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레이블이 만들어지는 이유? 그냥 놀다가…”
“인디레이블이 만들어지는 이유? 그냥 놀다가…”
  • 김혜영 기자
  • 승인 2017.10.19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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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씨티알사운드 레이블’ 대표 황현우-1회

길었던 추석연휴가 끝나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취업은 언제 하니?’, ‘연애는 왜 안하니?’ 같은 잔소리 경험담을 늘어놓기 바쁘다. 필자는 정말 힘들었겠다며 맞장구를 쳐주었지만, 사실 한 번도 그런 류의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잠자코 있었다. 친척을 포함한 온 가족이 공부하라는 흔한 잔소리는커녕 듣기 싫을 법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FM같이 재미없는 인생을 사냐고, 대체 공부를 왜 하냐고 물을 뿐.

사실 가족 구성원 중에는 영상감독 출신인 아버지를 필두로 이상하게 예술을 하는 인물이 많다. 영상, 글, 음악, 미술 등 그 분야도 다양한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오랜 세월동안 인디 음악을 하고 있는 사촌이다. 우리 집안은 교회 성가대도 힘겨울 정도로 노래를 못하는 사람들인데, 음악 유전자를 혼자 독차지했는지 인디 음악계에서는 꽤나 유명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기사를 쓰고 싶다는 좋은 핑계로 인터뷰를 부탁했다. 오랜 시간 음악을 해온 이야기가 정말 궁금했다. 인터뷰는 3회에 걸쳐 게재된다.

 

▲ ‘씨티알사운드 레이블’ 대표 황현우

 

일요일 저녁, 연희동에 위치한 스튜디오 로그를 찾았다. 귀여운 새가 그려진 포스터로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은은한 촛불이 만든 길 너머에 나무 향이 나는 아름다운 공간이 있었다. 복층 구조로 된 스튜디오. 꼭 예쁘기로 유명한 카페 같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 사이로 기타와 마이크를 잡은 이들이 있었다. 무대와 관객석이 분리되지 않은 느낌.

이내 나지막이 울리는 편안한 목소리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노래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에 관해 이야기해준 뒤에 어떤 신호도 없이 노래를 불러주었는데, 이야기와 노래가 하나처럼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웃다가도 슬픈 노래에 금방 젖어들었고, 노래하는 이의 다양한 감정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었다. 이아립의 ‘1984’라는 노래에 ‘적당히 할 것은 너의 세치 혀인데’, ‘우리가 뱉어버린 말의 악취가 여기 이곳에 진동하네’라는 가사가 있는데, 요즈음 사람의 목소리가 거슬렸던 기억이 나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노랫말이었다. 이 공연에서는 정말 오랜만에 사람이 내는 목소리를 편안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마음으로 음악을 듣다보니 공연은 금방 막을 내렸다. 보통 공연이 끝나면 사람들은 빨리 일어나서 귀가하기 바쁜데, 이번엔 음악의 여운을 즐기며 공연장을 서성이는 이들이 많았다. 그 틈에서 아티스트와 이야기하는 사촌을 발견했는데, 참 낯설었다. 다정함보다는 츤데레(?)에 가까운 사촌이 이런 따뜻한 공연을 만들어나가는 사람이라는 것이.

“황현우고, 36살이고, 남자야.”

짤막한 자기소개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보통 어떠한 형식을 정하지 않고 자기소개를 부탁하면 그 사람의 성격이나 특성이 잘 드러나는데, 귀차니즘으로 유명한 사람답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소개였다.

“‘씨티알사운드’ 레이블 대표, 음악 프로듀서, 그리고 베이시스트. 최고은,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퀘보스타, 연남동덤앤더머 이런 데서 베이스를 쳐.”

보다 자세하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제야 답변이 줄줄이 나왔다. 먼저 ‘씨티알사운드’는 ‘씨티알’이라는 문화지형연구소에 속한 레이블이다. 필자가 직접 상수역에 있는 건물을 방문해보았는데, 1층에는 ‘제비다방’이라는 음악카페, 2층에는 ‘씨티알사운드’, 3층은 ‘씨티알프린트’라는 잡지사, 옆에는 ‘씨티알폼’이라는 건축 사무소가 위치하고 있었다. ‘씨티알’을 필두로 여러 사람들이 모였고, 그는 그중 음악 레이블의 대표를 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문화기획, 공연, 앨범 제작을 하고, ‘원피스’라는 잡지를 함께 만든다고 한다.

“인디 레이블들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그냥 놀다가’야. 레이블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연합인데, 시스템 상 대표자가 있어야 해서 대표도 하게 된 것뿐이고. 사람들의 의견 취합, 결정 그 정도 역할을 해.”

문화지형연구소라는 거대 담론을 뒤로 하고, 그저 놀다가 만들어졌다는 답변이 사뭇 당황스러웠다. 괜히 인디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명감이나 사회의식으로 그룹을 만들고 활동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좋고, 그들과 어울리다 공연이나 레이블이 만들어진다니. 웃으면서 하는 이야기에서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나도 그래서 학생회를 하고 동아리를 하고 친구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런 이유는 항상 어디에서든지 인정받지 못하니까.

“내 일상은 녹음, 공연, 믹스 마스터링, 앨범 제작, 아티스트 관리…그리고 위닝(게임)이랑 축구. 난 정해진 시간이 없이 살아. 피곤하면 자고 깨면 일어나고. 랜덤 라이프스타일이다 보니까 밥 먹고 자는 시간 빼고 다 계속 일을 하고 있어. 근데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니까 괜찮아. 그냥 멍 때리면서 녹음 고민하는 것도 일하는 거잖아. 오더를 받는 것이 아니니까 계획을 짜고 전달하고 확인하고 그런 것들이 다 그냥 일이야. 난 허브의 역할도 많이 하거든.”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 것이야말로 노동이 추구해야하는 길이 아닐까. 사실 진정한 ‘노동’을 바라는 사람은 적을지도 모른다. 요즘 ‘돈 많은 백수가 되고 싶다’라는 담론이 청년 세대에서 인기인데, 그들은 일과 삶이 아닌, 일과 돈을 분리하고 싶어 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활동이 돈을 벌어야하는 노동이 되는 순간 그 가치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필자도 어렸을 때부터 음악이나 미술 등을 좋아했는데, 누군가 그 길을 권유하면 항상 거절하기 바빴다. 좋아하는 활동을 노동이 아닌 취미로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음악인의 삶이 참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좋아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고, 실행하는 삶이지 않은가.

하지만 대한민국 음악 시장에서 인디음악을 고집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다음 호에 문화지형연구소에서 일하는, 인디 음악을 해온 이 음악인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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