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아픔은 너무 크고 지나쳤다
그의 아픔은 너무 크고 지나쳤다
  • 강진수 기자
  • 승인 2017.10.17 15: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강진수의 ‘서울, 이상을 읽다'-3회

 

이상에게 혼자란 무엇이었을까. 애초에 혼자가 되어버린 느낌이나 혼자가 되어버릴 것이라는 두려움은 전부 이상에게 무엇으로 다가왔을까. 그의 시에서는 외로움의 정서가 짙게 풍겨올 때가 있다. 우리가 단순히 누군가를 그리워하거나 떠올리며 겪는 향수를 넘어서서, 시인 이상의 외로움은 고독 그 자체다. 음침하고 사방이 막혀있으며 아무도 드나들 수 없는 곳에서 이상은 외로움을 겪어나간다.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가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 내게 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 ‘거울’, 이상.

 

▲ 시인 이상

거울은 그런 이상이 외로움의 공간에서 드나들 수 있는 매체였다.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보고 자신이지만서도 자신이 아닌 것만 같은 남을 보고 그것이 거울 속의 나이며 나는 거울 바깥에 있다는 것을 깨우치면서 결국 더 깊은 외로움의 반열에 드는 것이다. 이 외로움은 정신분열적 증상을 보이는데 꼭 한 사람의 인격이 둘로 갈라지고 서로 다른 사람처럼 대하며 서로의 존재에 있어 섭섭함을 느끼니, 시인 이상의 정신 질환적 망상이 심해졌다고도 할 수 있다. 실제의 이상 또한 많은 망상 속에 살아가던 인물이었으니.

또 하나 짚어가야 할 점은 이상이 거울을 통해 대사하듯 내뱉는 시구 하나 하나가 현대의 신경정신적 결핍과 많이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외로움이 타인에 의한 것이 결코 아니다. 나 자신, 나의 내재된 마음, 더 나아가서 나의 텅 빈 무의식으로부터 그 외로움은 폭발한다. 그래서 더 정신병적이고 위태로운 상태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거울 속의 본질인 나는 위태롭고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에 휩싸여져 있는, 환자의 상태라고 볼 수 있다.

 

1
나는거울없는실내에있다. 거울속의나는역시외출중이다. 나는지금거울속의나를무서워하며떨고있다. 거울속의나는어디가서나를어떻게하려는음모를하는중일까.

2
죄를품고식은침상에서잤다. 확실한내꿈에나는결석하였고의족을담은군용장화가내꿈의백치를더럽혀놓았다.

3
나는거울있는실내로몰래들어간다. 나를거울에서해방하려고. 그러나거울속의나는침울한얼굴로동시에꼭들어온다. 거울속의나는내게미안한뜻을전한다. 내가그때문에영어되어있드키그도나때문에영어되어떨고있다.

4
내가결석한나의꿈. 내위조가등장하지않는내거울. 무능이라도좋은나의고독의갈망자다. 나는드디어거울속의나에게자살을권유하기로결심하였다. 나는그에게시야도없는들창을가리키었다. 그들창은자살만을위한들창이다. 그러나내가자살하지아니하면그가자살할수없음을그는내게가르친다. 거울속의나는불사조에가깝다.

5
내왼편가슴심장의위치를방탄금속으로엄폐하고나는거울속의내왼편가슴을겨누어권총을발사하였다. 탄환은그의왼편가슴을관통하였으나그의심장은바른편에있다.

6
모형심장에서붉은잉크가엎질러졌다. 내가지각한내꿈에서나는극형을받았다. 내꿈을지배하는자는내가아니다. 악수할수조차없는두사람을봉쇄한거대한죄가있다.

- ‘시 제15호’, 이상

 

반면에 같은 거울을 다루고 있는 시이더라도 위 시에서의 폭발은 앞의 시와 무척 다르다. 감정적 폭발의 세기나 크기 자체가 다르다. 그 원인은 대체 무엇인지 앞의 시나 위의 시나 둘 다 알 수 없다. 무의식 저편에 깔려있는 이름모를 원인으로부터 튀어나오는 감정이 이번엔 거칠고 뜨겁다. 막연한 두려움과 위태로움이라는 환자의 상태로부터 시인 이상이 끌어내는 감정은 사뭇 강인하면서도 날카롭다.

그는 불사조가 되어 서 있다. 거울 앞에서 불사조가 되어버린 이상. 모든 것은 시인 이상의 손끝에 달려있다. 그것을 알면서도 알지 못한 척하는 이상 본인은 치졸하고 어리석은 인간인가. 정말 시인 이상은 덜덜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불사조가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했을까. 차라리 뚜렷한 원인이라도 있었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엔 이상, 그의 아픔은 너무 컸고 지나쳤다. <대학생>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 뉴텍미디어 그룹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다 07108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 인터넷 : 서울, 아 52650 (등록일·발행일 : 2019-10-14)
  • 발행인 겸 편집인 : 김영필
  • 편집국장 : 선초롱
  • 발행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목로 72(신정동)
  •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전무이사 : 황석용
  • 고문변호사 : 윤서용(법무법인 이안 대표변호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 위클리서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weeklyseoul.net
저작권안심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