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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이 무건지도 몰르고”

<전라도닷컴> 강변에 사람꽃-대수리 팔던 어매들 전라도닷컴 남인희·남신희 기자lmaster@weeklyseoul.netl승인2017.11.07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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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진강이 키운 대수리는 강변 마을 사람들에게 먹을거리이자 생계의 방편이 되기도 했다.

 

회룡마을(순창 동계면 어치리) 박복님(76) 할매네는 며느리가 다섯이다.

“안사둔들이 여그를 오심서 다 울고 왔다고 그래. 여그가 굽이굽이 그리 지퍼.”

회룡마을 각시들은 울고 온 그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 ‘내가 걷는 길이 자갈밭이어도 기꺼이 뿌리를 내려 꽃이 된 사람’으로 한 생애를 살아냈다.

 

▲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배경지가 되었던 임실 덕치면 천담리 구담마을 언덕에서 바라본 풍경.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의 아름다움의 전모를 예서 마주할 수 있다.

대수리가 자식들 월사금이고 용돈

눈 대면 닿는 섬진강. 흐르는 물에서도 기꺼이 제 자리를 찾아 앉는 다슬기처럼 어려운 시절을 헤쳐나온 섬진강변 할매들에게 대수리는 그저 ‘음식’이나 ‘맛’이 아니다. 자식들 월사금이고 용돈이었다.

“나는 대수리 잘 잡아, 선수여!”라고 말하는 구담마을(임실 덕치면 천담리) 오야순(80) 할매.

“다른 사람들이 서너 되 잡으문 나는 닷 되를 잡아.”

그 실력을 당당하게 증거하는 말씀이다.

“새복에 일치건치 인나서 식구들 밥해놓고 어지께 저닉에 잡아논 대수리를 이고 여그서 천담까지 가. 못 다 갖고 댕기게 갖고 댕갰어. 함박에 한나 까득 채와놨으니 무겁제, 물천이라. 근디 무건지도 몰르고 달음질로 댕갰어. 천담까지 갈라문 십리가 짱짱혀. 거그서 일곱시 차를 타고 갈담 가서 폴다가 못 다 폴문 청웅까지 가.”

오야순 할매는 잡기도 선수였지만 팔기도 선수였다. 마케팅의 원칙은 박리다매.

“내야 대수리 그륵은 큰 밥그륵 이여. 놈보다 많은게 후딱 폴아. 얼른 폴고 와도 갔다오면 한나절이 기울어. 글도 또 잡아갖고 함박을 이고 또 가. 인자 막 잡아간게 흥글흥글허들 않고 좋아. 시방도 청웅 사람들이 왜 대수리 안 갖고오냐고 그래.”

그렇게 대수리 판 돈을 차곡차곡 모아 자취하는 자식들한테 쌀 폴아주고 용돈 맨들아주고 방세를 댔다.

구담마을 김양금(77) 할매는 강진장까지 이십 리 길을 다녔다.

“대수리 함박을 머리에 이고 한없이 걸어가는디 하늘만 뺀하고, 길은 쫍장해. 갔다 오문 사십 리여. 다 폴고 올 때는 함박 안 이고 온게 아 좋다 허고 왔제.”

잔뜩 무거운 대수리 함박을 이어본 자들만이 아는, 대수리 함박 내려놓은 자의 홀가분함이라 할까.

 

▲ ‘섬진강 시인’ 김용택 시인의 시비가 임실 덕치면 천담리 구담마을에 서 있다.

“나는 내 맘으로 부자여”

천담마을(임실 덕치면 천담리) 김모순(74) 할매는 대수리 팔러 가서 생전 처음 먹어봤던 커피맛을 지금도 기억한다고 했다.

“대수리 팔아서 새끼들 뭐 사준다고 고개를 두 개 넘어서 버스를 타고 광주로 팔러 갔어. 어떤 가게 주인이 컵에 다 꺼먼 것을 넣고 밀가리 같은 것을 넣고 또 사탕가리를 넣고 저서서 줘. 참말로 맛있더라고. 대수리 팔고 그놈 커피 묵고 짐차를 타고 오는디 기분이 좋아갖고 차 가상을 잡고 노래를 부르고 왔어.”

생전 처음 마셔본 커피에 취했는지, 대수리를 다 팔아서 그리 좋았는지 그날은 김모순의 생애에 잊지 못할 날로 기록된 것이다.

“전에는 대수리가 쌨어. 막 씰었어. 나가문 큰 다라이로 하나씩 잡아. 밥 안쳐놓고 바가지 갖고 나가문 금방 씰어 갖고 와서 국 낄여서 먹었어. 비 올라 글문 새꺼머니 바구에 올라와 있어. 이렇게 훌트문 한 주먹씩 잡아. 그 놈을 비네짝에다 모타놨다 갖고와.”

할매는 강진장까지 십리를 걸어다녔다.

“우리 천담대수리는 어디 가나 알아줘. 맛이 달라. 삶으면 물이 빌라(유별나게) 새포래. 근게 어디서 왔냐고 허문, 천담서 안왔어도 천담 대수리라고 폴아묵어. 폴아봐야 그때는 쌌어. 많은게 싸제. 그래도 고놈 팔아가지고 우리집 학생들(자식들) 눈물 안 빠치게 돈줬제. 내한테는 대수리가 고맙제.”

밤에는 대수리가 바굿돌로 기어올라오니 한꺼번에 많이 잡기가 수월했다.

“시방사람들은 후라시 갖고 잡제. 전에는 색우(석유)불 갖고 댕김서 잡아. 바람 불문 꺼져. 저테사람 불이 안꺼지 문 저테사람이야허고 연결혀서 불을 살려내.”

깜깜한 저녁강에서 곁에 사람에게 불을 건네받으며 대수리 잡던 시절. 그때라고 웃음이 없었으랴.

“모다 그러고 사느니라 허고 살았제. 나도 내 맘으로는 부자여. ‘가난혀 가난혀’ 자꼬 글허문 아무리 부자여도 가난헌 것이여.”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최성욱 다큐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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