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강물은 찰랑거리고 모래는 반짝이고 은어가 떼지어 올라오던..."
"맑은 강물은 찰랑거리고 모래는 반짝이고 은어가 떼지어 올라오던..."
  • 전라도닷컴 남인희·남신희 기자
  • 승인 2017.11.02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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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닷컴> 강변에 사람꽃-섬진강 마실
▲ 임실 덕치면 천담리 구담마을 상공에서 바라본 섬진강 줄기. 드론촬영·최성욱 다큐감독

“전에 시상은 참 깨깟했어.”

천담마을 김모순(74) 할매가 말하는 그 세상에서 강물은 푸른 물이 들게 맑았고 사람의 마음은 정갈하였다.

“그때는 쓰고남을 만치 원허들 안했어. 시방은 원하는 것이 많애서 모다 가난혀.”

맑은 물 한 줄기 같은 청정한 말씀을 문득문득 만나게 되는 강 언저리의 마을들.첫 번째 ‘섬진강마실’에서 발태죽 남긴 마을은 순창의 입석 도왕 강경 회룡 마을과 임실의 구담 천담 마을이다.

<섬진강물이 어디 몇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김용택, ‘섬진강 1’중) 한 시인의 말처럼, 섬진강에 기대어 깐닥깐닥 살아나온 사람들의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을 인정의 말씀들을 정안수 길어올리듯 길어올려볼 참이다.

 

물고기가 시글시글
버들잎은어 올라오던 강마을

위턱은 희고 아래턱은 풀색이다. 문지르면 그냥 풀물이 들것 같은 은어들이 이 강물 위를 거슬러 올라오고 내려가던 시절이 있었다.

구담마을(임실 덕치면 천담리) 박주상(84) 할아버지는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가버린 그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 물안개 가득 피어오르는 새벽 섬진강에서 만난 명상자.

 

처서 무렵이면 은어는 ‘쏘바꿈’을

“전에는 한 30호 살았어. 동네도 시글시글 강도 바글바글 했는디 지금은 애들도 없고 물고기도 통 없어.”

마을이 변하고 강도 변했다.

“옛날 같으문 이것은 강도 아녀. 전에는 강이 컸어. 비가 조끔만 와도 저어그 원두막 지어논 디까지 물이 올라왔어. 물갓도 깨끗허고 모래가 반짝반짝 깔리고 자갈도 많고 참 좋았어. 자래도 참 많앴어. 자갈밭을 느릿느릿 기어가도 어른들이 못 잡게 했어. 용왕님 아들이라고.”

용왕님 아들을 자주 만나던 물갓 풍경이 변한 것은 오로지 사람의 탓이다.

“박정희대통령 생긴 뒤로 옥정댐 밑에다가 크게 막아불었어. 거그 고인 물이 원청 많으니까 그전매니로 물이 안져. 모든 것들이 그 전매니로 살 수가 없어.”

섬진강의 명물 은어는 시방 구담마을까지 올라오지 않는다.

“옛날에는 버들잎은어라고 버들잎싹만헌 것이, 손구락매니로 째깐헌 것들이 떼를 지어서 올라와.”

처서 무렵이면 은어는 ‘쏘(소)바꿈’을 한다.

“저 쏘에서 큰 놈이 요 쏘로 들어와. 여그서 큰 놈이 또 저리 들어가. 그렇기 차츰 지 방을 바꽈감서 커.”

백로가 될 무렵이면 은어는 완전히 커져서 물이 지면 물따라 일제히 내려간다.

“지그 어매맹이로 클 만치 커갖고 내리가. 고등어만썩 해. 폴뚝만썩 해갖고 알 배서 니래가. 민물허고 갯물(바닷물)허고 합헌 디 저어그 하동 거그쯤에 가서 알 나놓고 죽어. 그 알이 옹알옹알 까나 갖고 새 봄이면 지그 어매 고향으로 오는 것이여.”

날이 가물어 물이 얕으면 은어는 내려가지 못하고 갇혀서 죽는다.

“가을이문 넘들 다 가는디 못 내리가고 낙오된 놈들이 잡으문 딱 오므라져갖고 잽혀. 알이 꽉꽉 들었어. 알 나러 가다 못 간 것을 잡어갖고 묵은 거여.”

