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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긋지긋한 싸움 빨리 끝냈으면…”

<현장> 또 한분의 나비 날아가시다 정다은 기자lpanda157@naver.coml승인2017.11.03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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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반. 두꺼운 코트로 온몸을 꽁꽁 동여매고 전철역으로 향했다. 부랴부랴 달려간 곳은 안국역.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현장을 다시 방문했다.

매주 수요일 정오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진행한다. 1992년부터 시작된 시위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이 주최하고 여성, 종교, 노동 단체 등과 학교 동아리 등이 돌아가며 주관한다. 역사, 인권, 평화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외치는 연대의 공간이다. 8월 14일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과 매년 마지막 수요시위는 세계연대집회 등 특별 수요시위로 진행한다.꽤 쌀쌀한 날씨에도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은 시작을 알리는 흥겨운 노래에 맞춰 박수를 치며 자유롭게 집회를 즐기고 있었다.

 

 

저번과 달리 이번엔 상당히 많은 학생들이 자리를 메꿨다. 초‧중‧고등학생 할 것 없이 다 모였다. 제법 진지한 얼굴로 공동대표의 발언을 듣는다. 뭐하는 집회인지 알고 온 것일까, 그들이 듣고 실감나기엔 너무 먼 이야기일 텐데 말이다. 저마다 직접 만든 피켓을 꼬옥 들고 있다. 다들 꽤 집중하는 모습이다.

마침 이 날은 생존해계시는 할머니 서른다섯 분 중 또 한분이 운명하신 날이었다. 윤미향 정신대대책위원회 공동대표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슬픈 소식으로 시작을 해야 할 것 같다”며 “그렇게 또 한분의 나비가 날아갔다”고 고개를 떨구었다.

“할머니가 바라던 세상, 가해자가 반성하는 이치, 인권이 회복될 수 있는 평범한 세상을 우리가 함께 만들어드리겠다고 약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리를 빈틈 없이 채우고 있는 학생들의 표정이 참으로 진지하다. 서명을 하는 종이를 돌려가며 이름을 적는다. 그들 사이 소녀상은 외롭지 않았다. 누군가 춥지 말라고 덮어준 담요, 목도리도 그렇지만 이렇게 어린 학생들이 함께여서 더 그랬다. 이를 지켜보던 한 중년여성은 그들의 모습에 감동의 눈물이 날 뻔 했다고 했다.

김복동 할머니가 마이크를 잡았다.

“각 기관, 각 단체, 학생들에게 감사드린다”는 할머니는 “나라가 힘이 없어 부득이하게 우린 당했지만,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 후세대 아이들이 다신 이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늘 돌아가신 할머니의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부르겠습니다.” 희망의 노래가 이어졌다. 학생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는 간절한 염원들이 담겼다. ‘우리 모두 기억 하겠습니다’ ‘아직도 미루는 사과 뒤처진 양심?’ ‘사람의 목숨을 돈으로 바꿀 순 없다’ ‘소녀들의 청춘을 돌려주세요’ ‘아이들도 하는 사과 일본은 왜! 안 하냐’ ‘진실을 향한 기다림’ ‘일본은 잘못을 인정하라’ 등. 자신들이 태어나기도 한참 전의 옛 이야기이지만 갈수록 힘이 없어지시는 할머니들을 대변하기 위해 나선 모습이 가슴을 울렸다.

이번에도 몇몇 일본인들이 참석했다. 지나가던 외국인들이 걸음을 멈추고 현장을 지켜보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날 집회에는 4‧16사회해외연대, 도봉초등학교, 장곡중학교, 희망나비, 제주도곶자왈작은학교아이들, 성남이로운재단, 부천동여자중학교, 한국순교복자수녀회, 현천고등학교, 세월호 형제자매 다시 봄이 올거에요 프로젝트팀 등이 참가했다.

 

 

자유발언 시간. 참가자들은 짧고 굵게 발언을 이어갔다.

“용기를 내서 마이크를 잡았다. 위안부 문제를 접하기 전과 후에 인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겁고, 진부하고, 지루한 이야기인 줄만 알아서 첫 수업 때까지만 해도 무관심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배우고 나서 육성 메시지도 듣고, 영화도 보고, 기사도 읽어보면서 많은 걸 느끼게 됐다. 그 주위의 것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남녀노소 이런 정보를 더 많이 받아들이고 관심을 가져서 언젠가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끝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장곡중학교 여학생의 당찬 목소리.

한편 정의기억재단은 ‘2015한일합의 무효’, ‘화해치유재단 해산’, ‘일본정부의 위로금 10억엔 반환’을 실현하고자, 8월 15일부터 오는 22일까지 100일간 ‘100만 시민모금’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정부의 위로금 10억엔을 한국정부가 반환하도록 요구하고, 오는 25일 세계여성폭력추방의날에 100만 시민들과 함께 “우리 손으로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에게 참 해방을!” 선포함으로써 정부 등록 피해자 239명 모두에게 여성인권상을 수여해 그들에게 진정한 해방을 전한다는 계획이다. 또 100만 시민모금을 통해 조성한 기금은 지금도 위로금을 거부하며 평화‧인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또 ‘2017 동행의날 우리 손으로 해방을!’ 행사가 이달 25일 토요일 오후 5시 청계광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1부 행사에선 ‘100만 시민이 함께 하는 여성인권상 시상식-미래세대와 함께 평화와 인권을 노래하다’가, 2부에선 촛불문화제 ‘우리 손으로 해방을’이 진행된다.

추운 날씨, 집회의 열기는 더 뜨거워지고 있다. 더 많은 국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때 이 지긋지긋한 싸움은 끝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분의 나비가 날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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