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록 여행스케치> 고구려의 역사 깃든 아차산 둘레길 걷기

산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서울과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 있는 아차산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멀리 떠나기 부담스러운 수도권 시민들에게 아주 좋은 산행지다. 서울의 역사와 자연을 찾아가는 서울 둘레길의 한 코스로 아차산과 용마산을 잇는 짧지만 풍광 아름다운 길이다. 서울 둘레길은 16개의 산과 하천을 따라 서울을 한 바퀴 순회하는 길로 아차산-용마산 코스는 맨 나중에 개발됐다. 화랑대역을 출발해 망우산, 용마산, 아차산을 거쳐 광나루역에 이르는 구간으로 총 길이는 12.6Km이다. 서울 둘레길은 모두 8개 코스로 나뉘는데 험하지 않아 동네 마실 나가듯이 쉬엄쉬엄 걸어갔다 되돌아오면 된다. 8개 코스(총 157㎞) 모두 시작점과 종점이 지하철역과 연결돼 있다는 것도 매력이다.

 

▲ 아차산은 전망이 빼어나다.

☞한강이 바라보이는 전망 좋은 산

서울 광진구 광장동에서 구리 쪽으로 자동차로 5분 정도만 달리면 왼쪽으로 우람한 산이 하나 보인다. 바로 한강이 한눈에 보이는 해발 285미터의 아차산이다. 빼어난 입지를 자랑하는 이 산은 예로부터 군사 주둔지로 중요한 구실을 했다. 삼국시대, 한강유역 지배권을 놓고 고구려 백제 신라가 치열하게 맞부딪혔던 역사의 현장이었다. 이런 사실을 입증하듯 산 곳곳에는 군사유적지가 남아 있다.

 

▲ 구리시내에 있는 광개토대왕비

 

아차산은 서울 광진구와 경기 구리 시민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우리 민족사에 큰 족적을 남겼던 고구려의 자취가 진하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구리시내 한복판엔 광개토대왕 동상과 비석 모형도 세워놓았다. 고구려의 국력을 동아시아 일대에 크게 떨친 광개토대왕 동상은 높이가 4.05m, 너비가 2.7m인 청동입상으로 머리에는 관모를 쓰고 오른손에는 태양을 상징하는 세발까마귀(삼족오)가 새겨진 알을 들고 있다. 높이 6.39m 너비 2m에 달하는 광개토대왕비엔 힘찬 필체의 44행 1,775자의 문자가 음각돼 있으며 동양 최대 크기를 자랑한다.

아차산은 한나절이면 산행이 가능하다. 매연과 소음에 시달리는 수도권 시민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사실 아차산의 기(氣)를 받고 사는 마을 사람들은 이 산 덕택에 큰 복을 누리고 있다고 말한다. 공기 좋고 물 맑고 조용해서 살기 딱 좋다는 것이다.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종합병원인 셈이다.

 

 

▲ 유물이 많이 출토된 아차산성

☞예사롭지 않은 아차산의 역사

한강변의 워커힐호텔에서 구리시로 넘어가는 검문소 주변 우미내 마을의 주차장(약 1백대 수용)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주차장 한쪽에는 아차산에서 발견된 고구려 시대의 보루 모형과 토기, 철기 같은 유물들을 전시한 고구려대장간마을이 있다. 여기서 산길을 따라 10분쯤 오르면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애틋한 사랑이 어린 온달샘(약수터)이 나온다. 가까이에 온달이 가지고 놀았다는 공깃돌 바위가 있다. 온달샘에서 조금 더 오르면 아차산성과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나온다. 아차산성(사적 제234호)은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 남쪽에 있는 풍납토성과 함께 백제의 운명을 좌우했던 중요한 군사시설이다.

