의 손놀림이 바빠진다.

 

▲ 생동감 넘치는 삼천포수산시장

 

삼천포항 옆 대방횟집단지 안쪽엔 고려말 왜구의 침략에 대비해 돌로 둑을 쌓은 대방진 굴항(掘港)이 있다. 이순신 장군은 이곳에 거북선을 숨겨두고 왜구의 배가 팔포바다를 지나가길 기다려 빠른 물살을 타고 나가 무찔렀다고 한다.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힘차 보인다. 굴항을 빙 둘러싼 고목들 옆으로는 나무 벤치가 놓여 있고 잔잔한 물살에 작은 어선 몇 척이 떠 있는 모습이 그 당시의 상황을 어렴풋이 그려보게 해준다.

삼천포 여행에서 유람선이 빠진다면 왠지 허전하다. 대방동에 유람선선착장이 있다. 아기자기한 섬과 바다, 여기에 낙조까지 볼 수 있는 유람선은 오전 10부터 오후 3시까지 수시 운항한다. 사람의 코 모양을 닮아 붙여진 코섬을 비롯해 백로, 왜가리 서식지로 유명한 학섬, 코끼리 모양의 코끼리 바위, 중생대 백악기 공룡 발자국 화석으로 유명한 고성 상족암 등 한려수도의 비경을 두루 감상할 수 있다. 선착장을 출발해 대방진굴항-삼천포대교-코섬-비토섬-신수도-동백섬(해골바위, 매바위)-남일대-선착장으로 돌아오는데 1시간 30분 걸린다.

 

▲ 이순신장군이 전승을 거둔 대방진 굴항

 

이곳에서 길은 사천만의 그림 같은 풍경들이 다가오는 실안노을길로 이어진다. 유람선선착장 옆으로 길이 나 있다. 이 해안길은 사천만에 떠있는 크고 작은 섬(동섬, 마도, 저도(딱섬), 신도)들과 삼천포대교와 연결된 초량도, 늑도 등이 바라보여 풍광이 빼어나다. 특히 이곳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한국관광공사가 꼽은 전국 9대 일몰로 꼽힐 만큼 아름답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죽방렴(조류를 이용해 고기를 잡는 옛 어업방식)과 섬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 박재삼문학관

☛한려수도가 바라보이는 노산공원

삼천포항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인 서금동 해안에는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노산공원이 있다. 공원 언덕, 판문점 자유의 집을 본뜬 승공관(팔각정)에 오르면 삼천포 시가지와 한려수도의 크고 작은 섬들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곳곳에 나무벤치와 잔디밭, 운동기구들이 있어 가벼운 산책코스로도 좋다. 노산공원은 이 고장이 낳은 시인 박재삼(1933~1997) 선생의 자취가 어린 곳이기도 하다.

 

▲ 박재삼문학관 앞에 있는 박재삼 시인 동상

 

공원 한쪽에 그의 시 ‘천년의 바람’을 새긴 시비가 세워져 있고 생가 주변길은 ‘박재삼 거리’가 됐다. 공원 한쪽에 있는 박재삼문학관에 가면 선생의 작품세계와 일생을 더듬어 볼 수 있다. 선생이 쓴 대부분의 시에는 고향바다의 서정과 아름다움이 그대로 녹아있는데 소월과 영랑, 그리고 미당 서정주 선생과 함께 한국 서정시의 맥을 잇는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춘향이 마음’을 비롯해 열다섯 권의 시집을 펴내고 병고에 시달리다 1997년 아깝게 생을 마감했다.

 

 

▲ 남일대해변

☛고적하고 쓸쓸하지만 낭만이 있는 해변

노산공원에서 나와 고성 쪽 길을 따라 5분쯤 가면 낭만 가득한 남일대해변이 펼쳐져 있다. ‘남일대(南逸臺)’란 이름은 신라 말의 학자인 고운 최치원 선생이 ‘남녘땅에서 경치가 빼어난 곳’이라 해서 붙였다고 한다. 해변을 감싼 낮은 산과 바다 위에 떠 있는 기암괴석, 곱디고운 모래사장이 인상적이다. 해변을 돌아 나가면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듯한 모양의 코끼리바위를 볼 수 있다. 바위 사이로 뚫린 천연 동굴로 연신 파도가 넘실거리고 파도가 실어 온 조개껍질과 모래알이 하얗게 쌓여 있는 모습이 신비롭다.

 

▲ 남일대해변 앞의 코끼리바위

 

사천은 항공산업의 메카이기도 하다. 사남면 유천리, 사천공항 근처에는 항공우주박물관이 있다. 공항과 인접해 있어 수시로 내리고 뜨는 항공기를 볼 수 있으며 전시된 20여 기의 비행기는 아이들의 과학 학습 체험에 좋은 구실을 한다. 야외 전시장과 실내전시관으로 나뉘어 있다. 항공우주관에 들어가면 항공발달사를 비롯해 비행기가 뜨는 원리, 세부장치, 비행기 핵심부품인 엔진을 살펴볼 수 있고, 인공위성과 우주로켓도 큰 흥미 거리이다. 직접 조종석에 앉아 초음속비행기를 조종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시뮬레이터는 단연 인기 만점.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5시. 박물관 바로 옆에는 항공우주과학관이 들어섰다. 항공우주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 선진리성
▲ 항공박물관에 전시한 다양한 항공기

 

사천만이 바라보이는 용현면 선진리에는 이순신장군이 거북선을 이용해 승전을 거둔 선진리성이 있다. 이 성은 구릉진 지형을 이용해 일본군이 만든 토성(왜성)으로, ‘선진’이란 성 이름은 조선후기 때 수군의 배를 만든 곳이라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성 주위로는 수령 90년 이상의 벚나무 1천 여 그루가 심어져 있는데, 꼿꼿하게 서 있는 아름드리 둥치는 긴 세월의 부침을 말해준다. 이 성은 원래 삼면이 바다와 접해 있었으나 지금은 한쪽만 바다에 닿아 성벽 아래로 마치 큰 강 같은 사천만이 시원스레 내려다보인다. 성 입구에 정유재란의 흔적인 조명군총과 이충무공 사천해전승첩기념비가 있다.

