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2010년 7월, 세 번째로 스웨덴에 왔을 때 일이다. 스톡홀름 시내는 어딘지 들떠 있었다. 한 여름 여행 성수기라는 점도 있었지만, 그래도 여느 여름 성수기보다도 한층 더 들떠 있었다. 느낌이 다른 들뜸이었다.

스톡홀름의 7, 8월은 계절의 특성 때문에 어느 때보다도 활기차고 아름답다. 하지만 이는 대체로 스톡홀름 시민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관광객들에 의한 것이다. 스웨덴의 본격 여름휴가 시즌이라 시민들이 해외로 떠나는 탓에 몇몇 장사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스톡홀름은 외국인들의 도시가 되는 탓이다.

그런데 그 해 7월 스톡홀름의 들뜸은 여느 7, 8월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스톡홀름 중심가 보행자 전용도로인 드로트닝가탄을 걸으면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스웨덴 왕실 왕위계승 서열 1위인 빅토리아 공주의 결혼식 때문이었다. 그 해 6월 19일 스톡홀름 대성당에서 열렸으니까 채 한 달이 안된 일이다. 그래서 스톡홀름의 거리에는 온통 빅토리아 결혼식의 후일담으로 가득했다. 기념품 상점은 물론이고 카페나 펍, 다양한 식당들에도 빅토리아와 새신랑 다니엘 베스틀링의 사진으로 도배돼 있었다.

 

▲ 드로트님홀름 궁전 : 현재 스웨덴 국왕 칼 구스타브 16세와 실비아 왕비가 실제 거주하고 있는 궁전. 궁전의 일부는 일반인들에게 개방돼 있다.

 

지난 해 한 연구기관에서 스웨덴 시민들을 대상으로 왕실에 대한 호감도를 조사한 적이 있다. 이 조사에서 스웨덴 시민들의 73%가 왕실에 대해서 긍정적이었다. 스웨덴 국왕의 존재가 스웨덴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하고, 더 멋진 나라로 느끼게 한단다. 현 국왕인 칼 구스타브 16세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이 좀 더 높기는 한데, 빅토리아 공주에 대한 호감 때문에 상쇄되는 분위기도 있다.

그런데 사실 사회주의자들의 나라인 스웨덴에서 국왕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 것은 다소 의외다. 아, 스웨덴이 사회주의 국가냐고? 뭐 그렇게 얘기할 수는 없다. 정치 체제나 경제 구조가 사회주의 국가는 아니지만 스웨덴의 기본 이념인 사회민주주의가 구체적인 이데올로기의 개념이라고 하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있다. 사회주의 이념에 개방적 시장주의 경제체제를 택한 것이 스웨덴이라고 할 수 있고, 상당수의 스웨덴 시민들은 큰 틀에서 자신들을 사회주의자라고 칭하기도 한다.

아무튼 사회주의가 정치 이념이 된 첫 계기인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이후 군주국가에서의 사회주의는 왕정을 폐지했던 게 일반적인 세계사인 것을 감안했을 때 스웨덴에서 국왕이 존재한다는 것도 고개 갸우뚱하게 할 일이지만, 더군다나 국왕의 존재가 제법 호감을 얻고 있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세대에서는 다소 다른 분위기들도 감지된다. 국왕, 즉 왕실의 존재에 대해 대체로 60대 이상의 장, 노년층에서는 역시 호감도가 높다. 국왕이 상징하는 바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그렇지 않은 것보다 훨씬 높은 편이다. 스톡홀름의 구시가인 감라스탄에 있는 스웨덴 왕궁을 거의 매일 찾는다는 70대인 페르 알베르트손 씨는 “스웨덴에 국왕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특별한 긍지를 준다. 물론 그가 정치적으로 힘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며 “스웨덴은 가장 민주적인 입헌군주국이기 때문에 지금의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고 말한다.

