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바위에 단풍 들 때 용이 승천한다
별바위에 단풍 들 때 용이 승천한다
  • 김초록 기자
  • 승인 2017.11.10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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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록 여행스케치> 청송의 11월을 이야기하다

가을과 겨울 사이, 요즘 이런 절기를 맞고 있다. 산과 들은 그야말로 진갈색 세상이다. 시나브로 생명력을 다해가는 자연은 차분히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총천연색의 산이 있는 경북 청송은 청송(靑松)이라는 지명이 말해주듯 어디를 가든 푸른 솔과 맑은 물을 만날 수 있으니 하늘이 내린 땅임에 틀림없다.

 

▲ 단풍 고운 주왕산 등산로
▲ 고운 빛깔의 주왕산 단풍

☞천의 얼굴을 가진 주왕산

주왕산은 청송의 얼굴이다. 주왕산(해발 720미터)이 간직한 매력은 우뚝우뚝 솟은 기암(旗岩)과 때 묻지 않은 천혜의 생태계에서 찾을 수 있다. 돌산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거칠거칠한 바위들이 하늘로 치솟아 있는 모습이 가히 압권이다. 바위를 병풍처럼 둘러 세웠다는 석병산(石竝山)은 주왕산의 옛 이름이다. 그렇다면 석병산이란 그럴 듯한 이름을 놔두고 왜 주왕산으로 바꿔 부르는 것일까? 여기에는 이런 전설이 있다. 신라 선덕왕 때 김주원이라는 사람이 임금 자리를 버리고 이 산에 들어와 수도를 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고려 초 중국에서 당나라에 반기를 들었던 진(晋)의 후손 후주천왕(後周天王)이 당나라 군사에게 잡혀 일생을 마쳤기에 그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라고도 한다. 주왕산은 사계(四季)의 경관이 금강산에 버금간다 하여 소금강으로도 불린다.

등산로는 대원사에서 출발해 제3폭포에 이르는 코스가 가장 인기 있다. 주방천 계곡을 끼고 이어지는 산길이 넓고 편안한 데다 계류와 폭포, 기암괴석으로 아로새긴 주왕산의 비경 대부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대전사에서 본 주왕산 봉우리
▲ 주왕산 단풍빛이 곱다
▲ 전설을 간직한 주왕굴

 

주왕산은 크게 내주왕과 외주왕으로 갈라진다. 산 들머리에 있는 대전사와 그 위쪽 계곡(주방천) 일대를 외주왕, 반대편 남쪽의 인적이 뜸한 절골 일대를 내주왕이라 부른다. 대전사 마당에서 올려다 보이는 주왕산은 큰 바위 얼굴로 솟아 있다. 온갖 활엽수들이 빽빽이 들어찬 푸른 숲은 청신하기 이를 데 없고, 자갈과 바위를 더듬고 흐르는 물소리는 길손의 마음을 한없이 가라앉게 만든다. 일찍이 택리지를 쓴 이중환은 주왕산을 일러 ‘모두 돌로써 골짜기 동네를 이루어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는 산’이라고 했다. 또한 우리 선조들은 그리 높지도 않은 이 산(해발 720미터)을 조선팔경 중의 하나로 꼽았는데, 이 산이 간직한 미덕을 높이 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널찍이 뚫린 산길을 따라 오르노라면 보이는 모든 게 신비롭다. 주왕산 깊숙이 숨어 있는 주왕암과 주왕굴은 이 산의 위엄을 한층 높여준다. 산행 기점인 대전사에서 산길을 따라 20여 분 오르면 자하교가 나타난다. 이 다리를 건너 300m쯤 올라가면 통일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주왕암에 닿는다. 주왕암에서 나한전 뒤로 뚫린 바위 절벽길을 1백여 미터 오르면 비좁은 철 사다리가 나오는데, 이 사다리 위쪽에 주왕굴이 있다. 신라 군대를 피해 숨어 있던 주왕이 어느 날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로 세수를 하다 화살에 맞아 숨을 거뒀다는 곳이다.

