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 눈이 없다 생각이 필요하다.

날 때부터 고아는 아니었다, 내 죄 아닌 내 죄로 인하여…….

이런 노래를, 내 나이 청소년 시기의 어느 해인가 들은 적이 있다. 그 가사와 곡조가 어찌나 애린하게 심장을 살살 찔러대던지, 몇 날 몇 밤이나 정신을 못 차리고 휘청거렸다. 어느 사형수인가, 아니면 무기수인가, 그 신원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비상한 운명에 처한 주인공이 자신의 생애 전반을 돌아보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를 휘청거리게 한 대목은 아마도 ‘내 죄 아닌 내 죄’였을 것이다. 내가 죄를 지은 바는 없지만 내 죄임이 분명하다는, 나는 비록 내 죄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내 죄가 되어 있다는, 그러므로 몹시 억울하고, 슬프고, 그래서 미칠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내 죄 아닌 내 죄로 인하여’, 그 한 소절은 음유시인의 그것처럼 운명이라든가 숙명 같은 저 깊은 것들을 망연자실한 마음으로 들여다보게 한다.

내가 나의 부모를 지정해서 태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시간을 완전히 뒤집어야만 가능한 그런 일은 공상으로나 가능할 뿐 현실에서는 어림도 없다. 마찬가지로, 내 자신의 신체 구조 또한 내가 임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 나는 다만 뭐가 뭔지도 모르는 채로 태어나서 그 상태 그대로 조금씩 천천히 쇠약해져 갈 뿐이다. 종교와 과학은 각종 데이터와 말씀을 동원해서 뭔가 열심히 설명을 하고는 있지만 살아 있음과 죽음의 거리는 여전히 아득하기만 하다.

 

▲ 어미의 품을 벗어났을 때...

 

얼마 전 우리 집 동물들 중에 눈 없는 고양이 한 마리가 목줄 없이 날뛰는 동네 개에게 물려 죽었다. 녀석은 태어날 때부터 눈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아직 눈도 뜨기 전의, 젖먹이 시절에 발생한 결막염을 제때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서 눈알이 튀어나왔고, 튀어나온 눈알이 일단 한 번 들어갔다가 다시 튀어나온 뒤로 사라져버린 까닭에, 그만 눈 없는 고양이가 된 것일 뿐이다. 고로 그 녀석은 ‘내 죄 아닌 내 죄로 인하여’가 아니라, 사람을 잘못 만난 까닭으로 그만 눈 없는 고양이 신세가 돼버렸다고 보는 게 옳다.

그렇다. 죄라면 내게서 물어야 한다. 녀석이 태어나서 한참 꼬무락거리고 있던 시기에 나는 선운사의 차 밭을 다니고 있었고,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 돌아오는 일정을 핑계로 어미에게 먹을 것이나 겨우 챙겨주고 있었을 뿐, 아직 눈도 안 뜬 새끼들의 눈 상태까지 살펴보지는 못했다. 그 즈음 엄마의 생신을 맞이해서 엄마 곁으로 갔던 나의 그녀가 열흘 만에 돌아오고 난 뒤에서야 새끼 한 마리의 눈병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어쨌든 새끼들은 열심히 하루가 다르게 자랐고, 마침내 눈을 뜨기 시작했다. 눈을 뜨기 전에는 눈이 있는 녀석이나 없는 녀석이나 다를 게 없었지만, 눈이 있는 녀석이 눈을 뜨면서 상황은 확 달라졌다. 눈을 뜨기 전에는 배가 고파서 어미의 젖을 찾을 때 냄새와 감각으로 마치 벌레처럼 더듬어 가야 했지만, 눈을 뜨고 난 뒤에는 저기에 젖이 있다, 오라잇, 하는 식으로 곧장 달려가서 덥석 입에 넣을 수가 있게 됐으니, 눈이 없는 녀석은 자연적으로 따돌림을 당하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순식간에 취약계층으로 전락한 눈 없는 녀석은 늘 배가 고파서 허덕거려야 했고, 하루가 다르게 살이 빠져 나갔다.

 

▲ 젖을 포기하고 사료를 깨무는데 힘들다.

 

눈 없는 새끼를 둔 어미 고양이 또한 할 일이 엄청 많아졌다. 새끼들이 눈을 떠서 좌우 사방을 돌아다니면 똥오줌도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니 어미로서 해야 할 일이 그만큼 줄어들기 마련이었지만, 눈 없는 새끼가 있고 보니 일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 버렸다. 눈이 있는 녀석들은 쑥쑥 늘어나는 덩치만큼이나 먹을 것도 많이 필요로 해서 젖을 일단 입에 넣었다 하면 놓을 줄을 몰랐고, 눈이 없는 녀석은 한쪽으로 찌그러져서 배가 고프다고 칭얼댄다. 그러면 어미가 눈 없는 녀석을 입으로 물어다가 눈 있는 녀석들 사이로 밀어 넣어 준다.

