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일, 죽음과 파괴 위에 인류애 꽃이 핀다
12월 10일, 죽음과 파괴 위에 인류애 꽃이 핀다
  • 이석원 기자
  • 승인 2017.10.23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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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매년 10월은 이른바 노벨상의 달이다. 지난 2일 노벨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9일 경제학상까지 6개 부문의 2017년 노벨상의 주인공들이 모두 확정됐다.

가장 먼저 지난 2일 노벨 생리의학상은 생체시계의 비밀을 풀어낸 제프리 C. 홀 메인대 교수, 마이클 로스배시 브랜다이스대 교수, 마이클 영 록펠러대 교수 등 미국의 과학자들이 받았다. 3일 노벨 물리학상은 아인슈타인의 ‘중력파’를 확인한 라이너 바이스 MIT 명예교수와 배리 배리시 캘리포니아공과대학 교수, 킵 손 명예교수 등 3명의 미국 학자들에게 주어졌다.

 

▲ 매년 12월 10일 노벨상 수상자들의 축하 파티가 열리는 스톡홀름 시청사. 연회장인 1층 블루홀은 노벨이 사망한 이탈리아 산레모에서 공수해온 수천송이의 꽃으로 장식이 된다.

 

그리고 4일 노벨 화학상은 '저온전자 현미경 관찰법'을 개발한 영국의 리처드 핸더슨 케임브리지대 MRC 분자생물학 연구소장과 독일 출신 미국인 요하킴 프랑크 컬럼비아대 교수, 스위스의 자크 뒤보셰 스위스 로잔대 명예교수가 공동 수상했다.

지난 해 팝 가수 밥 딜런의 수상으로 시끄러웠던 노벨 문학상은 5일 일본 출신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에게 주어졌고, 6일 발표된 노벨 평화상은 핵무기 없는 세상을 지향하는 NGO 연합체인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이 받았다. 그리고 9일 노벨 경제학상이 독일 출신 미국인인 리처드 세일러 시카고대 교수에게 주어지면서 모든 주인공들이 모두 가려진 것이다.

인류 과학 문명의 발달과 문학, 그리고 인류 평화에 대한 가장 고귀한 업적에 대한 평가로 일컬어지는 노벨상. 그러나 그 노벨상의 탄생에는 가족의 비극과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 숨어 있다. 노벨상의 제정자인 스웨덴의 발명가 알프레드 노벨의 가족과 개인사에 얽힌 이야기다.

 

▲ 스톡홀름 감라스탄 대광장에 있는 노벨 박물관. 이곳에는 노벨상과 관련한 모든 기록들이 전시돼 있다. 그리고 이 건물 2층은 노벨 문학상을 발표하는 스웨덴 아카데미.

 

알프레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 갑부가 된 것으로 익히 알려졌다. 그러나 노벨은 1867년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기 전에 강력한 폭발력을 지난 물질인 니트로글리세린을 금속 용기에 넣은 폭파용 뇌관을 먼저 만들어서 돈방석에 앉았다. 하지만 1864년 비극이 발생한다. 노벨은 금속용기에 넣지 않은 불안정한 니트로글리세린을 이용해 터널 굴착 작업을 하다가 폭발 사고가 났다. 그 사고로 현장에 있던 5명이 사망했는데, 그 중에는 노벨의 막내 동생도 있었다. 그 충격으로 노벨의 아버지인 임미누엘 노벨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사망했다. 집안이 풍비박산 날 지경이었고, 노벨은 그 책임의 한가운데 있었다.

이를 계기로 좀 더 안전한 폭파용 뇌관을 만든 게 금속 용기에 넣은 니트로글리세린이었다. 그리고 3년 후 노벨은 더 안전한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어 영국과 미국에서 특허를 내 당시 유럽 최고의 부자 반열에 올랐다. 뒤를 이어 다이너마이트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젤리그나이트를 발명해 그는 더욱 부를 축적했다.

▲ 알프레드 베르나르드 노벨

그런데 1888년 노벨이 프랑스에 있을 때 느닷없이 ‘죽음의 상인이 죽었다’는 제목의 부고 기사가 났다. 그 신문은 노벨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나 젤리그나이트에 대해 “더 빠르게, 더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물건”이라고 표현했고, 노벨은 그 물건들의 발명자로 죽음의 상인이라고 불렸던 것이다. 또 이 기사를 읽은 사람들 중 노벨을 추모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잘 죽었다는 반응이 비등했다.

기사는 오보였다. 알프레드 노벨이 아닌 형 루드비히 노벨이 프랑스 칸에서 사망한 것이다. 하지만 노벨은 이 기사와 이 기사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충격을 받았다. 인류의 기술 발전을 위해 발명했다고 생각한 다이너마이트에 대해 사람들은 죽음의 물건이라고 치부했다. 결혼을 하지 않아서 가족도 없었던 노벨은 자신의 거대한 저택에서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실의에 빠졌다. 삶 자체가 완벽하게 부인되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몇 년간 우울증을 앓다가 1895년 유언장을 수정한다. 자신이 죽은 후 재산의 94%를 가지고 재단을 만들어 인류의 과학 발전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 노벨상 수상자들에게 수여되는 노벨의 얼굴이 새겨진 메달. 노벨 박물관 카페에 가면 이 메달로 포장이 된 초콜릿을 판매한다.

노벨 재단이 운영하는 기금으로 수여되는 노벨상은 상의 공정성을 위해 서로 다른 기관들이 심사를 한다. 노벨 생리의학상은 스웨덴 최고의 의학 연구기관인 카롤린스카 의학 연구소가, 물리학상과 화학상은 스웨덴 왕립 과학아카데미가 심사를 한다. 그리고 문학상은 스웨덴 한림원을 비롯해 프랑스와 스페인의 아카데미가 심사를 하고, 평화상은 노르웨이 국회에서 선출한 5명이 위원인 노벨 위원회가 심사를 한다. 경제학상은 1901년 노벨상이 처음 제정됐을 당시에는 없었던 것을 1968년 스웨덴의 국립 중앙은행인 릭스방크(Riksbank)가 기금을 내놓고, 스웨덴 왕립 과학아카데미가 수상자를 심사한다.

노벨상 시상식 후 축하 파티가 열리는 스톡홀름 시청사는 멜라렌 호수 위에 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청 건물이다. 노벨이 사망한 12월 10일 열리는 성대한 축하 파티는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는다. 연회장인 스톡홀름 시청사 1층 블루홀은 지중해 니스와 접한 이탈리아 산레모, 노벨이 사망한 곳에서 직송해온 싱싱한 꽃 수천송이로 장식이 된다. 그렇게 지난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노벨은 더 이상 ‘죽음의 상인’이 아닌 것이다.

동생의 죽음, 그에 충격을 받은 아버지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노벨을 엄청난 부자로 만들어줬지만, 그 부의 뒤를 따르고 있던 사람들의 환멸과 미움을 형의 죽음으로 알게 된 노벨. 파괴와 죽음의 부산물로 얻어진 엄청난 재산이 아름답게 쓰여서 그나마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올해도 12월 10일 밤 멜라렌 호숫가 스톡홀름 시청에는 불이 밝을 것이다.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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