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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둥지’처럼 절벽에 지어지는 집을 아십니까

<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이석원 기자lmaster@weeklyseoul.netl승인2017.10.10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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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I는 스웨덴어로 ‘Svenska För Invandrare’의 줄임말인데, ‘이민자를 위한 스웨덴어’라는 뜻이다. SFI의 교재에 등장하는 질문 예문이 있다. “Vad får man göra när man är 18 år?(사람들은 18세가 되면 무엇을 하나?)”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것은 많다. 부모의 허락 없이도 술을 마실 수 있고, 부모나 학교의 동의 없이도 결혼이나 동거를 할 수 있으며, 대학에 진학할 수도, 정식 직장에 취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질문에 가장 많은 답은 “부모에게서 독립해 집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부모에게서 독립해 집을 얻는 것”에 들어가는 조동사는 영어의 ‘can’에 해당하는 스웨덴어 ‘kan’이 아니라, 영어 ‘must’나 ‘have to’에 해당하는 ‘måste’나 ‘bör’다. 즉, ‘부모에게서 독립해 집을 얻을 수 있다’가 아니라 ‘부모에게서 독립해 집을 얻어야만 한다’가 답이 된다는 것이다.

 

▲ 네스틴박스의 내부 모습. 절벽 중간에 집을 짓는 만큼 집의 규모를 50㎡로 제한하고 있다. (사진=nestinbox 홈페이지)

 

지난 2015년과 2016년에 걸쳐 스웨덴은 15만 명이 넘는 시리아의 난민을 수용했다. 유럽연합(EU)이 난민 수용 의무할당제를 제시한 이후 독일에 이어 가장 많은 난민을 수용한 것이다. 이미 그전에도 이란과 이라크, 터키와 이집트, 리비아 등에서 상당히 많은 이민자와 난민이 유입됐던 스웨덴인지라 비공식 통계에 의하면 ‘유럽에서 자국민 대비 이민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로까지 꼽히고 있다.

물론 스웨덴 정부는 전체 인구의 10%를 훌쩍 넘긴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이면서 이들에게 무상으로 주택을 제공했다. 2010년 이전부터 급격하게 유입된 이민자들로 인해 주택 부족 현상이 현실화 되고 있던 상황에서 시리아 난민의 유입은 스웨덴 전국에 주택난과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채질했다.

이런 상황 속에 스웨덴 내 독특한 주택 문제 해결에 대한 발상이 제시됐다. 바로 ‘새둥지’라는 뜻의 ‘네스틴박스(Nestbox)’라는 신개념 주택이다.

목조 건축 전문가인 미카엘 실베르스톰과 건축가인 엘리사베타 가브리엘리, 폰투스 외흐만이 중심이 된 스톡홀름의 건축설계 컨설팅 집단인 ‘마노팍토리(Manofactory)’가 제시한 ‘네스틴박스’는 지상이 아닌 절벽 중간, 즉 수직지면에 짓는 집을 의미한다. 북유럽의 수많은 새들이 절벽 중간에 둥지를 짓고 사는 것에서 착안한 아이디어다.

 

▲ 스웨덴 스톡홀름에선 주택난을 해결할 방안으로 도심 절벽에 둥지 모양의 집을 짓는 아이디어가 소개되고 있다. (사진=nestinbox 홈페이지)

 

‘마노팍토리’는 “세계의 많은 대도시에서는 건설 가능한 토지가 부족하고 높은 가격을 요구하며 그래서 많은 주택이 부족하다”며 “우리는 집을 반드시 지상에 건설할 필요는 없으며 동물로부터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새를 포함하여 많은 동물들이 나무 위에, 기와 아래 또는 암석 틈에 둥지를 짓는다”고 ‘네스틴박스’ 발상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실제 스웨덴을 비롯한 스칸디나비아 반도 지역에는 수많은 절벽들이 있다.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은 지역뿐 아니라 스웨덴의 수도인 스톡홀름에도 곳곳에 크고 작은 절벽들을 만날 수 있다. 멜라렌 호수 위에 떠 있는 14개의 섬으로 이뤄진 스톡홀름은 도시를 가꾸는 지난 500년 동안 이 절벽들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고, 스톡홀름의 경관을 조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마노팍토리’는 이 절벽을 이용해 토지 사용료를 줄임으로써 저렴한 주택 공급을 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특이한 장소에 특이한 집을 짓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라, 비싼 토지를 사용하지 않은 저렴한 집을 짓는 것이 목적이다 보니 당연히 작은 집이 관건이다. 그래서 ‘마노팍토리’는 ‘네스틴박스’는 그 크기를 50㎡로 제한했고, 1인 가구 또는 젊은 2인의 커플이 살기에 적당한 정도의 규모로 만들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또 절벽 중간에 붙어있는 형태이다 보니 무게도 최소화해, 기본 골격은 철제로 해서 절벽에 견고하게 부착하되 그 외에는 목재를 이용해 전체적인 무게를 줄인다는 게 ‘마노팍토리’의 설명이다. 전체적인 단면 넓이를 줄이기 위해 3층으로 만들면서 스웨덴은 물론 유럽의 오래된 건축물들이 많이 사용하는 나선형 층계를 설치한다. 각 층을 주방 공간과 욕실 공간, 그리고 스튜디오형 침실로 만든 것도 1~2인이 사용하기 최적화한 것이라고 ‘마노팍토리’는 얘기하고 있다.

 

▲ 네스틴박스는 절벽의 측면에 부착된 형태로 절벽과 집 사이의 통로로 하중도 줄이면서 출입구 역할을 할 수 있게 했다. (사진=nestinbox 홈페이지)

 

이 ‘네스틴박스’에 대해 스웨덴의 일간지 ‘엑스프레센’은 최근 보도를 통해 “이것은 대단히 기술적이고, 시각적으로 훌륭하다”면서 “집을 지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버려진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실험적인 시도가 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봤다. 또 ‘네스틴박스’에 대해서 영국의 언론들도 “디자인이 뛰어난 스웨덴다운 발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스웨덴의 건축 전문가 일부는 이러한 시도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한다. 과연 실현 가능한 시도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스웨덴을 중심으로 핀란드와 덴마크 등지에서 건축 설계자로 활동하며 명망을 쌓고 있는 군나르 비요르크는 “시도가 신선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적으로 안전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다소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또 스웨덴과 핀란드에서 활동하는 독일의 건축가 게오르그 아브람스는 “북유럽의 매섭고 강한 바람을 견디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잘라서 평가절하 했다.

‘네스틴박스’는 아직 스톡홀름에서도 실제 건축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스톡홀름 시도 아직까지 이 건축물에 대한 허가를 해줘야 하는지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세계에서 전체 가구 대비 1인 가구 비중이 가장 큰 나라 중 하나인 스웨덴의 현실과 난민 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이민자들로 인해 절대적인 주택난을 겪는 스웨덴에서는 깊은 고민 속에 고민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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