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 황룡 벽지에 공단이불, 원앙금침에 잣베개, 요강…첫날 밤 어떠셨는지요?
청룡, 황룡 벽지에 공단이불, 원앙금침에 잣베개, 요강…첫날 밤 어떠셨는지요?
  • 김초록 기자
  • 승인 2017.10.0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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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록 에세이> 혼례(婚禮) 이야기

결혼철이 돌아왔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예비 신랑 신부들의 마음이 설레게 마련이다. 가을꽃들만큼이나 화사한 그네들의 모습을 보면서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감정의 소치인가 보다.

결혼은 인륜지대사다. 결혼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겪어야 할 통과의례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혼인의식을 통해서 새로운 가족이 구성되고 사회로부터 공적인 인정을 받는다. 조상과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며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할 것을 다짐하는 서약이기도 하다. 흔히들 이 세상에서 가장 뜻대로 안 되는 것 중의 하나로 결혼을 들고 있다. 반려자를 찾는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고도 미묘한 문제이다.

 

▲ 일러스트=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우리 선조들은 예로부터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 하여, 일곱 살만 되면 남녀가 함께 어울리는 것을 금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일곱 살이 넘어 초등학교에 들어가도 남학생과 여학생이 함께 짝이 되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것은 바람직한 공동체문화로 나아가기 위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닐까 한다. 남녀의 만남은 ‘만남’ 그 자체를 넘어 ‘결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현대인들은 부모가 배필을 정해주는 것을 간섭이라고만 생각하는 것 같다. 당사자들만 좋으면 되지 부모가 무슨 상관이냐며 불평을 한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젊은이들의 생각이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좀 더 진지한 관찰과 대화를 통해 조화와 지혜를 모을 때 보다 바람직한 결혼관이 정립되지 않을까 싶다.

조선시대의 부모는 자식의 배필을 정해주는 것을 당연한 도리로 여겼다. 자식들 또한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그 당시 결혼의 의미는 개인과 개인의 결합이 아니라,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었다.

부모는 자식의 배우자를 고를 때 가문의 명예를 가장 큰 선택 기준으로 삼았다. 결혼 당사자의 의사는 그리 배려하지 않았다. 조선시대의 이런 유교식 결혼제도는 서서히 무너지게 되었지만, 아무튼 어려서부터 남녀가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배우자를 선택하는 현대인들의 사고방식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엄격한 유교적 질서를 강조하던 조선시대에도 결혼 당사자가 배우자에 대해 개인적인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특히 여성의 경우, 이상적인 남편감에 대한 여성 나름대로의 생각은 엄연히 존재했던 것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강실도령(講室道令)이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과거에 급제하여 관리로 등용되는 것이 부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출세 방법이었다. 따라서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서는 서당에서 글공부를 하는 것을 으뜸으로 여겼는데, 그들이 바로 강실도령 혹은 서재도령이었던 것이다.

신랑 신부가 첫날밤을 치를 방은 화려하게 치장하였다. 마음에 맞는 강실도령을 남편으로 맞아 백년가약을 맺는 곳이기에 그 어느 곳보다도 화려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청룡, 황룡을 그린 벽지, 천장지며 공단이불, 원앙금침에 잣베개와 요강, 대야, 화초나 인물을 그린 병풍 등은 우리나라의 신방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이불 겉을 청홍색으로 했다. 즉 바탕에 청색, 남색, 가지색, 쪽색, 홍색으로 붉게 하는 것이 관습으로 되어 있다. 청홍색은 양색 (陽色)으로 민속적으로 악귀를 쫓는 색상이다. 신부의 연지 곤지도 붉은색이며 경사스러울 때 짓는 팥밥도 붉다는데 착안하여 민속적으로 활용하였던 것이다.

첫날밤에 베는 베개를 구봉침(九鳳枕)이라 하였다. 봉을 아홉 마리 수놓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봉은 부부의(夫婦義)가 좋고 부귀다남(富貴多男)을 염원하는 데서 구봉침을 신부가 미리 만들어 두었다가 첫날밤에 신랑과 함께 베고 잤다고 한다.

