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있는 삶? 저녁이 ‘너무’ 있는 삶!
저녁이 있는 삶? 저녁이 ‘너무’ 있는 삶!
  • 이석원 기자
  • 승인 2017.10.16 1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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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볼보 코리아에서 자동차 디자인 업무를 하다가 지난 5월 스웨덴 예테보리의 볼보 본사로 파견 근무를 나온 강효석(32. 가명) 씨는 스웨덴 근무를 시작한지 두 달 반 만인 7월 말에 4주간의 여름휴가를 여자 친구와 함께 태국 파타야와 서울로 다녀왔다. 그런데 9월 말 여자 친구가 많이 아팠다. 여자 친구는 독일 사람인데, 스웨덴에는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여자 친구는 효석 씨에게 며칠 휴가를 내서 자신을 돌봐 달라고 했다. 효석 씨는 알았다고는 했지만 회사에 뭐라고 얘기를 할지 몰라 난감했다. 5월 중순에 본사로 와서 두 달 반 만에 한 달의 휴가를 다녀왔는데 또 휴가를 내야하는 상황이었다.

회사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감해 하고 있는데 중국인 동료가 왜 그러는지 물었다. 사연을 얘기하니 이 중국인 동료는 “매니저와 의논해보라”고 얘기했고,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매니저에게 사연을 얘기했다. 그런데 매니저의 단 한 마디 “그렇게 해. 네 휴가 쓰는 문제를 나한테 얘기할 필요 없어. 네 휴가는 네 거잖아.”

 

▲ 오후 3시면 퇴근하는 스웨덴의 일반적인 직장인들은 가정에 충실하다. 아이를 돌보고 가족이 함께 산책하는 일은 그들이 살아가는 이유 중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스웨덴의 대부분의 기업들은 연간 유급 휴가로 6주를 사용한다. 그 휴가는 시기에 구애받지도 않고, 기간에 구애받지도 않는다. 휴가를 상사와 보고하거나 의논하지도 않는다. 허락을 받는다는 것은 대단히 모욕적인 일이다. 자신의 휴가는 자신이 관리하고 자신의 근무 일지에 체크만 하면 된다. 그 체크된 것을 회사 인사 담당자는 관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비단 휴가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근무 시간과 근무 형태를 스스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스웨덴의 세계적인 의류 회사인 H&M 인터넷 마케팅 담당을 하는 안나 에릭손은 집에서 근무하는 날이 많다. 물론 그녀가 집에서 근무할지 회사에서 근무할지는 본인이 결정한다. 자신의 매니저에게 보고하는 일은 없다. 그저 회사 근무 관리 시스템에 자신의 근무 시간과 장소를 기입하기만 하면 된다.

스톡홀름 북쪽 70km 떨어진 곳에 있는 대학 도시 웁살라의 한 인터넷 게임 회사에 근무하는 한국인 정의형 씨는 보통 오후 3시면 퇴근을 한다. 아내를 대신해 유치원에 간 딸을 데려오는 일은 그의 몫이다. 스웨덴 사람인 아내는 인근 농장에서 농작물의 품종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데, 정의형 씨보다 퇴근이 늦어서 5시에 집에 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둘째를 임신한 정의형 씨의 아내는 12월까지만 일을 하고 육아 휴직에 들어간다. 그러면 정의형 씨는 내년 3월까지는 오후 5시까지 근무를 하고 곧 바로 아내와 함께 육아 휴직을 쓸 예정이다. 이런 상황을 결정하는데 회사의 매니저나 사장에게 보고할 필요는 없다. 스스로 결정해서 통보하면 된다.

이런 상황들만 보면 스웨덴은 직장인들에게 천국이다. 여름휴가를 내기 위해 부장님이나 과장님의 눈치를 보며 적어도 한 달 이전에 미리 휴가 계획을 하지 않으면 곤란을 겪는 보통의 한국 직장인들이라면 어안이 벙벙할 일이다. 게다가 자신의 근무 시간이나 근무 장소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건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오후 3시에 퇴근? 이건 경천동지할 일이다. 하지만 부러워할 일만은 아니다.

