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여백

그의 죽음은 날개조차 팔랑거릴 힘없는 나비의 최후와 같다!

<연재>강진수의 ‘서울, 이상을 읽다'-4회 강진수 기자lrkdwlstn96@naver.coml승인2017.11.02 15:26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수많은 노래들이 시인 이상을 이야기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것을 돌이켜보는 노래는 죽음이라는 노래다. 이상은 죽음으로부터 무엇을 바라봤을까. 어떤 쾌락, 또는 어떤 절망, 그것도 아니라면 어떤 죽을 만큼의 고통? 죽음을 관망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다른 누군가의, 또는 자신의 손가락만도 못한 미물의 죽음. 미물의 죽음도 애도할 만한 죽음이다. 우리는 이상의 시선에서 또 다른 죽음을 본다.
 

찢어진벽지에죽어가는나비를본다. 그것은유계에낙역되는비밀한통화구다. 어느날거울가운데의수염에죽어가는나비를본다. 날개축처어진나비는입김에어리는가난한이슬을먹는다. 통화구를손바닥으로꼭막으면서내가죽으면앉았다일어서드키나비도날라가리라. 이런말이결코밖으로새어나가지는않게한다.

- ‘시 제10호’, 이상
 

벽지가 찢어진 것도 모자라 그곳에 죽어가는 나비. 무언가 아름답고 화려해야할 것만 같은 나비의 죽음은 어느 누구에게도 달갑지 않은 모습이다. 그러나 그런 나비가 하나가 아닌 것 같다. 거울 앞에서 또 죽어가는 나비를 본다. 이상은 나비를 통해서 무슨 죽음을 보았던 것일까. 그 죽음은 어떤 죽음이었으며 무엇을 거울에 비추고 있었을까. 죽어가는 나비의 날개는 축 처져있다. 나비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입김에 어리는 가난한 이슬을 먹는다.

나비는 자신 본연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이상은 아무래도 거울을 보면서 죽어가는 나비가 자신의 모습과도 같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그는 스스로가 어두운 사람이었기에 전혀 알 수 없는 말들에 나비의 죽음을 가둬놓은 것이다. 나비의 죽음, 그 이유를 결코 알 수 없도록, 그리고 다시는 그 누구도 나비의 죽음을 일컬을 수 없도록. 이런 말이 결코 밖으로 새어나가지는 않게 한다는 것 또한 그렇다. 이것은 비밀스러운 죽음이다. 그 어떤 죽음보다 비밀스럽고 더 조심스러워야 하는 하나의 의식과도 같다. 화려함을 죽인다는 것은 그렇다. 모든 것을 차가운 회색빛으로, 하나의 매끈한 거울 안에 가둬버리는 것이 바로 나비의 죽음이다.

바깥을 봄으로써 이상은 누군가의 죽음을 인지한다. 그것은 이상 자신의 죽음이 아니었다. 그러나 곧 본인의 죽음이 될 것임을 이상은 직감한다. 그의 시는 직감으로 쓰인 시이며 그렇기에 어떤 모든 것보다도 차갑고 냉정하다. 이상의 시를 한 편 더 들여다보자. 다른 누군가를 들여다보는 동공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죽음이란 무엇일까.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면서도 그는 과연 그토록 냉정한 정신을 유지할 수가 있을까.
 

내팔이면도칼을든채로끊어져떨어졌다. 자세히보면무엇에몹시위협당하는것처럼새파랗다. 이렇게하여잃어버린내두개팔을나는촉대세움으로내방안에장식하여놓았다. 팔은죽어서도오히려나에게겁을내이는것만같다. 나는이런얇다란예의를화초분보다도사랑스레여긴다.

- ‘시 제13호’, 이상
 

▲ 시인 이상

끊어진 팔목과 면도칼은 이상의 죽음을 상징한다. 이상은 꽤 자주, 꽤 오래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던 것 같다. 그의 팔은 끊어져 떨어지고 자세히 보면 무엇에 몹시 위협 당하는 것처럼 새파랗다. 그러나 그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결코 위협이 아니다. 누군가 자신을 위협했으면 하는 바람일 수도 있다. 차라리 위협 받고 싶었던 것일 테다. 그래서 팔은 이미 수없이 많은 피를 흘린 것처럼 새파랗다. 새파랗게 쏠린 피가 뜨겁게 흐르고 있다.

그러고도 그는 냉정하다. 철저히 그 자신의 죽음을 외면한다. 자신의 잃어버린 두 개의 팔을 방 안에 장식하여 놓았다고 한다. 그 잔인한 것을, 그 두렵고 쳐다보기도 싫은 것을 장식 삼아 두었다는 것은 무슨 심보일까. 그는 오히려 자신의 죽음을 전시해두고 싶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그가 숨을 멈추고 나면 그의 죽음을 멀리멀리 떠벌려달라고 부탁하는 유언장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의 기괴스러운 장례식은 다음 문장을 통해 그를 다시 가련한 인간으로 만들고 있다. 팔은 죽어서도 오히려 자신에게 겁을 내게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의 차가운 시선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만다. 그도 인간이다. 그는 시를 쓰는 지금 분명 겁을 내고 있다. 어떤 죽음도 두렵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은 어떤 기괴스러운 인간이라도 마찬가지다. 쪽방에서 시를 쓰며 자신의 차가운 죽음을 꿈꾸며 동시에 두려움에 떠는 인간. 인간이라서 겁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아마 이상 자신도 그렇게 스스로 속삭이며 위안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실제로도 겁이 많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화초분을 바라보면서 이상의 시선은 약간 따스해지는 느낌이다. 다시 창가에는 빛이 들고 바람이 살랑거리며 쪽방에는 빛에 부딪치는 먼지들이 아즈라이 흩어지는 모습이 상상된다. 그리고 그곳엔 화초분이 있다. 이상이 사랑스레 여기는 화초분이. 그리고 예의를 차리는 듯, 매너가 아주 좋은 듯, 익살스런 웃음을 띠며 누군가를 맞는 모더니스트 이상의 모습. 다른 누군가의 시선에는 늘 그가 그렇게 비춰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철저한 미치광이인 것을. 아니 미치광이라는 표현이 과했다면, 그는 철저한 환자였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그를 이해할 수 없고 거울 속의 나비처럼 가둬놓는다.

나비의 죽음만큼 화려하지도 않은 그의 죽음이다. 그의 죽음은 쇠락해가는 모든 것을 상징한다. 모든 것은 찢어진 벽지처럼 초라해지고 그곳에서 숨을 죽여가는, 날개조차 팔랑거릴 힘이 없는 나비의 최후와 같다. 적어도 이상의 세계에서는 그렇다. 그토록 퇴폐적이고 병적인 외침만이 메아리처럼 시 속에 담겨있다. 고요하게 날아간 시들은 다시 어딘가에서 부딪혀 돌아온다. 죽지 말라고. 죽지 말아달라고. 그것은 차라리 살아달라는 부탁이기도 하다. 이상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결코 죽으려 하지 않았고, 늘 죽음을 두려워했다. 그는 겁쟁이였다. 지금에서 보는 이상은 겁쟁이이길 다행이지만. <대학생>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주)뉴텍미디어그룹  |  등록번호 : 서울다07108  |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발행인 겸 편집인 : 정서룡  |  발행소 : 서울시 종로구 난계로 29길 27(숭인동) 동광 B/D 2층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Copyright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  master@weeklyseou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