 

▲ 아차산 입구에 들어선 고구려대장간마을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를 정벌할 때(475년) 백제 개로왕을 사로잡은 곳으로, 이곳에서 10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기도 했다. 이 산성은 멀리서 보면 작은 언덕 정도로만 보이지만 길이 1㎞에 높이도 10m에 이른다. 백제의 도읍이 한강유역이었을 때 우뚝 솟은 이 아차산 능선에 돌과 흙으로 산성을 축조함으로써 고구려의 남하를 막으려는 백제인의 노력이 있었다. 아차산성의 또 다른 이름, 즉 아단성(阿旦城), 아차성(峨嵯城), 장한성(長漢城), 광장성(廣壯城) 등과 능선을 따라 들어선 크고 작은 고분들은 그 당시 백제 신라 고구려가 한강을 중심으로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는 것을 짐작케 해주고 있다.

 

▲ 아차산 전망대
▲ 아차산 자락에 들어선 대성암

 

아차산성을 보고 정상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서울 강 남북은 물론 한강 줄기와 중랑천, 왕숙천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는 팔각정(전망대)이 서 있다. 팔각정 밑 너른 암반은 산행의 피로를 달랠 수 있는 휴식처로 먹이를 구하러 날아온 비둘기떼가 장관을 펼친다. 팔각정을 뒤 해돋이 광장 옆으로 산길이 뚫려 있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는 15분쯤 걸린다.

팔각정에서 능선 아래쪽 길을 더듬어 조금 내려오면 대성암이 있다. 원래 이름은 범굴사였다. 대웅전 뒤편에는 암벽을 다듬어 만든 암각문이 있는데, 여기에는 당시 절의 재산목록과 시주한 사람들의 명단, 논 밭 단위가 그대로 적혀 있어 이 암자의 역사를 헤아려보게 해준다. 대성암 동쪽 바위산 화강암 위에 서 있는 삼층석탑은 백제 양식을 띤 고려 시대 석탑이다. 의상대사가 수련을 했다고 전하는 천연 암굴도 가까이에 있다.

 

▲ 잠시 쉬어가기 좋은 아차산 고구려정(팔각정)
▲ 아차산 곳곳에는 보루의 흔적이 남아 있다.
▲ 아차산 5보루

 

아차산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능선 일대에 남아 있는 보루로, 고구려가 475년 한성백제를 멸망시킨 후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면서 남한 지역을 공략하기 위해 쌓은 군사시설이다. 1990년대부터 아차산 일원에서 20여 개의 고구려 보루가 발견되었고 이 중 17개가 사적으로 지정됐다. 보루 탐방은 큰바위얼굴 전망대, 대성암, 아차산 2보루, 3보루, 4보루를 거쳐 다시 원위치로 되돌아오는데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 3아차산 보루 옆으로 난 등산길

☞아차산과 이어진 용마산

아차산 건너편으로 보이는 용마산은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속해 있다. 산 능선이 망우리 공원, 중곡동을 거쳐 어린이대공원 후문까지 이어져 있어 종주가 가능하다. 갖가지 수목들과 산허리를 따라 늘어선 암벽이 예사롭지 않다. 곳곳에 만들어 놓은 체육시설이 있어 산행과 운동을 겸해 산을 오르는 사람이 많다. 이 산에서 바라보는 일출 또한 근사해 일부러 새벽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낮보다 더 많을 정도다. 깔딱고개에 올라서면 조망이 시원하다. 북한산∼도봉산∼수락산∼불암산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잡히고, 서울 시내가 아늑하게 펼쳐진다.

 

▲ 아차산길을 걷고 있는 등산객들
▲ 아차산 능선에서 본 용마산 봉우리
▲ 아차산 해맞이광장

 

아차산을 지나 용마산까지의 등산로는 대부분 경사가 완만하고 순탄한 편이므로 가족 산행이나 야간산행에도 안성맞춤. 해가 질 무렵 간단한 음료와 먹을거리를 배낭에 챙겨 넣고 랜턴 들고 산을 오르기 시작, 해맞이 광장이나 제1, 제2 헬기장에 도착해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면 금상첨화다.