스웨덴의 직장인들은 노동 강도가 상당히 세다. 그리고 업무의 집중력이 상상을 초월한다. 보통 아침 8시에 출근해 일을 시작하면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는 자신의 자리를 떠나는 일이 거의 없다. 볼보 본사에 근무하는 강효석 씨는 화장실조차 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점심시간이라고 해서 동료들과 회사 밖으로 삼삼오오 나가 맛있는 점심을 사 먹는 일도 거의 없다. 아예 집에서 샌드위치나 샐러드를 싸오거나 아니면 회사 근처에서 패스트푸드 등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와 업무를 하면서 점심을 때운다.

물론 스웨덴 사람들이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피카(Fika)’라는 것이 있다. 커피를 마시는 것을 의미하는 스웨덴어다. 일주일에 3~4번 시간을 정해놓고 동료들끼리 모여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떤다. 이 시간은 자신들의 업무 효율을 높이고 더 강력한 동기를 유발시키는 도구다. 그 이외에 업무에 관한 것이 아닌데 다른 사람과 노닥거리거나 다른 일을 하는 것은 회사가 금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지 않는다.

 

▲ 저녁 시간과 주말이 풍부한 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운동 중 하나인 인네 반디. 실내 하키와 비슷한데, 저녁이나 주말에 일찍 일을 마친 부모들을 아이들이 충분한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만든다.

 

세계적인 통신 회사 에릭슨에 근무하는 토마스 구스타프손은 한국 지사에서 1년간 근무한 적이 있다. 그는 당시 회사 분위기에 기겁을 했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 건지, 사람들과 친목을 도모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출근하자마자 자판기 커피를 뽑아 회사 옥상에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를 핀다. 회의실에서 30분 회의를 하고 20분을 사담을 나눈다. 점심시간에 회사 밖으로 나가는데 1시간 30분이 돼서야 들어오고, 들어와서는 또 자판기 커피를 빼서 회사 옥상에서 담배를 핀다. 오후 네다섯 시가 되면 다시 커피를 빼들고 회사 옥상에 모여 저녁에 어디서 소주를 마실까, 당구를 칠까를 가지고 열띤 토론을 한다.

토마스는 자신의 매니저에게 “일을 하러 회사에 오는 건지, 밥을 먹고 담배를 피려고 회사에 오는 건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렸다. 자신과 같은 스웨덴 사람인 매니저는 그에게 “나도 처음에는 너무 이상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이게 편해지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일과 사생활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일하다가 저녁 7시는 돼야 퇴근을 하는 것에 토마스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원래 2년을 예정했던 한국 근무를 1년 만에 끝내고 스웨덴으로 돌아왔다. 그는 다른 것들은 다 참을 수 있었는데 저녁 6시나 7시까지 회사에 붙잡혀 있어야 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앞서 스웨덴에는 오후 3시에 퇴근하는 기업들이 상당히 많다고 했다. 오후 3시는 아니더라도 대체로 5시 이전에는 퇴근한다. 은행의 문도 오후 3시에 닫히고, 스톡홀름 지하철은 오후 4시에 퇴근 러시아워를 이룬다. 그렇게 일찍 퇴근한 사람들은 가정으로 돌아가거나 운동을 하거나 또는 다른 보트 타기나 음악 밴드 등 취미 생활을 즐기면서 ‘저녁이 있는 삶’을 산다. 그들에게 저녁은 그저 시간의 개념이 아니다. 자신들이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한 가장 기본적인 이유다. 최대한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하거나 또는 자기 개발을 위한 무언가에 투자하는 것. 자신들이 행복하다고 느끼기 위한 것이다.

한국에서 몇 년 째 ‘저녁이 있는 삶’이 정치권의 화두다. 손학규 전 의원이 꺼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 후로도 매 선거 때마다 비슷하게 응용된 말들이 공약으로 난무하고 있다. 그 탓에 ‘저녁이 있는 삶’은 한국의 모든 직장인들에게 로망이 되고 있다. 언젠가는 반드시 이뤄지기를 바라는 소망인 것이다. 그런데 스웨덴에서 직장을 다니는 한국의 남자들은 오히려 하소연한다. 스웨덴은 ‘저녁이 있는 삶’이 아니라 ‘저녁이 ’너무‘ 많이 있는 삶’이라고.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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