그렇다고 눈 있는 녀석들이 젖을 포기하거나 양보하지는 않는다. 더욱 극성스럽게, 더욱 집요하게 젖을 빨아대는 한편 온 몸을 활용해서 눈 없는 녀석을 외곽으로 밀어낸다. 그러면 눈 없는 녀석은 매우 구슬픈 소리를 내서 어미의 감정을 건드려 놓으니, 어미는 마침내 벌떡 일어서는 방식으로 눈 있는 녀석들을 털어내고 눈 없는 녀석 혼자에게 젖을 물리고자 하지만, 눈 있는 녀석들은 이미 눈이 있고 보니 어디에 젖이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내고 재빨리 달려가서 다시 매달린다. 그렇다고 눈 있는 녀석들을 물어뜯어서 내쫓을 수도 없고 보니, 어미 노릇 하기 정말로 힘들고 괴롭다.

뿐만이 아니다. 눈 있는 녀석들이 자유롭게, 활달하게 여기저기 아무 데나 들어가고 나오고를 반복하며 재미있게 노는 동안 눈 없는 녀석은 외로워서, 고독이 사무쳐서 우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덤불 속에 빠진 채로 나오는 방법을 찾지 못해 우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러면 어미는 멀리 다른 데서 쥐를 잡거나 사색을 즐기다가도 허둥지둥 달려온다. 어떻게 그렇게도 재빨리 귀신같이 알아듣고 달려올 수 있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달려오면서도 그냥 달려만 오는 것이 아니라 뭐라고 계속 중얼거리면서 달려온다. 오자마자 새끼를 입으로 물어서 꺼내놓고 여기저기 살펴보고, 혀로 잇달아 핥아대면서도 중얼거리는데 그 중얼거림이 혹시 아이고 내 새끼, 내 새끼 뭐 그런 것이나 아닐는지.

 

▲ 함께 있어도 딴 데를 향하는 눈 없는 녀석

 

어쨌든 눈 없는 새끼 고양이는 늘 외롭고, 슬프고, 배가 고팠다. 배가 고픈 탓으로 형제들 중에 가장 먼저 사료를 발견했을 것이다. 어미가 딱딱한 알갱이의 사료를 먹고 있을 때, 옆에서 새끼들이 가끔 일제히 달려와서 집적거리긴 했지만 아직 씹어볼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을 때, 눈 없는 녀석이 어느 하루 과감히 그것을 입 안에 넣고 씹는 시늉을 몇 번이나 하더니 마침내 성공했다.

눈이 있는 녀석들은 사료를 무슨 장난감 대하듯이 해서 입 안에 넣고 깨물어보다가 뱉어내고 다른 것을 입 안에 넣고 씹어보다가 역시 또 뱉어 버리기를 반복하다가 끝내는 흥미를 잃고 돌아서고 있었다. 하지만 눈 없는 녀석은 한 알의 사료를 입 안에 넣은 채로 오물거리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가 오른쪽으로 돌렸다가, 심지어는 앞발을 쳐들고 빙빙 돌기까지 해 가면서 그야말로 온 몸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서 씹어보고 또 씹어보기를 되풀이하다가 마침내 씹어서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리고 다시 한 알의 사료 알갱이를 입 안에 넣고 처음의 방식으로 먹어 치웠다.

그런 방식으로 눈 없는 녀석은 자신의 역량을 키워 나갔다. 다른 녀석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놀고 있을 때 녀석은 혼자서 이를테면 생존에 관한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눈 있는 녀석들이 여기저기 아무 데로나 마구 내달리며 자신의 분출하는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을 때 눈 없는 녀석은 혼자서 껑충껑충 제자리 뛰기를 한다. 그러다가 몸에 닿는 풀잎이나 나뭇가지가 있으면 그것을 상대로 앉았다가 섰다가 제주 넘기를 반복한다. 그러니까 해석을 하자면 눈 있는 녀석들이 일시적인 호기심에 충실하다면 눈 없는 녀석은 주변의 소리와 자신의 신체 부위에 닿는 어떤 물체에 충실히 반응하는 셈이었다.

그러나 역시 눈이 없다는 것은 어리둥절하고, 당혹스런 일이었다. 새끼 고양이들이 다 자라서 본격적으로 사료를 먹기 시작했을 때, 먹이를 줄 때가 되어 사료 통을 들고 나서면 집안의 모든 고양이가 일제히 밥그릇이 있는 쪽으로 내달린다. 여기저기 흩어져서 놀던 고양이들이 즐거운 비명을 질러대며 한쪽으로 순식간에 몰려가는 것이다.