 

 

▲ 걷기 좋은 동구릉 나무숲길

☞한국 근현대사를 빛나게 한 인물들

한편, 서울 둘레길의 한 구간인 망우리 공원에는 소파 방정환을 비롯해 한국 근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 많이 잠들어 있다. 이른바 ‘사색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위창 오세창, 만해 한용운, 소설가 계용묵, 설산 장덕수, 화가 이중섭, 작곡가 채동선, 순조의 맏딸 명온공주, 가수 차중락, 야구선수 이영민, 시인 박인환, 의사 지석영 등 다양한 모습의 묘들을 만나게 된다. 묘소 앞에는 친절하게 망자의 일대기를 엿볼 수 있는 연보비가 서 있다.

 

▲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은 소파 묘소(망우리공원)
▲ 망우리공원에 잠든 만해 한용운 선생 묘소

 

독립지사이자 스님으로 시인으로 살다간 만해 한용운 묘소로 가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만해의 묘 옆에는 또 다른 묘가 있다. ‘만해한용운선생묘 부인유씨재우(夫人兪氏在右)’라고 쓰여 있는 걸로 보아 만해의 오른쪽이 부인의 묘다. 조선총독에게 “대처승을 허해 달라”고 ‘건백서’를 보냈던 만해는 혼자 살다 쉰다섯 살 때 신도의 소개로 유숙원과 결혼했다고 한다.

망우공원은 서울미래유산으로도 선정됐다. 한국 내셔널 트러스트에서는 시민이 선정한 ‘꼭 지켜야할 자연문화유산 6곳’ 중 하나로 지정하기도 했다. 무섭고 으스스했던 곳이 우리 근현대 역사문화의 산실로 거듭 태어난 것이다. 망우공원 길은 산책로 구실을 톡톡히 한다.

 

▲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김씨가 잠든 원릉(동구릉)
▲ 조선제5대왕 문종과 현덕왕후의 무덤인 현릉(동구릉)

 

시간 여유가 있다면 9개의 능이 모셔진 동구릉(사적 제193호)을 찾아가 보자. 우미내마을에서 구리시내 방면 46번 국도를 타고 교문사거리를 지나면 바로 나온다. 역사의 부침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동구릉은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의 건원릉을 비롯해 현릉, 목릉, 휘릉, 숭릉, 혜릉, 원릉, 유릉, 경릉을 일컫는다. 묘역 주변은 온통 나무들로 둘러싸여 아늑한 느낌을 준다. 능과 능을 이어주는 오솔길은 개울물 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걷기에 참 좋다. 태조 이성계가 잠든 건원릉은 조선왕조 중 유일하게 봉분이 억새풀로 덮여 있다. 동구릉관리소: (031)563-2909

<여행작가/ 수필가>

 

여행수첩

가는 길=중부고속도로 구리 나들목-교문사거리-워커힐 방면-아치울마을-우미내마을(산행 기점). 지하철5호선 광나루역 1번 출구(도보로 15분소요)나 지하철5호선 아차산역 2번 출구로 나온다. 용마산은 지하철 7호선 중곡역 또는 용마산역에서 하차한 후 뻥튀기골 또는 용마폭포공원으로 들어서거나 사가정역에서 하차한 후 면목3동 한신아파트 뒤편의 등산로를 통해 오를 수 있다. 동구릉은 중부고속도로 구리 나들목에서 북쪽 인창동 방면으로 빠져나가거나 서울시내에서 망우리 고개-교문사거리-퇴계원 방향으로 진입해도 된다.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이나 2호선 강변역에서 동구릉행 버스 이용. 광개토대왕 동상은 구리 교문동 구리경찰서 맞은편에 있다.

맛집=워커힐과 동구릉 주변에 맛집이 몰려있다. 묘향손만두(02-444-3515), 옹기꽃게장(031-555-0551), 골목안채(031-569-2665)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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