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빛 바다, 싱그러운…보석 같은…
옥빛 바다, 싱그러운…보석 같은…
  • 김초록 기자
  • 승인 2017.11.03 1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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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록 에세이> 보길도에서
▲ 보족산과 공룡알 해변

보길도를 아시는지요? 전라남도 완도군에 딸린 작은 섬이지요. 보길도는 본섬 외에 2개의 유인도와 15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지요. 목섬, 기섬, 갈마섬, 당사도, 복생도…. 저마다의 모양새로 바다에 떠 있는 저 새끼섬들은 얼마나 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을까요.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섬들이 제각각의 사연으로 눈길을 끌지만 보길도는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보석과도 같은 섬입니다. 옥빛 바다와 싱그러운 숲이 에워싸고 있으며 하얀 모래사장은 낭만과 서정이 흐르고 해변에는 갯돌이 구르고 상록수림이 거대한 방풍림을 이루고 있답니다. 섬 끝 쪽 보옥리에는 공룡알을 닮은 크고 둥근 돌들이 해변을 가득 덮고 있는데, 그 돌들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가 뭍으로 올라와 있는 듯해서 신비로운 느낌을 주지요. 기름진 개펄과 보길도의 부를 일구는 전복 양식장도 여기저기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보길도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함께 일찍이 문학이 움튼 섬이기도 하지요. 고산 윤선도가 13년을 머물며 어부사시가를 썼던 세연정은 보길도의 얼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선생은 바다와 산이 포개어 있는 이 자리에 정자를 짓고 마음 심(心)자 모양의 연못 3개를 파고 상록수를 심어 사철 푸른 기운이 돌게 했지요. 이곳에서 5리 남짓 산 쪽으로 들어간 곳에는 낙서재를 짓고 거처로 삼았지요. 고산의 자취는 낙서재와 마주한 산 중턱에도 남아 있습니다. 동천석실입니다. 바위들이 흩어져 있는 절벽 위에 세운 이 한 칸짜리 정자는 윤선도가 여유롭게 책을 읽으며 세월을 보냈던 곳이지요. 여기서 바라보는 앞산 정경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화가라면 수채화 한 폭을, 시인이라면 시 한 수 읊고픈 마음이 들 정도로 절승이지요.

 

▲ 고산이 거처로 삼은 낙서재

 

섬 동쪽 끝의 백도리 바닷가에는 조선시대의 학자인 송시열 선생의 자취가 남아 있지요. 선생이 제주도로 귀양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상륙했던 곳으로 역시 경치가 뛰어나지요. 해변 바위에 자신의 아픈 심경을 한시로 새겨놓았는데 문득 저 아득한 시대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듯해서 묘한 느낌이 들지요. 그러나 역사는 흔적으로만 보여줄 뿐 아무 말이 없습니다.

연중 많은 여행객들이 찾아오는 예송리 해변에는 매끌매끌한 갯돌들이 길게 깔려 있습니다. 밤알만한 작은 돌이 있는가 하면 주먹만한 크기의 돌들도 보이고 조각 작품처럼 멋스러운 것들도 수두룩하지요. 이곳 사람들은 해변에 깔린 둥그런 돌들을 ‘깻돌(갯돌의 사투리)’이라 부른다더군요. 수억 년 동안 파도에 닳고 닳아 몽글몽글해진 갯돌을 저도 만져 보았지요. 손에 닿는 느낌이 뭐랄까, 아기의 살결처럼 보들보들하더군요.

수많은 갯돌들이 파도에 쓸려서 ‘자그르르 자그르르’ 내는 소리는 자동차 소음에 멍멍해진 사람들의 귀를 맑고 청신하게 씻어주지요. 자연의 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지요. 어느 신문에선 갯돌 구르는 소리를 해조음이라 표현했더군요. 바다(파도)가 만든 소리라니, 그럴 듯해서 고개를 주억거렸지요.

 

▲ 백도리 해안의 글씐바위

 

보길도를 네 번쯤 찾았지만 저는 이 섬에 발을 디디면 제일 먼저 예송리 바닷가로 달려가 갯돌들과 인사를 나눕니다.

“잘 있었니?”

그러면 돌이 제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반갑게 화답합니다.

“그럼요. 아저씨는요?”

“나도 잘 지냈다. 다시 오니 참 좋구나.”