 

▲ 형제들은 이렇게도 통통하건만...

 

이때 눈 없는 녀석은 홀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이쪽으로 갔다가 저쪽으로 갔다가, 돌아서서 몇 걸음 걸어보다가 다시 돌아서서 몇 걸음 걸어보다가, 이쪽도 아닌가봐 하고 다시 옆으로 방향을 틀었다가, 그러다가 끝내는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인다. 그래도 방향을 알 수 없으면 결국 애처로운 소리를 내고 시작한다. 그러면 사료를 먹던 어미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달려가서 눈 없는 녀석을 인도해 가는데 그 모습은 상투적으로 표현하자면 눈물 없이는 봐줄 수가 없는 것이어서, 아이고 어쩌나,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닌 게 아니라 걱정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언제까지나 어미가 그렇게 방향을 잡아줄 수는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사람이 항상 지켜봐줄 수도 없는 일이어서 내심 걱정을 태산처럼 하고 있던 어느 하루 녀석이 뱀을 잡았다. 흔해빠진 물뱀이나 꽃뱀도 아닌, 사람 눈에 띄었다 하면 벌써 저만치 달아나 있을 정도로 재빠른 독사를 눈 없는 녀석이 잡았다.

이게 뭐냐. 이게 대체 뭐란 말이냐. 놀랍고 신기하고 기가 막히면서도 기특하고 대견해서 우리는 녀석의 머리를 얼마나 긁어주고 토닥여 주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 알았다.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연약한 이빨로 딱딱한 사료를 인내심 좋게 씹고 또 씹어서 삼켰듯이, 녀석은 그렇게 어미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자질을 스스로 개발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생존에 관한 문제가 완료된 것은 아니었다. 눈 없는 고양이가 스스로 키워낸 그 뛰어나게 예민한 감각도 자기 자신의 생명을 지켜내지는 못했다. 제아무리 뛰어난 감각도 거대한 폭력 앞에서는 속수무책이고 만다는 사실을 우리는 새삼스럽게도 확인해야만 했다.

 

▲ 혼자서 극기훈련 중일까.

 

해도 다 진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땅거미가 스멀거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주변 정리를 하고 방에 들어와서 문까지 닫고 있었는데 밖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비명 소리가 어찌나 처절하게 날카로운지 즉각적으로 뭔가 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옆 마을에 할머니가 목줄도 없는 개를 데리고 우리 마을에 놀러 왔다가 밤이 되어 돌아가던 중이던가 보았다. 그 시간에 하필 우리의 눈 없는 고양이 녀석이 울타리 밖으로 나가서 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쩌면 쥐들이 활동할 시간이라는 것을 감각적으로 알고 사냥을 나갔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고양이를 본 개는 흥분해서 왕, 하는 소리와 함께 덤벼들었다.

눈 없는 고양이 녀석은 적개심이 가득한 개 소리를 듣고 재빨리 울타리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었지만, 그 자리는 하필 작은 고양이 한 마리도 몸을 빼낼 수 없을 정도로 옹색한 곳이었다. 그래서 다시 그 옆의 다른 구멍으로 머리를 들이미는 순간 입을 쩍 벌린 채 달려온 흥분한 개의 이빨에 꼬리 부분이 통째로 걸렸다. 꼬리를 포함한 뒷다리 둘이, 그러니까 눈 없는 고양이의 하체가 몽땅 개의 입 안으로 들어가 버렸으니 이게 뭔가.

 

▲ 독사 새끼를 누가 잡았나.

 

 

내 옆의 그녀는 개를 왜 목줄도 없이 데리고 다니시냐는 거냐고 할머니에게 울먹이는 소리로 항의를 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지금까지 한 번도 고양이를 물어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사람을 물 수도 있다는 말에 할머니는 다시 사람을 물어본 적도 없다고 하셨다. 어쩔 것인가. 싸울 수도 없는 일이었다.

“오메 이것이 뭔 일이까. 미안스러서 으쩌까.”

할머니는 그 말만 몇 번이나 반복하셨다. 그리고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어쩔 것인가. 우리 고양이 물어내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내 옆의 그녀는 밤새 훌쩍이면서 녀석을 지켜보다가, 새벽에 무덤을 팠다. 죽기 직전에 녀석은 또 한 번, 개에게 물리던 순간의 그것 같은 비명을 또 한 번 질렀다. 지나가는 누구라도 들을 수 있는, 음폭이 매우 큰 처절한 그런 비명을.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