 

▲ 내원동마을의 집터
▲ 아침안개에 휩싸인 주왕산 기암
▲ 주왕산 용추폭포(1폭포)
▲ 주왕산 3폭포인 용연폭포

 

주왕굴에서 내려와 청학과 백학이 어울려 살았다는 학소대에서 길손은 잠시 심호흡을 한다. 학소대 왼쪽으로 보이는 병풍바위는 이름 그대로 병풍을 세운 듯한 모습이다. 생김새가 떡 시루 같다는 시루바위도 보인다. 학소대를 지나 커다란 동굴 같은 산모롱이를 돌면 비 온 다음날 무지개를 볼 수 있다는 제1폭포(용추폭포)가 나타난다. 1폭포 바로 위에는 그림 같은 선녀탕과 구룡소가 굽어보고 있다. 1폭포에서 500m쯤 더 올라가면 오른쪽 협곡 안으로 제2폭포가 있고, 조금 더 오르면 용연폭포라 불리는 제3폭포가 위용을 드러낸다. 구름 몇 점이 그대로 담긴 폭포는 명경지수란 말이 딱 어울린다.

이곳 용연폭포에서 10분 정도 더 오르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가 펼쳐진다. 오지마을 내원동이다. 내원동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십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마을이었지만, 지금은 모두 떠나 적요함만 감돌고 있다. 국립공원에서 생태계 보전을 위해 주민들을 아랫마을로 내려 보냈기 때문인데 이곳을 찾은 등산객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래도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보호하고자 함이니 십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개발이 모든 걸 지배하는 세상에서 내원동이야말로 잘 보존해야 할 오아시스다. 마을 한쪽에 옛 마을 모습을 찍은 사진이 걸려 있고 집을 허문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 주산지의 늦가을

☞사철 아름다운 주산지

주왕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절골계곡 어귀에는 계절과 시간에 따라 독특한 풍광을 선보이는 주산지(注山池)가 있다. 이 연못은 둘레 1㎞, 길이 100m 정도로 사람이 만든 저수지이지만 태고 적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연못 북쪽과 동쪽 가장자리에는 능수버들과 왕버드나무 30여 그루가 물속에서 자란다. 이 중 10여 그루는 수령 300-500년 된 고목이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아침녘에 찾으면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산 그림자가 연못가로 어슬렁어슬렁 내려오는 저녁 무렵도 운치 만점이다. 그래선지 이곳에선 카메라를 둘러멘 사진작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연못 둘레에 산책로와 벤치,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한 바퀴 둘러보는 데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특히 산책로 왼편 끝자락은 주산지 모습을 담기 가장 좋은 사진 포인트다.

 

▲ 주산지에서 자라는 왕버드나무

 

주산지는 조선 경종 때(1721년) 마을 주민들이 농업용수와 식수로 쓰려고 주산계곡에 제방을 쌓아 물을 가둔 것이 그 시초이다. 주산지 아래의 60여 가구는 아직도 이 물로 농사를 짓는다. 주산지는 아무리 가물어도 지금까지 바닥을 드러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주산지에 얽힌 전설 또한 흥미롭다. 계곡 안쪽으로 높이 솟아있는 별바위에 단풍이 들 때면 이곳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얘기도 있고, 일제시대 때는 청송사람들이 이 저수지를 지나 80리 밖 영덕시장에 다녀오곤 했는데 가끔 이곳에서 이무기를 봤다는 소문이 나돌았다는 것이다. 해마다 봄이 오면 주민들은 연못가에서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린다. 물속에 잠긴 왕버드나무의 모진 생명력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하늘을 향해 가지를 꼿꼿하게 뻗어 올린 모습이 힘찬 기상을 느끼게 한다. 연못을 둘러싸고 있는 숲에서는 연신 새소리가 들린다.

 

 

▲ 신성계곡

☞기암괴석과 절벽 정자

주산지를 둘러보고 길안천을 따라 신성계곡으로 간다. 이즈음 청송 깊은 계곡마다에는 붉은 빛이 어룽거린다. 늦가을 정취에 푹 빠져 20분 남짓 달려간 신성계곡의 한 절벽. 정자 하나가 오두마니 서 있다. 그 모습이 정말이지 그림 같다. 이름 하여 방호정이란다. 정자 주위로 형형색색 물든 단풍이 그리 고울 수 없다. 1619년 조준도란 분이 어머니의 삼년상을 치른 뒤 방치된 정자를 사들여 거기에 새 건물을 올렸다고 한다. 어머니의 사모곡을 잊지 못해 ‘사친당(思親堂)’이라 명명한 정자는 훗날 방호정으로 바뀌었다.