할배는 테레비를 봐도 은어 이야기만 나오면 귀가 번쩍 뜨인다.

“인자 은어가 여까지 못와. 강에다 뭣을 자꼬 볼르고 놔싼게 강물이 높단허니 맥혀서 은어가 차고 못올라와.”

맑은 강물은 찰랑거리고 모래은 반짝이고 은어가 떼지어 올라오던 그 봄날이 그리운 할배.

“전에는 은어가 동네까지 올라왔어. 동네 한가운데로 또랑이 있었어. 지금은 다 미와(메워)불었어. 참게가 또랑 타고 줄줄이 올라온게 집앞에서 주서 먹었어.”

 

 

두 마리는 입에 물고 두 마리는 양 손에 들고

천담마을(임실 덕치면 천담리) 박주식(60)씨도 은어잡이의 추억을 생생하게 꺼낸다.

“우리 어렸을 때는 은어가 어마어마하게 많았어요. 근디 은어를 잡으려면 성질을 터득해야 해요. 은어가 엄청 날쌔요. 깊은 물에서 떼로 새카마니 막 내려오문 워낙 빠르니까 못따라가요. 20미터 정도 간격으로 사람이 한 명씩 물밖에가 서서 중간 중간에서 몰고 또 몰고 허다 보문 성질이 급해갖고 팍 뒤집어져불어요. 그러면 그때 은어를 주서요.”

재빠른 은어를 쫓을 수 있던 체력은 천담마을 강가 자갈밭에서 공을 차면서 단련이 된 것이었다.

저녁에는 싹 닳아빠진 모지랑빗자루를 갖고 강으로 나갔다.

“물가에로 고기들이 잠자러 나오거든요. 그러문 한번 훑어 갖고 손으로 이렇게 잡으문 금방 한 대야 돼불어요. 오만 고기가 다 있었죠. 장어 잉어 쏘가리 빠가사리 꺽저구 눈치 쉬리 피리 모자고기…. 민물고기는 다 있어요. 모자고기는 입이 뙈뙈하니 모자같이 생갰어요. 똥그래갖고 아조 이뻐요.”

쪽대 같은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여런이서 비료푸대 한나를 갖고 나가요. 비료푸대도 귀했어요. 그 놈을 바람을 너갖고 딱 묶어갖고 위에서 한 사람이 붙잡고 있어요. 여러 명이 잠수로 쑤욱 들어가요. 물은 워낙 깊고 잡을 데는 없고 그러니까 팬티 속에다 몇 마리 넣고 입에다 두 마리 물고 양 손에다 들고 발로 바닥을 딱 굴르고 쭉 올라와요. 그러문 팬티 속에치는 빠져불죠. 쉬었다가 또 들어가고 또 들어가고.”

그렇게 잡은 물고기는 회로 많이 먹었다.

“꼬치장 한 바가치 퍼다가 그때는 빙초산 넣고 초고추장 만들어서 그 자리서 배 갈라갖고 막 썰어서 찍어먹는 거죠. 그것이 애들 군것질이었어요.”

어른들은 은어에 소금을 살짝 뿌려놨다가 말렸다.

“배 아플 때 거그에 쌀 넣고 죽을 쑤문 금방 가라앉는다고 단방약으로 많이 먹었어요.”

대나무로 발을 엮어서 물을 막아놓으면 참게 같은 것이 가득 들었었다.

박주상 할아버지의 섬진강 이야기는 모두 과거형이다. 흔전만전한 고기지만 어디 가서 팔 생각은 못했다.

“대나무 잎싹 같은 디다 싸갖고 가문 덜 상헌게 고런 디다싸갖고 가서 선물이나 허고 그랬어. 고기 팔아서 사는 양반은 어부라고 했어. 동당선이라고 소나무로 판자 얍씰허니 썰어갖고 째깐허게 배를 만들아서 고놈 타고 간짓대로 짚음서 강 따라 가서 팔고.”

강 따라 흘러가고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을 호명하는 섬진강 강마을 사람들의 추억이 새삼 아깝고 애틋하였다.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최성욱 다큐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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