그러나 40∼50대의 분위기는 다소 신중하다. 그들은 국왕이 나라에 보탬이 된다면 존재한다고 해서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비판적인 시각도 가지고 있다. 지난 2010년 빅토리아 공주 결혼식에 대해서도 “너무 호사스러운 결혼식은 스웨덴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 왕실에 들어가는 시민들의 세금이 과하다는 지적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왕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왕실이 효율적으로 운영된다면 국왕의 존재가 스웨덴에 이로운 점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30대는 부정적인 의견이 높다. 앞선 조사에서 스웨덴의 30대는 왕실 폐지에 대한 주장도 드러내고 있다. 시민들에 대한 복지를 줄일게 아니라 왕실로 들어가는 시민들의 세금을 줄이거나 끊어야 한다는 다소 과격한 의견도 있다. 어쨌든 왕실로 들어가는 세금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세대로 보인다.

 

▲ 스웨덴 왕궁 쿵리가 슬로텟 : 스톡홀름 감라스탄에 있는 스웨덴 왕가의 정궁. 현재는 국왕의 집무실과 해외 국가 원수들을 위한 영빈관, 그리고 스웨덴 왕실의 보물들이 전시된 박물관이 있다. 이 곳의 일부도 일반인에게 개방돼 있다.

 

그런데 20대들의 생각은 재밌다. 물론 20대들의 왕실에 대한 가장 많은 의견은 ‘무관심’이다. 농담 삼아 “아, 우리나라에 아직도 국왕이 있나? 스테판 뢰벤 총리가 왕 아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24살의 대학생인 파비안 오스트룀 오베리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그냥 스웨덴의 상징인 유명인사 정도로 생각한다”고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26상의 다니엘 쇠레브란트는 “스웨덴 왕이기는 한데 지금은 왕이 별건가? 그냥 이름만 왕이지 뭐 하는 게 없어서 평소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스웨덴 왕립 공과대학(KTH)에 다니는 26살의 한 대학생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들에게 시민들의 세금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는 게 싫다”고 말하기도 한다.

모두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25살의 대학원생인 카이사 욧은 “칼 구스타브 16세와 빅토리아 공주를 좋아한다. 물론 세금으로 다른 나라도 방문하고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스웨덴을 외부에 홍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국왕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욧은 또 “실제로 그들은 그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스웨덴 역사 속에서 나라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국왕들이 몇 명이 있다.

1521년 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가 하나의 국가 개념으로 존재하던 칼마르 동맹을 깨고 스웨덴을 덴마크에서 구한 구스타브 1세 바사왕은 스웨덴의 국부로 추앙받는다. ‘스웨덴의 광개토태왕’ 격이면서 ‘북방의 사자왕’이라고 불렸던 구스타브 2세 아돌프왕은 17세기 30년 전쟁 때 스웨덴을 유럽의 최강국으로 만들어 존경받기도 한다. 그의 딸 크리스티나 여왕은 가톨릭 신앙을 위해 신교 국가의 왕위에서 스스로 내려온 신념의 여왕으로 불린다. 현재 국왕의 거주지를 드로트닝홀름(여왕의 섬)이라고 부르고, 스톡홀름 시내 중심가의 보행자 전용도로를 드로트닝가탄(여왕의 길)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녀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현재 세계에서 국왕이 존재하는 나라는 44개다. 그 중에서 국왕이 직접 통치하는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오만 등 중동의 나라들과 동남아시아의 브루나이, 그리고 부탄 정도다. 그 외 나라들은 입헌군주국가다. 국왕은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는다. 이들의 경우 국왕은 국가의 상징적인 존재다. 경우에 따라 태국처럼 쿠데타를 일으켜도 국왕이 승인해줘야 하는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나라도 있지만 대체로는 그전 존재하기만 할 뿐이다.

현재 스웨덴 국왕의 가족이 거주하는 드로트닝홀름 궁전 앞에서 만난 룬드에 사는 대학생 마리아 베네스트룀은 “국왕은 예쁘게 포장해서 멋지게 보이게 하는 스웨덴의 인형”이라고 조롱 섞인 목소리로 얘기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시민 중 ‘국왕이 없는 스웨덴’을 상상해 본 사람들은 많지 않다. 아마도 한동안의 스웨덴 역사에서 국왕은 계속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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