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미술평론가 청연 박미현

주말 아침, 한적한 서울 한강변에 한 청년의 자전거가 달린다. 뿌연 황사에 먼발치로 보이는 고층 빌딩들이 안중에 없는 듯 무심하다. 수년째 공사가 지지부진한 월드컵 대교 한 교각에는 날아가던 새가 잠시 내려와 주위를 살핀다. 먼저 떠난 짝을 찾는 모양이다. 프레임 안에 들어온 출연자들은 미리 짜인 시나리오가 있는 것처럼 자세를 취해 준다. 작가 이호준은 이 한 컷을 위해 아까부터 왼쪽 오른쪽 한 발짝씩 수십 번 자리를 옮겼고 거친 호흡도 애써 숨죽인다. 빛이 적절치 않아 한 주를 기다려 다시 왔으리라. 숱하게 오고 또 왔던 길목인지라 우연을 가장한 긴 기다림이었을 테다. 조용하면서 힘이 넘치는 것이 마치 먹을 잘 사용하는 서예가의 묵화 같다.

세상은 예술가들에게 미술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작품을 요구한다. 사회 희망과 비전을 품거나 동시대 아픔을 공유해야 한다고 강요한다. 이도 저도 아니면 유행에 몸을 맡기거나 요란하게 치장해야 눈길이라도 끌 수 있다고 귀띔 해준다. 예술가라고 가만있지 않는다. 이름 좀 있는 갤러리에 내걸기 위해 미술계 인맥을 총동원하거나, ‘꺼리’가 된다면 출신학교라도 내세운다. 이런 세상과 예술가들의 연관성 속에 ‘서울을 걷다’ 전시회가 그래서 참 낯설고 신선하다. 액자도 없이 덕지덕지 벽에 붙여 놓은 사진들이 잊고 있던 우리 집 뒷골목 추억들을 허락도 없이 끄집어낸다.

결국 교체되고 잊혀질 운명인데도 고전 작품들이 두고두고 회자되는 것은 특정한 시기에 무엇에 가치를 두었는가 하는 점이다. 몇 해 전 핸드폰 카메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죄다 표현한 한 거장의 사진이 한동안 여운처럼 가시질 않았는데, 첫 번째 개인전이 믿기지 않을 만큼 완벽한 터치로 민낯을 선보인 이호준의 사진들이 또 한동안 그럴 것 같다. <사진전=10월 7일∼11월 5일. BENRO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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