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마을모정 ⑧-진안 백운면 반송리 ‘개안정’

▲ 시방 모정 마룻바닥에 엎드려 걸레질중인 김계순 할매. 그 경건한 몸짓이 이곳을 순간 성소(聖所)로 만든다.

 

신독(愼獨, 남이 보지 않는 곳에 혼자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 함) 혹은 신독(身讀, 경전을 단순히 입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실행함).

‘신독’이란 두 글자 생전 들어본 적 없어도 할매는 홀로 아무 생색 없이 할 바를 다한다.

시방 모정 마룻바닥에 엎드려 걸레질중인 김계순(87․진안 백운면 반송리 원신암마을) 할매. 한없이 신중하고 겸허하고 지성스럽다. 그 경건한 몸짓이 이곳을 순간 성소(聖所)로 만든다.

<걸레질을 하려면 무릎을 꿇어야 한다. 허리와 머리를 깊이 숙여야 한다. 엉덩이를 들어야 한다. 무릎걸음으로 공손하게 걸어야 한다. 큰절 올리는 몸으로 아기 몸의 때를 벗기는 마음으로 닦지 않으면 방과 마루는 좀처럼 맑아지지 않는다…>

(김기택 ‘걸레질하는 여자’ 중)

 

▲ 눕고 싶은 마루. 반질반질 정갈한 이 윤기가 할매의 무릎걸음과 할매의 손길에서 나왔을 터.

 

눕고 싶은 마루. 반질반질 정갈한 이 윤기가 할매의 무릎 걸음과 할매의 손길에서 나왔을 터.

집 나서서 모정으로 향할 적에 할매가 항시 지참하는 것은 걸레.

오늘도 걸레를 쥐고 개안정에 납셨다. 마을 앞 섬진강물 흐르는 자리에 ‘학남정(鶴南亭)’과 나란히 들앉은 ‘개안정(開眼亭)’. 섬진강 시원한 물줄기에 눈이 열린다 하여 이름자에 ‘개안(開眼)’을 올렸다.

500년을 헤아리는 나무들이 짙은 그늘을 이루는데다 청량한 물소리까지 섞여들어 더욱 서늘하다.

천장의 서까래가 이루는 선들이 아름답고 편액들도 가득 차 있다.

1896년 건립된 개안정과 1927년 지역 인사들이 지었다는 학남정은 태생이 모정과는 조금 다른 듯한데도 건립 초부터 마을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마을 쉼터로 쓰여 왔다. 마을 사람들은 개안정을 ‘아랫모정’, 학남정을 ‘웃(윗)모정’이라 부른다. 아랫모정이 여자들의 공간이라면, 웃모정은 주로 남자들의 공간.

“웃모정은 계단 있고 높으막한디 아랫모정은 나차와서 올라서기도 더 편하고.”

할매는 좀전에 길 건너편에서 모정을 건네다보고 집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본 참이다.

“아까는 얼굴 모린(모르는) 총각들이 쉬고 있더만요. 그래서 모정에 못 왔어요. 아침에 와서 다 씰고 딱거 놨는디 총각들이 왔더란 말요.”

이어지는 할매의 말은 “그래서 좋았어요”다.

“마룽(마루)을 까끔하게 청소해 놨는디 와서 놀고 앙겄응게.”

‘하필’이 아니라 ‘마침’의 마음으로 맞이하는 일상.

‘얼굴 모린’ 총각들이 할매의 손길과 마음을 알건 모르건 상관없이 할매는 홀로 다행인 것이다.

 

▲ 마을 앞 섬진강물 흐르는 자리에 ‘학남정’(오른쪽)과 나란히 들앉은 ‘개안정’.

 

“여그가 심란스러우문 애가 타고 까깝해요. 내 집이 아니라도 그래요.”

마을 사람 아무나 쓸고 닦는 모정이지만, 할매의 손길이 유독 많이 닿는 이유다.

섬진강 물가에 있어 주말이면 외지인들이 많이 찾고 그래서 어질러지기 일쑤인 모정.

“그래도 누가 와서 논 것이 좋아요. 모린 사람이어도 잘 쉬어가문 좋은 일이어요.”

이왕 쉬었다 가려면 좀 깨끗이 쓰고 가라는 지청구 한마디 없이 할매는 그저 손으로 입을 가리고 가만 웃을 뿐이다. 날마다 시시때때로 그곳에 오체투지하는 할매의 몸공과 마음 덕분에 그 마루 반질반질 개안하다. 덕분에 개안(開眼)!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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