혼인은 서로가 원하는 사람을 만나 결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옛날에 비하면 지금의 결혼관은 확연하게 바뀌었다. 간소하고 호화로운 결혼도 그렇지만 결혼을 해서 살다 마음에 맞지 않으면 갈라서는 게 현실이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다보니 ‘만남’이라는 거룩한 의식이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 들어서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어르신들조차 이혼 서류에 도장을 꽝꽝 찍고 있다니 아연할 뿐이다.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도 사람 됨됨이 보다는 학벌과 직업이 무엇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서로의 성격은 고려하지 않은 채 사회적 명망을 우선으로 친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이혼하는 비율이 높다는 것은 통계에서 드러나고 있다.

최근 들어 전통혼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통혼례는 신식혼례에 비해 절차가 번거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예스러움을 되살리고 우리 사회의 정체성을 되찾는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후세들에게도 좋은 선례를 남기게 되니 교육적인 효과도 크다 하겠다. 혼례를 앞두고 양가에서는 각자 조상의 위폐 앞에서 아버지가 축문으로써 예식을 고하고 자식들은 부모의 교훈을 받아 잘 살겠다는 서약을 한다. 혼례식은 전안례, 교배례, 합근례, 폐백 등의 순서로 진행되며 주로 신부집에서 이루어진다.

이 중 폐백은 전통혼례나 신식혼례에서 큰 차이가 없는 순서로써, 신부가 시댁에 와서 시부모를 비롯한 여러 시댁 어른들께 드리는 인사이다. 신부는 미리 친정에서 준비해온 대추, 밤, 술, 안주, 과일 등을 상 위에 올려놓고 시부모와 시댁의 어른들께 큰 절을 하고 술을 올린다. 이때 시조부모님이 생존해 계시면 시부모보다 먼저 절을 올리는 경우도 있고, 시부모가 혼주가 되어 시부모에게 먼저 절을 올리는 수도 있다. 며느리에게 절을 받은 시부모는 치마에 대추를 던져주며 부귀다남(富貴多男)하라고 당부한다. 이때 신부는 시부모와 시댁 식구들에게 줄 선물을 내놓는다.

이제 우리 결혼 문화도 신식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차별화된 예식을 통해 고유의 멋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특히 전통혼례는 외형에만 치우친 나머지 본질이 왜곡되고 있는 신식결혼에 비해 여러 장점이 있다. 검소하게 치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예식의 절차가 아기자기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독특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고답적이고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신식결혼에 비해 그 얼마나 멋스러운 풍경인가.

신식혼례가 전통혼례와 크게 다른 것은 식장(式場)과 복장이다. 신식혼례에서 신랑은 사모관대가 아니라 양복을 입고, 신부는 원삼 쪽두리가 아니라 면사포를 쓰고 드레스를 입는다. 이밖에도 의례의 절차에 있어서도 크게 달라졌다. 더구나 기독교, 불교 등 종교의식을 따르는 혼례도 점차 관심을 받고 있다.

한편, 외국의 결혼문화는 허례허식에 젖어 있는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약혼녀의 양친이 신문이나 약혼통지문을 통해 이를 알림으로써 약혼식을 대신한다. 양가의 상견례도 신부집으로 신랑 부모가 찾아가 티파티를 갖는 정도로 간소하게 치른다. 약혼반지는 가보(家寶)로 내려오거나 어머니가 끼던 것을 새롭게 디자인해 사용한다.

결혼식에 대한 결정은 주로 신부 쪽에서 하는데, 결혼식장은 신부측이 다니는 교회를 이용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결혼선물은 그릇, 가구, 전기제품 등을 준비하는데, 미국에서는 ‘bridal shower’라는 티파티를 열어 신부 친구들이 신혼살림에 사용할 물건을 모아 선물하고, 신부는 선물을 보내준 이들에게 편지를 보내 감사의 뜻을 전한다.

이제 우리 결혼 문화도 좀 더 성숙된 모습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사색의 가을,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 신부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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