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 붙어있는 숫자 50, 50솔이 아니고 50달러라고?
택시에 붙어있는 숫자 50, 50솔이 아니고 50달러라고?
  • 강진수 기자
  • 승인 2017.10.27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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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남미여행기-두번째 이야기 / 강진수

남미를 다녀온 지 네 달이 넘었다. 신기하게도 남미 여행을 한 기억은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새록새록 남는 것 같다.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각 나라의 각 도시들, 마을들이 선명하게 기억으로 남는다. 아직도 가끔씩은 내가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고, 그곳을 걸어 다니고, 그곳을 헤매며 수많은 별들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그 별들처럼 설레는 이야기들을 풀어본다.

 

3.

비행기를 열 몇 시간씩, 그것도 미국을 경유해가면서 도착한 첫 도시 페루의 리마는 무척이나 더웠다. 우리는 아직 달러로 바꿔놓은 돈을 환전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예약한 호스텔을 어떻게 찾아가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공항 앞에는 수많은 택시 기사들이 호객을 하고 있었다. 이때는 아직 낯선 택시나 사람들로부터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에 가뜩이나 조심스러운 상황이었다. 안전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값이 만만치 않았고, 우리 같은 가난한 대학생 여행객은 또 나름의 오기를 부리기도 하곤 했다. 어떻게든 흥정에서 유리하게 잘 해나가리라. 그러나 그만큼 멍청한 생각이 또 어디 있었을까.

공항 앞 담배 피우는 박스에 멀뚱멀뚱 서있던 우리는 한 중년의 기사님에게 사로잡혔다. 그는 우리의 목적지가 어디냐고 물었고 대답을 하자 얼른 가격판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택시가 매우 안전한 택시이고 싸게 태워주겠다고 호객을 했다. 우리는 그러려니 듣고 있다가 결국 그의 말재간에 솔깃하게 되었다. 50이라고 적혀있는 가격표를 보고 나쁘지 않은 금액이라고 생각하면서 그의 택시에 어느새 올라타고 있었다. 그리고 나름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이만하면 잘 흥정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택시에 붙은 가격표가 다시 보였다. 50솔(페루의 화폐단위는 솔이다)이 아니라 50달러라는 것이다.

 

 

달리고 있는 택시 안에서 말도 안 통하는 택시 기사님을 옆에 두고 나와 형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우리 자신을 탓했다. 대체 무엇을 보고 택시를 탔단 말인가. 50달러면 평균 택시비의 몇 배나 더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와서 기사님에게 몇 번이나 어필해봤지만 짧은 스페인어 실력으로는 도통 말이 통하지가 않았다. 우리는 꼼짝없이 50달러를 주고 택시를 타게 생긴 것이었다. 중도에 이카로 가는 버스터미널도 안내해주겠다고, 안전택시라 정말 저렴한 거라고 기사님은 계속 말씀하셨지만 그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행의 시작에서부터 이토록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지르다니. 물론 말로는 우리끼리 기왕 잘 된 것이다, 비싸게 준만큼 여유 있게 택시를 타자고 했지만 머리는 여전히 공황상태였다.

이카로 가는 터미널도 기사 아저씨가 추천해주는 곳으로 가서 표를 끊었다. 다행히 표가 너무 비싸다던가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터미널만큼은 양심적으로 가 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하면서 우리는 호스텔 앞에서 짐을 내렸다. 호스텔은 구시가지 한복판에 있어 우리는 다시 긴장을 해야 했다. 리마의 구시가지는 다양한 범죄의 소굴로 불리기 때문이다. 자칫 방심하면 소매치기나 강도를 당할 수도 있는 곳이므로 조심해야 한다는 마음의 고삐가 바짝 당겨져 있었다.