 

 

▲ 비토섬 앞에 떠 있는 토끼섬

☛별주부전의 전설이 깃든 비토섬

사천대교를 건너 별주부전의 전설이 깃든 비토(飛兎)섬으로 들어가 보는 것도 좋겠다. 비토섬은 4개의 또 다른 섬으로 이뤄져 있다. 전설 속 용궁마을 앞의 월등도와 토끼섬, 거북섬, 목섬을 일컬음이다. 썰물 때면 비토섬과 월등도를 잇는 바닷길이 열려 이색풍경을 연출한다. 비토섬에 살던 토끼부부가 거북에게 속아 월등도로 넘어갔는데 그 뒤 죽을 위기에서 빠져나왔지만 달빛에 비친 섬을 비토섬으로 착각, 뛰어내리는 바람에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그 죽은 자리에 생긴 섬이 토끼섬이란다. 그 옆에는 거북이가 용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죽어서 섬이 됐다는 거북섬이 있다. 비토섬과 월등도는 하루 두 번씩 물이 갈라진다. 이 때 드러나는 개펄은 사천팔경 가운데 하나다.

 

▲ 비토섬과 월등도를 잇는 바닷길
▲ 다솔사 앞의 그윽한 나무숲이 청신하다.
▲ 소박함이 깃든 다솔사

 

비토섬 인근에 있는 비봉내마을(곤양면 서정리, www.beebong.co.kr)은 농촌체험과 대숲 체험지로 인기다. 대나무 피리와 물총 만들기, 댓잎차 만들기, 매실따기, 대나무 수액 채취, 무인도 탐험, 옥수수 따기, 뗏목 타기 같은 체험이 연중 이어진다. 마을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다솔사는 오솔길이 그윽하다. 훤칠한 대나무와 키 큰 삼나무, 구불구불 기어 올라간 적송들이 피톤치드 향기를 물씬 내뿜는다. 대숲 산책길 끝에 있는 다솔사는 만해 한용운이 수도했고 소설가 김동리가 ‘등신불’을 쓴 곳으로 유명하다. 경내에 있는 대양루는 조선 영조 24년(1748년)에 지은 건물로 빛바랜 기둥이 몸 전체를 받치고 있다. 비봉내마을 체험 문의: 010-4032-5111, 다솔사 종무소: 055-853-0283.

 

▲ 비토섬에 가면 토끼와 거북이의 캐릭터를 볼 수 있다.
▲ 보물로 지정된 사천매향비

 

비봉내마을에서 가까운 ‘사천매향비’도 꼭 둘러보도록 하자. 바위면에 새겨진 글귀가 인상적인 이 비석은 그 가치가 뛰어나 보물로 지정됐다.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는 글귀는 고려 후기 승려 4100여 명이 계를 조직해 매향 의식을 했다는 뜻인데 전국에 흩어진 매향비 용도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매향(埋香)은 신을 모시기 위해 향나무를 땅에 묻거나 향을 피우는 의식을 말한다. 이때 의식을 치르는 과정과 시기, 관련 집단 등을 기록한 비가 매향비다.

<여행작가/ 수필가>

 

▲ 파도식당의 한정식 차림

여행수첩(지역번호 055)

◆가는 길=대전 통영고속도로 진주분기점에서 남해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사천나들목으로 나와 삼천포 방면 3번국도를 타면 삼천포항(삼천포대교)으로 갈 수 있다. 실안노을길, 대방진굴항, 유람선선착장, 노산공원, 남일대, 코끼리바위 등은 삼천포항에서 1-2km 거리에 있다. 사천시내에서 남일대해변행 시내버스 수시 운행. 15분소요. 서울, 진주, 부산 등지에서 사천행 버스 수시 운행. 비봉내마을(다솔사)로 가려면 남해고속도로 곤양나들목에서 나와 다솔사 표지판 보고 1㎞쯤 가다 보면 체험장 팻말이 보인다. 항공우주박물관과 선진리성은 사천으로 들어가는 3번 국도변에서 가깝다.

◆숙박=삼천포항 인근에 케이모텔(834-2255), 파라오모텔(833-2030) 등이 있고 좀 더 큰 시설로는 사천관광호텔(855-0005), 삼천포해상관광호텔(832-3004), 엘리너스호텔(832-9800)이 있다.

◆맛집=삼천포는 해산물이 풍부하다. 바다 전망이 좋은 실안노을길 주변에 청하횟집(835-0024)을 비롯해 남해군에서 직영하는 남해군수협회센터(867-7363) 등 횟집이 몰려 있다. 싱싱한 해산물이 나오는 한정식도 별미다. 파도한정식(883-4500), 오복식당(833-5023)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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