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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 바다’ 자연농법 통해 ‘식량안보’ 해결”

<심층인터뷰> 윤구병 농부철학자 / 변산공동체마을학교 대표-1회 한성욱 선임기자lse3399@hanmail.netl승인2017.10.10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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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人性)보다 경쟁만 가르치는 현행 교육정책이 국가 백년대계를 어둡게 하고 있다. 학생들은 꿈을 잃어버렸다. 목표도 없이 떠도는 젊은 세대들은 실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암울한 현실과 맞닥뜨린다. 국가는 문제 해결은커녕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다.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퍼붓지만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대학을 나오고 석·박사 학위를 따도 미래는 암울하다. 교육이 무너지면 청년이 무너지고, 사회가 국가가 무너진다. 농업도 붕괴직전이다. 식량은 많은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안보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위기를 미리 예측한 혜안의 농부철학자가 있다.

 

▲ 윤구병 농부철학자 / 변산공동체마을학교 대표

 

주인공은 변산공동체마을학교를 세운 농부철학자 윤구병(尹九兵. 보리출판사 대표)이다. 9형제 중 막내인 윤 대표의 이름은 부친이 첫째를 ‘일병’, 둘째는 ‘이병’ 등 군대식 일련번호를 붙이는 바람에 ‘구병’이 됐다. 1950년 6.25전쟁 때 여섯 아들을 잃은 부친은 살아남은 세 아들을 농사꾼으로 만들려 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중퇴를 경험하고, 중고등학교 때도 가출과 퇴학을 반복한 불량학생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부친이 남긴 ‘여섬일루(餘纖一縷, 마지막 남은 실 한오라기)’라는 글귀를 보고 공부를 결심, 4개월 만에 서울대 철학과에 합격했다. 그는 1995년까지 충북대에서 철학과 교수로 일했다. 그리고 떠났다. ‘교직과 농사’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농사를 택했다. 이듬해인 1996년 전북 부안으로 부인과 귀농했다. 그리고 2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모든 열정을 공동체마을학교에 쏟았다.

윤 대표는 “정부가 유휴지를 매입해 귀농희망 젊은이에게 무상임대방식으로 농지를 주고, 식량자급을 위해 혁명적 농정을 통해 청년과 후손에게 농촌과 자연을 물려주고, 상생의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는 소출에서 10분의 1, 또는 9분의 1을 국세로 걷으면 된다. 지금 곡물자급률이 20%대다. 쌀을 빼면 5%고 밀가루 자급률은 0.01%에 불과한 실정이다.”

식량독립 없는 자주국방은 어림없는 소리라고 잘라 말하는 그. 그의 호는 ‘만허(萬虛)’다. ‘세상사 만 가지를 비운다’는 의미지만, 그에게는 만병이 가득했다. 당뇨, 갑상선 등으로 고생했지만 소식다작(적게 먹고 많이 씹는 식사법)을 하면서 치유에 성공했다. 변산에서 올라온 윤 대표를 파주에서 만났다. 그가 대표를 맡고 있는 보리출판사의 지하 1층 강당. 그의 책 ‘특별기고’ 출간을 기념해 ‘우리는 하나다’ 주제로 열린 강연회에는 휴일인데도 청중이 많았다. 윤 대표로부터 농업과 안보, 한반도의 평화, 청년실업과 귀농문제에 대한 고언을 들어봤다. 다음은 심층인터뷰 전문이다.

 

- 귀농해서 20년을 훌쩍 넘겼다. 변산에서의 농사일은 어땠는지 소회를 말해 달라.

▲ 1995년에 처음 벼농사를 지어봤는데 그게 마음대로 잘 안 됐다. 벼는 농부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고 하잖나. 귀농은 하고 싶었고 농사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상태에서 교수와 농사 중 어떤 길을 갈 것인지 고민이 컸다. 결국 15년간의 충북대 교수생활을 접고, 1년 후인 1996년 전북 부안군 변산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같이 들어간 아내의 관절이 몹시 안 좋았고 게다가 도시내기여서 몇 날을 엎드려만 있더니 자기는 도저히 농사지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선언하기도 했었다. 나중에 뜻을 같이하는 젊은이들이 하나둘씩 모여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엉망이었다. 나도 농사를 잘 모르고 젊은 식구들도 모르고 좌충우돌이었다. 그렇게 출발했는데 공동체에서 아이들을 길러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 놀리고 손발 놀리고 제 앞가림 할 수 있는 애들을 길러내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자급자족이고 식량주권이고 다 없어진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생각으로 지금까지 꾸려올 수 있었다.