 

 

호스텔 안으로 들어가서는 이제야 안심이 돼서 체크인을 하고 샤워부터 했다. 그리고 루프탑에 올라가 잠시 휴식을 취했다. 물론 할 일이 태산 같다. 구시가지 안쪽으로 들어가 환전소 거리를 찾아야만 했고, 또 환전소도 외국인 상대로 사기 사건을 많이 일으키므로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호스텔만큼은 우리의 안전지대이기에 리마에 도착했다는 여유를 한껏 즐길 수 있었다. 루프탑은 평안하고 리마의 햇살은 따뜻했다. 다른 외국인 투숙객들도 루프탑을 자주 올라오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영어로 말을 붙여보곤 했다. 스웨덴에서 온 한 여행자는 온몸에 문신이 그려져 있고 우락부락한 모습이어서 처음엔 조금 거리감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흥이 많은 친구였다. 에어컨 수리공을 하면서 휴가를 5개월씩 내고 이곳에서 지내고 있다는데, 그런 얘기만 듣더라도 참 멋있게 보였다.

환전소 거리에서 환전을 하고 호스텔 근처 조그만 식당에서 세비체라는 페루 원주민들의 음식을 간단하게 먹었다. 여행 처음부터 50달러가 날아가 심적 부담이 큰 우리로서는 좀 값싼 음식을 먹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낮에 신청해놓은 워킹투어를 하기로 했다. 걸어서 구시가지 곳곳을 다니는 것인데 우리 마음대로 구시가지를 걸어 다니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겠다 싶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멤버 리스트엔 아까 인사를 나눈 스웨덴 친구도 있었고 영국 친구 둘에 또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 둘 정도가 호스텔 홀에 모였다. 호스텔을 출발로 하여 산 마르코 광장, 시장, 다양한 곳을 구경했다. 형은 몸이 피로하다던데 나는 전혀 피로감 없이 돌아다녔다. 이곳의 별천지가 모두 아름답고 신기할 뿐이었다. 이곳은 내게 전혀 다른 풍경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얼마나 내 주변에 머물러 있었는가.

 

4.

그리고 호스텔로 돌아와서는 호스텔 내부 식당에서 간단한 맥주와 파스타를 먹었다. 값싼 것치고는 나쁘지 않은 금액이었다. 그리고 형은 피곤하다며 샤워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고, 나는 맥주를 큰 것으로 두 병 정도 더 마셨다. 혼자 마시니 적적할 즈음 프랑스에서 온 형제 둘이서 내게 말을 걸었다. 그들은 내가 앉아있던 테라스에 기꺼이 앉아 술동무가 되어 주었다. 밤이 어두워지고, 시가지는 고요해지는 시각이었다.

술을 마시고 당구를 치던 모든 사람들이 들어가 잠을 청하던 시각, 나는 시차 적응 때문인지 도저히 잠을 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새벽에 몰래 방을 빠져나와 저녁에 술을 마시던 테라스에 앉았다. 앉아서 보랏빛으로 물든 하늘을 보았다. 곧 맑은 청색으로 물들고, 해가 뜰 것이다. 해가 뜨면 붉은 빛이 시가지를 비추겠지. 아직 가로등이 비추고 있는 하늘을 바라보다보니 내가 새로 밟게 된 이 땅이 너무나도 신기했다. 땅과 하늘, 모든 것이 새롭게만 보이는 나의 시선에는 수많은 별빛이 들어왔다. 내일이면 바삐 이카로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잠이 도저히 오지 않는다. 나는 무엇에 이토록 들떠 있을까.

 

 

고양이 한 마리가 몰래 내가 있는 테라스 문을 연다. 들어오려는 듯이 굴더니 문 앞에 조용히 앉아 나를 바라본다. 그래서 나는 고양이와 함께 리마의 하늘을 구경했다. 고양이는 바닥에 드러눕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내 손길에 닿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리마의 새벽에 잠을 들 수가 없었다. 고양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바람도 적적하고 모든 거리가 고요한 새벽녘, 우리는 뭔가 생각하고 떠올려야 할 것만 같은 직감을 받았다. 이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두려움. 나는 늘 그런 것에 사로잡혀 있곤 했는데 여행하는 동안 형에게 매번 꾸짖음을 듣던 나의 습성이기도 하다. 하여간 고양이뿐만 아니라, 내 발소리에 잠이 깬 형도 슬그머니 테라스로 들어와 앉고, 우리는 한참 새벽하늘을 보았다. 동이 터오는 모습까지도.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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