그렇게 우리 둘은 몸과 마음으로 대화를 나눕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돌이 있습니다. 생김새며 감촉이 제각각이지만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한자리에 박혀 억겁의 세월을 말없이 견디고 있습니다. 때론 파도에 씻기고 비를 맞고 흙바람을 뒤집어쓰면서…. 그렇습니다. 돌은 자기의 운명을 탓하는 법이 없습니다. 물 흐르듯, 구름 흘러가듯 주어진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지요. 눈길을 사로잡는 저 아름다운 모양이 되기까지 수백 년, 아니 수천 년 닳고 닳았겠지요. 세월이 흐를수록 돌은 그 모양이 조금씩 변해갑니다. 그러나 인간의 눈으로 그 변하는 모양을 알아차리기는 힘들지요. 거대한 바위가 돌이 되고 돌이 모래가 되고 모래가 다시 먼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이치입니다.

 

▲ 세연정의 아름다운 모습

 

돌도 엄연히 하나의 생명체입니다. 못 생긴 돌, 잘 생긴 돌 가릴 것 없이 그 속에는 영혼이 숨 쉬고 있지요. 그들만의 언어로 인간의 변덕을 꾸짖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1999년 여름, 이 보길도의 갯돌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에서 주는 ‘풀꽃상’을 받았습니다. 1년에 한번 아름다운 자연과 그 자연을 가꾸고 보존하는 대상들에게 상을 주는 이 모임은 그네들 스스로가 밝히고 있듯이 ‘실천이 수반된 조용한 마음의 운동’이지요.

 

제2회 풀꽃상

보길도 해변의 갖가지 갯돌들은
바다를 연주하는 신비스러운 악기들과 같습니다.
보길도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한 해에 30만명, 한 사람이 한 개의
갯돌만 들고나간다고 해도 매년 30만개의 돌이 사라집니다.
우리는 이 놀랍고 경이로운 갯돌들이 본래 있는 자리에서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무심히 있는 것만으로도 자연과 사람의 참다운 관계를
일깨워 준 보길도 해변의 갯돌들에게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2회 풀꽃상을 드립니다.

1999.5.22 풀꽃세상을위한모임

 

참으로 갸륵하고 순수한 마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풀꽃상을 받은 갯돌들에게 경하를 표합니다. 이 풀꽃상은 바삐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자연과의 관계와 사랑의 실천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연에게 왜 감사와 존경, 배려와 관심을 표해야 하는지 저 지고지순한 돌들을 보면서 느끼게 됩니다. 오랜 세월 한 자리에서 사람들의 허허로운 마음을 달래준 예송리 갯돌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보길도 면사무소 옆 풀꽃쉼터에는 피아노와 함께 풀꽃상 상패가 놓여 있습니다. 피아노를 상패로 준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실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거기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고 합니다. 갯돌을 바다가 연주하는 악기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보길도로 여행 계획을 세우신 분들이라면 이 풀꽃쉼터에 꼭 들러 자연의 소중함 아름다움을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혹여나 예송리 해변을 거닐다 갯돌을 몰래 주워 가지고 갈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자연은 어느 한 개인의 소유물이 될 수 없습니다. 모두가 보고 즐기고 느끼는 공유물이라는 생각이 앞설 때 자연은 우리가 베푼 만큼 되돌려 줄 것입니다.

 

▲ 예송리 해변의 갯돌

 

예송리 주민들의 갯돌 사랑은 오늘도 멈추지 않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건만 스스로 ‘갯돌 지킴이’가 되길 주저하지 않습니다. 예송리 해변의 갯돌을 뭍으로 몰래 들고 갔다가 반성문과 함께 돌려보낸 이도 있다고 합니다. 처음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늦게나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을 줄 압니다. 생각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실천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예쁜 갯돌을 보고 장식품으로 쓰려고 그랬겠지만 고향을 떠나는 갯돌의 마음은 얼마나 쓰리고 아팠을까요?

보길도를 찾는 사람들에게 당부 드리고자 합니다. 그냥 몸만 왔다가 몸만 빠져나가라고 말입니다. 진정한 자연사랑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놔두는 것입니다. 자연 본래의 아름다움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뭍에서 지내다가 다시 고향에 돌아온 갯돌에게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자연의 소중함 순수함 위대함을 가슴에 새기며 보길도를 떠납니다. 제게 마음의 선물을 한아름 안겨준 보길도 갯돌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다시 올 그 날까지 보길도여, 안녕!

<수필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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