 

-교육도 같이 하고 있지 않나. 농사와 병행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 젊은 사람들이 공동체에서 만나 서로 좋아해서 부부관계를 이루면 아이들이 태어나게 되고, 그 아이들을 아기둥지에서부터 유치원, 초등, 중등, 고등과정까지 가르치려면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 한다. 처음엔 그저 농사만 배우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이곳 이웃주민들이 그동안 우리가 농사일을 하는 걸 보고 하는 말이 ‘당신들 농사짓는 걸 보니까 너무 형편없다. 농사는 우리가 전문가다. 그러니 농사는 우리가 짓고 밥은 먹여줄 테니까 대신에 우리 아이들을 가르쳐 달라’는 식으로 자꾸 압력 아닌 압력을 가해왔다. 그래서 ‘무슨 소리냐, 우리가 변산공동체라 이름 붙인 것은 우리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처음부터 공동체를 만든 것이다. 지금 우리 앞가림도 못하고 살 길을 아직까지 못 찾고 있는데 당신네 아이들까지 어떻게 맡아 가르치나’ 하며 거절했다. 그랬는데도 이곳 어머니들이 아주 집요하더라. 자식들 교육에 대한 집념이 정말 대단하더라. 내가 쓴 ‘실험학교’라는 책을 읽고 나서 아예 우리 공동체로 이사 온 집도 있었다. 결국 5명의 아이들을 받아들였다. 그것이 공동체 학교교육의 시발점이 되었고 지금에 이른 것이다.

 

 

▲ 변산공동체 학교

 

-반응은.

▲ 단순한 ‘농사’(農事)가 아니라, 하나의 ‘농학’(農學)으로 학생들의 인성을 키우는 바탕공부가 되어야 한다. 중고등학교 과정까지는 우리가 가르친다. 중학생들은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배운다. 여기서는 핸드폰도 못쓰고 압수해서 보관을 한다. 처음엔 핸드폰이 없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가 한 2주일 정도 지나면 다 잊는다. 핸드폰을 갖고 있었다는 것조차 잊어버린다. 교육용 컴퓨터도 없고 식구들 가운데서 꼭 필요한 사람에 한해서만 쓰도록 하고 있다. 컴퓨터는 한대뿐이다. 텔레비전은 우리 식구들도 안 보고 아이들도 보지 않게 한다. 다만 교육용 영화 같은 경우는 관람을 하도록 하고 있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쉴 수 있는 시설이라든지 책을 보고 공부할 수 있는 도서시설 등이 있다. 이런 시설이 있는 변산공동체마을 자체가 바로 학교다. 따로 학교건물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마을 전체가 다 학교이고 일터이자 삶의 터다. 그렇기 때문에 별도로 건물을 따로 두지 않고 있다.

 

- 어떤 교육에 중점을 두는가.

▲ 우리는 교과서를 가지고 교육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역사시간엔 콩의 역사나 쌀의 역사, 옷의 역사, 집의 역사 등 주로 의식주와 관련된 교육을 한다. 학생들 반응도 좋고, 이런 방식을 아주 좋아한다. 고등학교 과정을 모두 마친 아이들이 대학에 가고 싶으면 기존학교의 교과서과목을 따로 공부해야한다. 1년 정도 스스로 독학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대학에 간 학생도 더러 있다. 그중 한 학생이 성공회대학 사회학과를 2년 정도 다녔는데 ‘아, 이거 별거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학생도 교수도 다 시큰둥하게 보였다고 했다. 어느 날 교수에게 “교수님, 똥 퍼본 적 있으세요?”하다가 다른 학생들한테도 “너희들 똥 퍼봤어?” 그랬단다. 그러다가 결국 2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미국에 갔다가, ‘워킹홀리데이’로 뉴질랜드, 호주에도 갔다가 다시 한국에 들어왔다. 그리고 같은 공동체학생이었던 여성을 만나 결혼했다. 아이들 낳고 잘살고 있다. 공동체를 떠나 밖에서 살다가 하나 둘씩 다시 공동체로 돌아오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2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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