 

▲ 신성계곡 암석에 올라앉은 방호정
▲ 화산활동으로 생긴 백석탄

 

방호정에서 심신을 달랜 뒤 계곡을 따라 더 거슬러 오르니 백석탄(白石灘)이란 긴 암석이 턱 버티고 서 있다. 상류 방호정부터 백석탄까지는 약 15㎞ 거리. 강과 산이 내내 따라오는 이 길은 드라이브 코스로 손색이 없다. 백석탄은 한자 이름 그대로 여울 가에 하얀 돌이 수직으로 솟아 있는 모습이 신비롭다. 자그마치 7천 만 년 전 화산이 분출하면서 생긴 부산물이다. 지질학적으로는 ‘포트홀’(pot hole)이라 부른다. 백석탄을 휘돌아가는 계곡에 늦가을이 다소곳이 내려앉아 있다. 돌돌돌 흐르는 물소리에 어지러운 마음을 헹궈본다.

 

 

▲ 달기약수로 요리한 닭백숙

☞잊을 수 없는 청송의 맛

물과 공기가 청정한 청송은 맛(특산물)에서도 뒤지지 않는다. 요즘 한창 출하되는 사과와 각종 성인병에 효과가 있다는 달기약수가 그것이다. 청송읍에서 동북쪽으로 3km 거리에 있는 달기약수는 여느 약수와는 달리 하탕, 신탕, 성지탕, 중탕, 천탕, 상탕 등 6개의 약수탕이 7백여 미터의 거리를 두고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달기약수는 위장병, 빈혈, 신경통, 부인병 등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달기약수는 톡 쏘는 사이다 맛에 들큰한 쇳내가 나는데 이 약수로 지은 밥은 짙은 녹색을 띤다. 달기약수 주변에는 약수로 맛을 낸 닭백숙과 불고기를 파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이곳에서 월외 계곡을 따라 약 3km쯤 거슬러 올라가면 높이 11m의 장엄한 폭포가 앞을 가로막는다. 이름 하여 달기폭포. 폭포 아래의 소(沼)는 용이 살았다는 전설에 따라 용소라 불린다.

 

▲ 청송의 특산물인 사과

 

청송 사과는 ‘꿀 사과’라고 불릴만큼 당도가 뛰어나고 육질이 단단한 것이 특징이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큰 일교차는 사과를 재배하는데 최적의 조건이다. 청송은 이런 기후 조건이 잘 맞아떨어지는 고장이다. 청송사과는 1924년 독립운동가이며 농촌운동가인 박치환 장로가 사과 묘목을 가져와 현서면 덕계리에 심은 게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유난히 붉은빛이 돌고 큰 사과는 관광지로 가는 길목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여행작가/ 수필가>

 

 

▲ 송소고택과 나란히 자리잡은 송정고택
▲ 한옥체험하기 좋은 송소고택
▲ 감칠맛 도는 닭불고기 차림

여행팁(지역번호 054)

◆가는 길=중앙고속도로 서안동 나들목→안동시내→34번국도(진보방향)→31번국도 교차로에서 청송 방향→31번국도(주왕산 방향)→914번 지방도→주왕산 삼거리→이전 삼거리→이전 사거리→절골&주산지. 부산 대구 방면에서는 경부고속도로 영천 나들목으로 나오거나 대구부산고속도로와 익산포항고속도로를 번갈아 타고 북영천나들목에서 35번 국도를 타면 신성계곡에 이른다. 청송시외버스터미널(873-2036)에서 주왕산, 달기약수, 주산지행 버스가 수시로 있다. 주산지 주차장에서 주산지까지 걸어서 15분 정도 걸린다. 동서울터미널에서 하루 5차례 주왕산행 직행버스가 다닌다.

◆숙박=주왕산, 주산지 주변의 펜션이 좋다. 슬로시티펜션(010-9380-4335), 뜨란채펜션(873-1020), 꿀벌펜션(010-9396-0307) 등. 주왕산온천관광호텔(874-7000, 청송읍 월막리 69-2)은 단체로 묵기 좋다. 청송읍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송소고택(874-6556, www.송소고택.kr)은 한옥체험을 해볼 수 있는 곳으로 조선시대 영조 때 송소(松韶) 심호택(沈琥澤) 선생이 지었다고 전한다. 홍살이 있는 솟을 대문이 인상적이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안채는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꽤 넓은 마당과 2채의 별당을 두고 있는데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부남면 31번 국도변의 청송자연휴양림(872-3163)에서도 숙박이 가능하다. 통나무집 21동이 갖춰져 있다.

◆맛집=주왕산 입구에 산채백반을 내놓는 식당이 여럿 있다. 신토불이(873-2988), 귀빈식당(873-1569) 등. 달기약수탕 주변에도 닭백숙, 닭불고기, 닭죽, 옻닭 등이 별미인 식당이 많다. 영천식당(873-2387), 서울여관식당(873-2177), 신동양식당(873-2172), 약수촌식당(873-2662)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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