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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딛고 다시 생명의 바다로

<가톨릭뉴스지금여기> 장영식의 포토에세이 가톨릭뉴스지금여기 장영식lmaster@weeklyseoul.netl승인2017.10.27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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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정부청사에서 공론화위원회의 발표가 있던 날, 밀양 어르신들과 시민단체 회원들 그리고 노동자들이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08배를 올렸습니다. 밀양 765kV 송전탑의 뿌리는 핵발전소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밀양을 관통하고 있는 765kV 초고압 송전선로는 지금 현재 20여 퍼센트만 흐르고 있지만, 신고리 핵발전소 4호기와 5, 6호기가 완공되면 100퍼센트의 초고압 송전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 행정대집행을 앞둔 밀양 농성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밀양 어르신들의 손을 잡고 위로하며 행정대집행을 최대한 연기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또한 대선 기간에는 신고리 핵발전소 5, 6호기 건설 백지화를 선언하기도 하였습니다.

 

▲ 밀양 주민들은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광화문과 청와대 그리고 서울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과 108배를 올리면서 공론화위원회가 신고리 핵발전소 5, 6호기의 공사 중단을 발표하기만을 염원했다. ⓒ장영식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백지화 공약을 백지화하였습니다. 정부가 해야 할 책무를 공론화위원회에 떠넘긴 채 관망하였습니다. 공론화위원회는 90일간 활동하였지만, 실제로 신고리 핵발전소 5, 6호기 공사 중단 여부를 결정할 시민참여단의 활동 기간은 너무나 짧았습니다. 그 기간 동안에도 핵산업계와 언론은 가짜 뉴스를 남발하였지만, 공론화위원회는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습니다. 공사 재개 여부와 상관없이 집단이주와 보상 문제가 선결되었어야 할 서생면 주민들의 문제도 방관했습니다. 새로운 핵발전소가 건설되어야 지긋지긋한 핵발전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주민들을 공사재개의 한 축으로 만든 상황은 불공정할 뿐만 아니라 정의롭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 공론화위원회의 최종 발표 소식을 듣던 위양 마을 동래 할매가 땅을 치며 울부짖고 있다. ⓒ장영식

 

처음에는 시민참여단 중에서 70퍼센트가 넘는 사람들이 신고리 핵발전소 5, 6호기 건설 현장 지역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으며, 최종적으로도 30퍼센트 가까운 사람들이 몰랐다는 후일담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40년 동안 핵발전소를 안고 살아야 했던 주민들과 그 핵발전소 때문에 일방적 희생을 강요받은 송전선로 경과지역 주민들에 대한 그 어떤 배려도 없었습니다. 시민참여단이 단 한 번의 2박3일간 다섯 차례의 분임 토론으로 결정한 내용을 숙의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였습니다.

 

▲ 서울정부청사 앞은 눈물의 바다가 되었고, 분노의 바다가 되었다. ⓒ장영식

 

공론화위원회의 발표에 대해 밀양시 부북면 위양마을 정임출(동래댁, 76) 어르신은 “우리가 대통령을 너무 믿었다. 너무 믿었기 때문이 실망이 컸다. 이렇게 되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108배를 하자마자 발표 결과를 듣는 순간 찻길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나를 죽이고, 원전을 세워라’는 이런 울분이 터졌다. 그런데, 우리는 끝나지 않았다. 새로 일어나서 또 다시 힘을 모아서 다 같이 새로 하자. 누가 이기는가, 끈질기게 해 보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밀양은 지독한 슬픔을 딛고, 나와 나의 아이들, 나의 아이들의 아이들을 위해 모성의 영성으로 다시 일어나 생명의 바다로 걸어갈 것이다. ⓒ장영식

 

밀양은 언제나 일어났습니다. 절망의 벼랑 끝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밀양은 지독한 슬픔을 딛고, 모성의 영성으로 다시 일어나 생명의 바다로 걸어갈 것입니다. 탈핵의 바다로 걸어갈 것입니다. 나와 나의 아이들과 나의 아이들의 아이들을 위해서 걸어갈 것입니다.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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